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화를 타고 얽힌 연. 00

“너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모이라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란 뜻인 ‘페스코리’와 모든 권력을 쥐고 흔든다는 제국의 ‘에퀴테스’의 칭호를 동시에 가진 남자가 하나 있었다. 모두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연약해 보이는 소년의 외모를 갖고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자신의 압도적인 실력으로 잠재우곤 했다. 그에게 붙여지는 이름들은 하나같이 전설을 추앙하는 이방인의 소리였을 뿐이다.

그는 늘 다른 사람을 상대로는 권태로워 보였으며, 그의 눈은 언제나 죽은 사람의 것과 동일하게 느껴졌다. 그랬던 그의 눈이 빛이 난다. 그의 시선은 그 여리한 자신보다도 작은 ‘신’에게 꽂혀있다. 세계를 흔들었던 사람은 결심했다. 많은 것들이 얽혀 있던 생의 종착지에서 자신을 창조했던 신, 모이라이에게 차디찬 검 두 자루를 겨누기로.

<0> Werdatz.

세상을 뒤덮는 고요한 대륙, 웨르다츠는 언제나 그 이명에 걸맞지 않게 소란스러웠다. 세계의 중앙을 차지한 ‘로크세르’ 제국이 ‘제국’의 패러다임을 수백 년 앞서 선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작이 휘청거렸다는 점에서도, 이 대륙은 언제나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호사가들은 언제나 이야깃 거리가 넘치는 환희의 대륙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많은 주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있어 웨르다츠는 언제나 ‘고요했으면’ 하는 대륙이다.

. 베르누이 를레인 .

[베르누이 를레인은 웨르다츠 대륙력 374년에 태어나 433년에 죽었다. 웨르다츠 최고의 점술사로, 자신의 미래까지도 예측하고 행동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그 미래는 아주 좋지 못한 파국으로 치달았다. 자신의 미래를 알 수는 있었지만, 그를 바꿀 수 없는 불가항력의 상황에 놓였던 비극의 여인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웠지만 정작 자신은 로레노이츠 공작가의 제 2비로 살아가야 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성 ‘를레인’으로 죽어야 했으며, 신의 뜻을 거슬렀던 그의 아들은 살아서는 로레노이츠를 달았지만 죽어서는 를레인으로 불리었다.
- 웨르다츠 대륙력 950년, 현자 디오카르 메르헨데스 역, ‘역사를 바꾼 인물 100’ 1권,
7. 베르누이 를레인, pp.152~196]

그녀는 몰랐다. 처음에는 자신의 눈에 사람들의 다른 모습이 비춰지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보이는 그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했으나,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그런 말을 싫어했다. 하나같이 그녀의 말은 듣는 사람을 향한 ‘저주’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면 이런 것이었다.
그녀가 일곱 살 때 일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다른 모습이 보이는 그녀는 지나가던 사람에게 낫을 든 리치가 겹쳐 있는 것을 보았다. 화들짝 놀란 그녀가 위를 올려다보자, 리치 위에는 그 사람이 칼에 찔려 죽어버린 모습이 있었다. 그 사람에게 달려가 자신이 본 그대로를 이야기하자, 그는 코웃음을 치며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난 이 공작 령의 기사다. 날 누가 그렇게 죽일 수 있겠느냐.’라고 그는 말했는데, 그 말을 하고 정확히 13일 9시간 후 새벽 5시에 칼에 찔린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모두가 그의 죽음을 의아하게 생각할 때, 그녀는 자신이 보는 것이 사람의 죽음 등 ‘비애’에 관련되어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말을 아끼게 된다. 말을 하지 않는 대신 그녀는 이미 죽을 사람을 알게 되면 그를 추모하는 의미로 포아를리 네 조각을 먹었다.

그녀가 열여덟 살이 되자 대륙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다. 그녀는 이제 사람들의 미래를 선택해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덧붙여 예언의 능력도 얻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의 일을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어떤 국가의 가문도 구혼하지 아니하였는데, 이는 그녀가 보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원인이라 할만 했다.

그녀가 이제는 선택할 수 있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에 대한 소문은 점차 변질되어 오컬트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어떤 이유보다도 그녀에게 구혼하지 못했던 가문들에게는 더 납득할 만한 것이 있었다. 고작 그녀의 예언 ‘따위’가 무서운 것은 아니었다는 변명을 내세우기 충분할 정도로 말이다. 웨르다츠 대륙의 중앙에 국가를 세우고 있으며 가장 강력한 제국인 로크세르 제국의 대공 쿠츠카 디 로레노이츠가 그녀를 맞아들였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그는 좋은 뜻으로 그녀를 데려간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로레노이츠 저택에 들어간 첫 날, 로레노이츠 대공은 그녀를 찾았다.
“그 예언. 나를 위해서만 보아줬으면 하는군.”

그는 그녀밖에 몰라야 하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 뜻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거역할 수 없는 그의 모습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가 동시에 자신의 미래를 읽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입술을 꽉 물었다. 덧붙여 태어날 자신의 아이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아직 뱃속에 없지만.

대공은 그녀를 붙잡았다. 간단하게 식을 마치고 그 날 바로 거사를 치렀다. 거사라고 말하기에는 그녀가 불쌍할 정도로, 대공은 자신의 허리를 기계적으로 흔들었다. 자신의 여자가 되었음을 그녀에게 각인시키기라고 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였다. 대공은 거듭해서 그녀의 예언이 자신의 무기가 되어줄 것임을 확인했다. 그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 날 그의 아들을 임신했다.

대공은 그녀에게는 친절했지만, 그녀의 부른 배 안에 있는 아기에게는 냉소적이었다. 입 안이 바짝 마른 상태로 혀를 찼다. 미래를 보는 사람이 필요할 뿐, 그녀의 아들은 필요가 없었다. 예언의 능력은 웨르다츠 대륙 내에 유전 발현의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격세 유전의 위험이 있는 서자가 생기는 걸 원하지도 않았다. 그녀도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아들에게 로레노이츠라는 성 대신 자신의 성 를레인과, ‘세즈’ 라는 이름을 물려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양수조차 닦아내지 못한 아이를 빼돌렸다. 어떻게 빼돌렸는지는 전해지지 않지만, 그녀의 능력을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서 쓴 것으로 판단될 따름이었다. 아이는 무사히 빠져나갔지만, 아이를 잃어야만 했던 그 때부터 그녀의 눈에서는 생기가 돌지 않았다.
야사 [베르누이 를레인] 의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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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7-15 16:52 | 조회 : 1,393 목록
작가의 말
헤르닌

웨르다츠 랩소디 - 2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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