14. 그렇게 갔다

"왜 내가 두려워할 필요가 있나요?"

소녀는 언젠가 그렇게 되물은 적이 있었다. 어째서 두려워해야 하는지를, 어느 '괴물'에게. '괴물'은 고개를 멀뚱히 기울이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째서 무서워하지 않는 건데?"

"왜 내가 무서워하지 않으면 안 되나요?"

'괴물'의 주변에서 사람들이 미친 듯이 도망치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고, 고함을 치고, 울부짖고, 공포에 떨며 경직되고, 넘어지고, 다치고. 타인을 짓밟으면서도 살기 위해 도망쳤다. 그 아비규환 속에서 오직 소녀와 '괴물'의 사이만이 정적이었다.
'괴물'은 소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넌 쟤네하고 같으니까 도망가야 하잖아."

"글쎄요."

소녀는 미친듯이 도망치는 이들을 마치 물이 흐르는 것처럼 지켜보며, 어딘지 먼 목소리로 대답했다. '괴물'은 이도저도 아닌 소녀의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간을 좁혔다.

"난 괴물이야. 무서워해야지. 두려워해야 한다고."

"괴물인가요?"

"그래, 난 괴물이야."

'괴물'은 담담히 자신을 그렇게 자칭했다. 소녀는 무표정하게 그런 '괴물'에게 말했다. 아무렇지 않은, 정말 당연한 사실을 말하듯이.

"그런가요,"

물은 아래로 떨어진다거나, 지구에는 중력이 작용한다거나, 공기가 있어야 숨을 쉴 수 있다는 매우 당여한 사실을 말하듯이 소녀는 말했다.

"제 눈엔, 당신이 가장 '인간'답게 보여요."

'괴물'은 침묵했다. 소녀의 그 시선에 침묵했다.
소녀는 괴물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괴물은 소녀에게 있어서 '괴물'이 아니었으니까. 소녀의 시선에서는 도망치는 이들이야말로 '괴물'로 보였다. 소녀의 눈 앞에 있던 것은 작은 나이프를 든 그저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소녀는 언젠가 다시금 물었다.

"왜 내가 두려워할 필요가 있나요?"

아아, 그런가. 너는 그런 건가.
괴물은 나이프를 든 채 소녀를 끌어안았다.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맞이해주었다.
괴물은 소녀에게 '사랑'에 빠졌다.
영영 이해할 일 없이 끝날 터였을.


-

비명 하나 없는 채 깔끔히 잘려나간 목에서 분수처럼 피를 뿜으며, 줄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무너지는 몸. 그 선혈의 너머에서 그는 웃고 있었다. 평소와 하나 다를 것 없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어?"

신참은 자신에게마저 튄 그 새빨간 색채에 할말을 잃었다.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하는 것을 머리가 거부했다. 눈이 텔레비전 모니터를 보고 있는 것처럼 멀리 떨어진 다른 사실을 전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그는 자신의 옷과 얼굴에 흥건히 뿌려진 붉은 색채를 부인했다.
부인하려고 하고 있었다.

"항상 생각하는 건데 말야."

그런 그를 비웃듯이 어둠 속에서 남자는 조소하듯 말했다. 남자의 발에 밟힌 시체의 손에서 우드득 하는 으스러지는 소리가 났다. 허공에 멈춘 시선의 눈동자는 기이하게도 밟힌 손을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째서 다들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날리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응? 넌센스잖아. 이런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일 넘버 1! 이라는 타이틀을 내건 직업을 가지고. 어쩜 그렇게 당연하게 '죽을 리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걸까. 그건 이거 아냐? 가스실에서 죽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거나 마찬가지지."

우드드득, 거슬리는 둔한 소리와 함께 발을 비튼 대로 손가락이 이상한 방향으로 구부러졌다. 바닥에는 그렇게 피를 쏟아내고도 남은 것인지 손의 살이 까져 배어나온 피가 문질러지고 있었다.

"이상하지. 이봐, 너."

번득이는 회색 눈이 어둠 속에서 희번득였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맹수가 먹잇감의 이상행동을 관찰하는 것만 같은 눈이었다.
숨조차 쉬어지지 않았다. 말은 당연히 나오지 않았다. 식은땀이 쏟아지고 손발이 저려왔다.

"어째서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거야?"

어린아이의 호기심과 짖궂음. 그것을 닮은 물음으로, 그는 그렇게 물었다.
세계라는 것은 의외로 낙천적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당장 위험이 코앞에 닥쳐도 속에서는 잠깐 생각하고 만다. '나한테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어'하고. 지금 당장 머리 위에서 커다란 콘테이너가 떨어져 내린다 해도 '저런 게 나한테 떨어질 리 없잖아'하는 것이다.
사람은 생각 그 이상으로 낙천적인 생물이다.
남자가 피묻은 나이프를 휙휙 돌릴 때마다 반사된 빛에 번뜩이는 피들이 빛 안쪽의 바닥으로 흩어졌다.

"아, 혹시 요즘도 마법소녀 같은 거 믿나? 그 왜 세일러-"

남자의 장난기 어린 말이 채 다 끝내기도 천에 총성이 울렸다. 총탄은 시원스럽게도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고 말았지만 남자가 입을 다무는 정도로는 충분했다. 그 신참은 이를 악물고, 총을 잡은 덜덜 떨리는 손을 힘껏 억누르며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남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남자가 아닌 좀 빗겨나간 방향이었지만.

"야, 나 거기 아닌데."

남자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지적하자마자 신참의 총이 불을 뿜었다. 목소리가 들리는 대로 무작정 쏴댄 총탄들은 그저 바닥이나 벽에 튕기는 금속음을 내었을 뿐 하나도 맞지 못했다.
남자는 곤란했다. 정말 곤란했다.
웃음을 참아주는 게 곤란했다.

상대가 눈에 불을 켜고 진지하게 달려드니 연극처럼 같이 진지하게 상대하는 척이라도 멋있게 해 주고 싶었는데. 총은 안 맞지, 보는 데는 엉뚱한 방향이지, 도발에는 하나하나 다 걸려들지. 웃지 않을 수 없는데 진지한 척 해서 분위기 좀 타려니 참으로 곤란했다.
웃음을 있는대로 참으며 살짝 앉아있는 소녀를 돌아보니, 남자의 의중을 이미 다 꿰고 있던 소녀는 거의 썩은 동태눈을 하곤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정말로 이거 무리라고 생각하고, 그래도 잠시 참아주다가, 결국 남자는 폭소했다.

"푸하하하하하하! 와악! 왁! 웃겨! 미치겠네!"

갑자기 터진 폭소에 신참이 순간 뒤로 흠칫하고 물러났다. 어둠 속에서 바닥을 뒹굴 기세로 남자는 웃음을 터뜨리며 발을 굴렀다.

"히햐-안 돼, 안 돼. 역시 난 그런 분위기 같은 거 못 맞춰 줘. 미치겠네! 우와, 너 개그맨에 소질 있는 것 같다 야! 지금 당장 경찰 때려치우고 방송국 가서 오디션 받아보는 건 어때?! 하하하!"

굳은 얼굴에 일그러진 쓰디쓴 웃음이 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상대에게 자신의 '분노'가 통용되지 않는 복수자는 의미가 없다. 복수의 상대는 감정을 알고, 그것의 공포심을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눈앞에 '이건'뭘까. 상대는 감정도, 논리도, 정당성도 통하지 않는 인외의 무언가로 보였다.
신참은 팔을 떨어뜨렸다. 약간의 금속음과 함께 총이 손을 따라 내려갔다. 약실에는 아직도 총알이 남아있겠지만 그런 것은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었다. 총에 대한 두려움도, 고통에 대한 두려움조차 없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조차 없다.

그 모든 것이 크게 웃어 넘길 정도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저런 상대에게 복수를 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지?
지금 당장 아는 사람을 살해당해 폭발한 분노가 급속하게 식어갔다. 허탈함과 좌절감이 분노를 잠식해갔다. 커다란 폭소는 넌 아무것도 못 한다는 무력감을 심장에 꽂아넣고 있었다. 힘이 빠진 손에서 총이 떨어졌다.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가 웃음소리에 묻혀 스러졌다.

"개새끼."

그는 작게 읊조렸다. 단 한번도 쓴 적 없던 욕설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어둠 속의 남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틀린 말은 아냐."

상식적으로 통하는 그 어떤 감정도 통용되지 않는다. 지금 당장 폭발한 분노와 절망, 슬픔 같은 것을 아무리 부딪치려 해도 상대가 그 틀 밖에 나와 있으면 부딪쳐 봤자 상대는 귀나 후비며 웃어댈 뿐이다. 일방통행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저 쪽에서 아무리 비수를 이쪽에 꽂아도, 이쪽에서는 아무것도 되돌려줄 수 없다.

"불공평해."

"아무렴!"

툭 내뱉어진 울음이 섞이지도 못한 허탈한 말에 남자는 웃으며 맞장구쳤다. 더없이 재미있는 희극의 배우처럼 그는 과장되게 양 팔을 펼치며 노래하듯이 말했다.

"불공평한가? 부조리하겠지? 그런데 이를 어쩌나! 넌 날 못 잡아. 아무도 날 못 잡아. 난 안 잡혀. 난 안 죽어. 난 너한테."

-난 너한테, 남자는 그 말을 반복하며 어둠과 빛의 경계선에 바싹 다가서 그의 귀에 속삭였다.

"-난 너한테 안 죽어줄 거니까."

바로 한 겹. 물질도 아닌 단순한 빛에 의한 경계선. 그것은 모래사장 위에 나뭇가지로 그은 선 이상으로 침범되기 쉬운 선이었다.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단지 그림자와 빛의 경계선일 뿐. 누구라도 발을 내딛을 수 있고 누구라도 넘어가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던.

세상에서 가장 발을 내딛기 어려운 경계선.

그것을 코앞에 두고 웃고 있는 은색의 눈이 번득였다.

"아. 재밌다."

세상의 틀에서 벗어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경계선.

그 사이에 시체로서 걸쳐진 선배의 시체를 옆에 두고 그는 주저앉았다. 이미 빛 안쪽은 그 혼자뿐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우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다만 숨을 삼키는 소리만이 빛 안쪽에 맴돌았다.


"아아. 재미없어."

남자는 소녀를 옆구리에 끌어안은 채 아까의 말을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 짐짝처럼 옆에 꿰인 소녀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변덕이 죽 끓듯 하고 가치관이나 척도도 휙휙 바뀌는 인간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재미있어 죽을 듯한 일이 지금 당장은 재미없어지는 것도 드문 일은 아니었다.
그가 지금까지 그 어떤 게임도 올 클리어 한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이 그것의 대표적인 증거일 것이다.

그가 지금까지 염증을 느끼지 않은 것은 세상에 딱 두가지 뿐.

시체와.
소녀.

이 둘의 차이점은 죽었느냐 살아있느냐 뿐만이 아니라 좀 더 여러가지 있겠지만. 소녀에게 있어서는 단지 그 차이뿐인 두가지였다.
어째서 자신에게 염증을 느끼지 않는가는 소녀도 모른다. 아마 그 스스로도 모를 것이다. 소녀는 그가 모를 거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러운 이야기다.

"질렸나요?"

새삼스럽게도 소녀는 물었다. 남자는 어린아이처럼 부루퉁한 얼굴로 투덜거리듯이 말했다.

"아까까지는 저 녀석.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재미없는 것 같아."

"...최장기록이네요."

"그건 지금 이 순간에도 아가씨가 갱신하고 있잖아? 항상."

말에 악의 한점 있을 리 만무하지만 소녀는 속으로 단호히 생각했다. 그런 기록 갱신할 마음 없다고.
물론 입 밖으로는 꺼내지 않았다. 해칠까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남자는 소녀를 해치지 않는다. 아마 소녀가 그를 죽이려고 할지라도. 다만 소녀는 귀찮았던 것 뿐이었다. 남자가 징징대며 떼쓰면 골치아파지는 건 소녀니까.
소녀는 다만 조용히 말했다.

"그렇다면 제 기록은 의미가 없는 기록이네요."

"새삼스럽게 말하는데. 아가씨는 정말로 매정한 거 알지?"

눈물을 흘리는 시늉을 하며 장난스레 말한 남자는 소녀의 머리를 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부서질까 끊어질까 두려운 듯한 약하고 약한 손길이었다.

"새삼스럽게 말하는데, 아가씨는 정말로 착한 거 알지?"

"안 삐졌는데요."

"칭찬 정도는 그냥 들어주면 가시가 돋기라도 해?"

"...아마 심장 쯤에?"

"진짜로?!"

그거 큰일이네 그럼! 쾌활하게 웃는 남자의 목소리에 소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남자는 즐거운 듯이 웃었다.

"역시 이편이 재밌어."

"어느 부분이?"

"글쎄. 너랑 같이 있다는 부분?"

"그게 왜요?"

아마 그 스스로도 답을 알 리 없는 질문을 소녀는 던졌다. 어둠 속에서 남자의 회색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며 미소지었다.

"모른다는 건 참 매력적이지. 안 그래?"


"그러니 아는 건 질릴 수밖에."

0
이번 화 신고 2015-12-15 20:51 | 조회 : 1,618 목록
작가의 말
양야

미스터리 장르 진짜 인기없다...우와....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