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쿠로츠키] 너와 나의 관계




츠키시마는 핸드폰 액정을 톡톡 두드렸다. 얼마 전 핸드폰에 수신된 문자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자는 조금 흥분하고, 격양된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발신자는 쿠로오, 이에 츠키시마는 어떻게 답장을 할까 살짝 고민에 빠진 상태였다.


[어디야]

[전화 피하지 말고 받아]

[학교지? 부활동 끝나도 집에 가지 말고 기다려]


도쿄에서 미야기까지 오겠다는 건가, 수업이 없는 날인가, 아님 그냥 막나가는 건가. 해가 뉘엿뉘엿 산 너머로 넘어가는 시간인데도 쿠로오의 문자는 너 딱 거기서 기다려, 하는 듯 해서 츠키시마는 쥐고 있던 샤프를 내려놓고 액정을 두드려 글자를 입력했다.


[네. 기다릴게요.]



-



츠키시마는 쿠로오가 화가 난 이유를 대충 짐작했다. 아마 2년 전 합숙에서 연을 맺었던 아카아시랑 요즘 연락을 해서 그런거겠지. 한 두시간 전에 아카아시가 쿠로오씨 화 많이 났어, 라는 연락을 해 온 것 보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 말고는 짐작가는 이유가 전혀 없는걸.


츠키시마는 조금 거친 숨을 고르던 아카아시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주변이 웅성거리던 것을 보아하니 후쿠로다니 학원에 가서 난리 친 것 같았다. 그 학원 배구부에 관심이 있다 하는 학생이라면 쿠로오를 모를 리가 없었을텐데, 어지간히 화가 났는가 싶었다. 살짝 들리던 아카아시의 긴장감 어린 웃음소리가 계속 맴돈다.


하지만 그냥 연락인데 뭘.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고민이 있다면 들어주고. 가끔 연애 얘기도 하며 소소하게 관계를 유지해 나간 것이 그렇게 화날 일인가, 싶다. 무료한 일상에 조금 재미를 보태주는 문자친구. 나쁠건 없잖아?


더군다나 쿠로오와 자신은 아는 선후배 사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쿠로오씨가 멋대로 가져간 내 전화번호로 그가 빈번히 문자를 보낸다는 것 빼고는. 거기에 답장 해주기를 몇번, 걸려오는 전화 받기를 몇번. 맛있는 음식 사진을 보내서 야밤에 약올리기도 하고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받지 못했다며 투정 부리는 정도의 사이인데.


흐음. 츠키시마는 공을 정리하며 생각했다. 쿠로오씨가 정말 여기에 올까. 기다리라는 문자를 마지막으로 그에게서는 연락이 전혀 없다. 신칸센을 타고 왔다면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어둑어둑해진 창 밖을 보며 츠키시마는 그냥 갈까, 하고 잠시 고민했다.


"야, 츠키시마."

"?"

"하루종일 정신을 어디다 빼놓고 다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런식으로 연습 하지 마. 민폐야."


종일 츠키시마의 태도에 불만이 많았던 카게야마가 그에게 한마디 했다. 순간 울컥했지만, 뒤에서 저들을 향해 오는 다이치와 스가와라가 시야에 들어와 츠키시마는 한숨을 한번 쉬고 곧바로 사과했다.


"미안. 사과의 의미로 뒷정리는 내가 하고 갈테니 다들 먼저 들어가세요."


재빠르게 카게야마에게 사과하고 어느새 둘을 둘러싼 부원들에게 간단한 목례를 해 보인 후 츠키시마는 공이 들어있는 바구니를 밀어 창고로 들어갔다. 다이치는 이상하리만큼 고분고분한 츠키시마의 행동에 의아해했지만 곧바로 박수와 함께 부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자! 뒷정리는 츠키시마가 한다니까 모두들 짐 챙기고, 어두우니까 조심해서 돌아가!"

"그래도..."


카게야마와 츠키시마가 싸울까, 긴장했던 야치가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 야치를 보고 스가와라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츠키시마 기분 안 좋아 보이니까 한다는 대로 놔두자. 내일은 우리가 치우면 되고."


스가와라의 말에 부원들이 하나 둘 씩 제 짐을 찾아 체육관을 나서기 시작했다. 다이치와 아사히를 마지막으로 배구부 체육관에는 츠키시마 이외의 사람들은 남지 않게 되었다.


"..."


시끄럽던 체육관에 고요한 적막감이 찾아오자 츠키시마는 휴대폰을 열어 번호를 입력했다. 지금은 별로 얼굴을 보고싶지 않지만 봐야하는 사람. 그와의 통화를 연결해주는 단조로운 음이 들리자 아무리 츠키시마라도 살짝 긴장했다.


연결음이 몇번을 반복한 후에야 쿠로오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살짝 열린 체육관 문을 완전히 닫으며 체육관 안으로 들어왔다.


달빛을 받은 쿠로오의 얼굴은 꽤나, 볼만했다. 늘 능글맞은 웃음을 짓는 쿠로오에게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무표정이었기 때문이다. 츠키시마는 제자리에 서서, 쿠로오가 제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이대로 도망가면 안 붙잡히고 집에 갈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가능성은 아마 없겠지. 츠키시마는 쿠로오씨, 하고 그를 불렀다.


"..."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무래도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그가 아무말 없이 다가오기를 몇걸음, 바로 코앞에 들이닥친 쿠로오에게 살짝 위기감을 느낀 츠키시마가 뒤로 한발짝 물러나며 쿠로오씨, 하며 다시 그를 불렀다.


"읏..."


그런 츠키시마에게 아무 말 하지 말라는 듯 쿠로오는 입을 맞춰왔다. 뒷머리를 깨부술듯 쥐어오는 악력에 츠키시마는 아, 하며 신음했다. 그 사이로 쿠로오의 혀가 파고들어와 츠키시마의 입안을 유영했다.


"잠깐, 쿠, 로오씨..."


미미한 츠키시마의 저항이 있었다. 아니, 사실 미미하지 않았다. 츠키시마의 저항을 쿠로오가 그저 힘으로 봉쇄하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츠키시마가 더 이상 벗어나려 노력을 하지 않을 때, 쿠로오는 그를 놓아주었다.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요."


츠키시마가 입술을 손등으로 닦으며 쿠로오에게 말했다. 쿠로오는 잠시 츠키시마의 입술을 쳐다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래... 그랬지."

"...그런데 지금 행동은 뭔가요?"


쿠로오가 쉽게 인정하자 곧바로 츠키시마가 반격했다. 스킨쉽 하지 않기로 했던 약속, 잊지 않았음에도 이러는건 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거죠. 츠키시마는 조금 흘러내린 안경도 고쳐썼다.


"하나 물어보자."

"제 질문에 답 안해주셨는데요."

"너랑 나, 무슨 사이냐?"


츠키시마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사이? 몰라서 묻나. 그는 찌푸린 미간과 입꼬리를 살짝 올려 대답했다.


"글쎄요... 과거에 쿠로오씨가 제게 고백한 사이?"

"..."

"술김이라 서로 모른척 넘어갔죠. 그것 말고 더 있나요?"


츠키시마가 날카롭게 물었다. 달빛에 비춰지는 츠키시마의 속눈썹이 살짝 떨리는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쿠로오는 그런 츠키시마를 잠시 내려다 보다 특유의 능글맞은 웃음을 되찾곤 츠키시마를 차가운 바닥에 눕혔다. 물론 양 손은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은 상태였다.


"무슨..."


츠키시마가 입술을 깨물며 저를 결박하는 쿠로오를 올려다봤다. 그 눈동자에는 당혹감이 선명하게 내리앉아있어서, 쿠로오는 생각했다. 츠키시마 케이, 예쁘네.


어두운 체육관에서 결코 작지 않은 남자를 그저 힘만으로 제 아래에 속박한 쿠로오가 젖은 입술을 깨무는 남자를 눈에 담으며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내가 어디서 들은게 있는데 말이야."

"놓고, 말씀하세요."


츠키시마가 그에게서 벗어나려 살짝 힘주며 대답했다. 그런 케이를 보며 쿠로오는 가소롭다는 듯, 누워있는 그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며 물었다.


"...몸 섞으면 사귀는 사이가 되던가?"


능글맞은 얼굴, 그 안에 담겨있는 진심에 케이가 눈을 크게 떴다. 이사람,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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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선 메일이 더 보편적이지만 편의를 위해 문자로 적었습니다.
* 보잘것 없는 글이지만 자주 오는것이 목표입니다. 그런김에 여러분 하이큐 같이 보시지 않을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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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22 14:17 | 조회 : 2,013 목록
작가의 말
단제

사실 저 19 좋아하는데 어디까지가 기준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꺄아아아 떨리는 이 기분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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