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쯤 되면 슬슬 진도 조금정도는 나가 주시지

평소에 도현이 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는 건 제 방 천장의 베이지 색 벽지였다. 그러면 제법 상쾌하게 일어나서 알바를 갈 준비를 할 터였다. 그런데 왜 오늘은 눈을 뜨면 보이는게 제게 진하게 딥키스를 하고 있는 스페이스일까.

도현은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운 채 멍하니 있었다. 제 앞에 있는 사람은 누구? 제 룸메이트이자 물주. 그렇다면 룸메가 하고 있는 건 뭐다? 진하디 진한 딥키스.

'나 이거 첫키스인ㄷ....'

"지금 이게 무슨 수면플이야 이 미친자야!!"

첫키스를 빼앗긴걸로도 모자라서 수면플이라.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도현은 그만 스페이스를 밀치며 크게 소리쳤다. 스페이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 아가, 너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천지개벽하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내 첫키스..... 첫키스는 어쩔 거냐고....!

울듯 한 표정을 지으며 도현이 울부짖었다. 스페이스는 당황한 포인트가 거기가 아닌 것 같지만.

"어.... 음.... 일단 진정하고...."

"진정할 수 있을리가 없잖아....!"

음, 네 첫키스 이미 너가 나 주워 온 새벽에 날아갔는데 말이야.

차마 그 얘기는 꺼낼 수 없었는지 스페이스는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도현의 등을 토닥였다. 아마 지금 이 얘기를 꺼낸다면 명치에 주먹이 날아든다던가 발로 정강이를 까인다던가 폭력을 당할것이 분명했다.

일단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미뤄두고, 스페이스가 무어라 할 말을 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흑..... 흐윽....."

".....아침 차려 줘?"

하지만 생각나는 거라곤 이 한마디 뿐.

"흐엉..... 차려 줘 이 나쁜놈아.... 계란 완숙으로....."

하지만 썩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세상 끝난 것처럼 울던 양반이 이렇게 눈을을 뚝 그치는 것을 보니까.

"응, 응. 일단 알바 다녀오고 나서 이야기 하자."

"....히끅, 응...."

--

"....스페이스."

"응."

"언제부터 한 거야? 이 딥키스? 오늘이 처음이지? 그런거지?"

스페이스는 현재 조금 난감한 기로에 섰다. 이 딥키스는 두달 전, 도현이 저를 주워 와 동거를 시작했을 때 부터 시작했었고, 그것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도현의 얼굴을 보면 [네가 전부터 했다고 말을 하면 난 널 죽일거야.] 라는 듯 한 얼굴을 하고 있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쩐다....?'

도현의 눈이 참으로 무섭다.
솔직히 지금 제 힘의 조금이라도 개방한다면 도현을 찍어 누르는 건 가능하지만 그런 공포정치같은 관계가 되고싶지는 않았다. 아가, 라고 도현을 불렀을 때 '히, 히익, 왜 그러세요, 스페이스 씨.....' 라는 반응은 아무리 스페이스라고 하더라도 조금 상처받을 터이니까.

그렇다면 지금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오늘 처음 했던거야."

"그렇지?"

눈에 띄게 누그러지는 도현의 표정에 스페이스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과연 현명한 선택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면, 왜 나한테 키스 한거야?"

"....에?"

이건 또 무슨 질문일까.

"그러니까, 왜 나한테 키스 한 거냐니까....? 뭐 이유가 있어서 그럴 거 아니야."

".....? 그거 진짜 궁금해서 묻는 말이니?"

".....??"

정적.

"하아...... 아가......"

도현, 너는.....

"정말 모르는거야....?"

넌씨눈.

--

"널 좋아해서인게 당연하잖아!!! 바보야!!!"

"하아?"

"뭐야 그 '이 자식이 무슨 개소리를 하고 있는거야?' 같은 표정은!!!"

"거짓말 하지 마!"

"아니 내가 널 좋아하고 있다는데 왜 아가 너가 내 마음을 판단하고 있는거야?!"

"그럴리가 없잖아!!"

"하? 이유나 조금 들어보자! 왜?!"

"그야!!! 당신같은 얼굴 잘생기고 성격 좋은 부자가 나같이 할 줄 아는거 따윈 없는데다 기껏 들어간 K대를 등록금 낼 형편이 안 돼서 휴학하고 있는 남자를 좋아할리가 없잖아!!!"

"뭐래!!! 너 고등학교 때 문과였다가 지금 이과인 주제에!!! 너같은 괴물 드물거든?!"

"뭐야 당신 내 과까지 알고 있었어?! 나 당신한테 내 과 얘기 한 적 없는데?!"

"전에 술취해가지고는 대학이며 과며 니 신체 정보 다 말했잖아!!"

"얼씨구! 내가 뭐라고 했는데?!"

"K대 다니고 있고 과는 생명과학인데다가 키 176cm에 몸무게 62kg!!!!"

"아 젠장 진짜 말했나보네!!!"

난장판이 된 걸 본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한참을 열을 내며 싸워대다가 이상함을 느낀 두 사람이 자리에 다시 얌전히 앉게 될 때 까지 앞으로 한 시간.

--

"큼, 진정하고. 당신이 날 좋아한다고?"

".....그래."

"....언제부터?"

"너, 역시 기억 안 나는구나...."

"말 돌리지 말고.... 제발....."

"말 돌리는 거 아니야."

사뭇 진지한 모습에 도현은 순간적으로 움찔, 몸을 떨고는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인지 '한 번 이야기 해 봐.' 라며 스페이스를 재촉했다.

"후.... 그래, 너가 딱 일곱살 때 일이다."

".....? 내가 일곱살 때?"

"그래, 일곱살 때."

"15년 전 일인데....? 그걸 기억하고 있을리가 없잖아....."

"뭐, 인간은 그러려나. 네가 일곱살 때, 너한테 말을 걸었어. 너 도깨비 신부같은 이야기 알지?"

"어어.... 알아. 요즘에 그런 내용의 드라마가 엄청 인기있으니까."

"약간 그런 느낌이야. 네가 내 신부였거든."

"....? 그런데 일곱살 때 찾아왔다고?"

"그냥 얼굴만 대충 보고 올 겸 간거지 뭔가 특별히 흑심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었어. 그런데 너가 너무 내 취향인거야."

"쇼타콤.....?"

"아니라니까. 그래서인지 무심코 말을 걸었는데, 너가 엄청 예쁘게 웃어주는 거 있지. 그래서 살짝 인장을 심어두고 왔어."

"에, 어디에? 내 몸에 이유모를 인장같은 거나 점같은 거 없는데?"

"인간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인장이니까. 그래서 요괴같은 녀석들이 널 건드리면 바로 나타날 수 있도록 해 놨어."

"어.... 나 지금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기분인데. 괜찮은건가."

"응? 괜찮을리가 없잖아. 이제부터 내가 널 데려가려고 난리를 피울거야."

스페이스의 선전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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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08 23:32 | 조회 : 465 목록
작가의 말
nic11884995

제 안의 스페이스는 도현이 한정 변태입니다.(지난주에 올리지 못해 분량은 두배로 했습니다. 양심은 있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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