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그대의 날.

[프롤로그]









정령왕의 영혼은 가장 순수한 영혼으로 선별된다.

죄를 짓지않고, 남을 시기하지 않으며, 자연을 사랑하는.


주신의 손길에 다시 한번 빚어지는 그들은 영생에 가까운 생명과 무한한 힘을 타고나니,

이들보다 옳곧고 바른 자들은 중간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리라.













[지금이라고 생각하니, 나의 아이야.]

[난 너의 생각을 항상 존중한다. 그러니 이건 내 실수라고 치도록 하자.]

[나는 항상 너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잊지말도록 하렴.]



온몸에 느껴지는 부유감이 지금 나의 존재를 깨닫게 해주고있다.

눈을 감은채 부유감에 몸을 띄어 놓고는 마치 태아로 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받는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에게 무슨말을 했는지, 내가 뭘하려 했던지,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애처롭게 뻗은 공허한 손길만이 나 자신을 잊지않게한다.



"당신은...!! 당신은 어째서..!!!"



눈가에 차오르는 것은 눈물인지, 나를 뒤쪽으로 끌어당기는 물길인지,

알길 없는 자애로운 미소만이 머리를 어지럽혀

아득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끝으로 그대로 무의식속으로 가라 앉고 말았다.



[잊지말렴 난 네편이야.]






...






여느때와 같이 한가로운 정오.

따스한 햇살은 대지를 따뜻하게 감싸안았다.

그 중, 평화로운 정령계의 물의 영역에서는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름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건 또 처음보군.]

[이봐, 엘퀴네스. 네 머리엔 뭐가 든거냐? 이렇게 한가롭게 볼때냐?]

[그건 내가 할말이다. 여기서 지켜보는 것 말곤 뭘 할 수 있다는거지?]


'으음...'


흐릿하게 들려오는 대화소리에 몽롱했던 의식이 점차 깨어남을 느꼈다.


'여긴...'


눈을 살짝 뜨자 보이는 것은,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물의 소용돌이였다.

하지만 내가 있는 내부는 부드럽게 나를 감싸 안았기에

겁이 나기보다는 영문을 몰라 당황했다.



[엘퀴네스, 진정하고 물 속을 봐. 저 아이가 눈을 떴다고.]

[빌어먹게도 눈동자마저 나와 같은 색이군.]

[방금 태어난 애 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듣는 나를 신경쓰지 않는 차가운 말투와, 그를 진정시키는 따뜻한 말.

그리고는 나를 흥미롭게 바라보는 네쌍의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이면서

나를 감싸던 소용돌이는 점차 줄어들었다.


줄어든다-고 해봤자 주위가 이미 물속에 잠겨있는 상황이므로

분해되어 사라진다고 하는게 맞겠지만.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야..'



소용돌이가 사라지자 부드럽게 땅에 발을 디딘 나는

어쩐지 멍한 눈길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공간 전체가 물속은 아니였으며 조금 더 많이 걸어나가면 물이 점점 옅어져 사라지는 듯 했다.


'그러고보니 나는 어떻게 숨을 쉬는거지..?'


이미 자연스럽게 숨을 쉬던 중. 나를 계속 보고 있던 것 같은 네명의 사람들 중에

마치 물빛을 그대로 머리카락에 담은 듯한 사람이 팔짱을 낀 상태 그대로 걸어왔다.



[넌 뭐지?]



그 사람은 무심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고,

대답하려던 나는 아무것도 대답 할 수 없었다.


"저..그..저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기억나는 건 없었으니, 대답할 말조차 없었다.


[머저리인가? 말조차 더듬다니, 심지어 갓 태어난 모습조차 성체가 아니군.]


정령왕은 본디- 자신의 영역에서 태어날 때는, 성체의 모습으로 태어난다.

그 후, 편의에 따라 키와 몸무게, 연령등을 조정하고 다니는데

처음에 태어날 때의 모습이 본래 모습이라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내가 알리가 없었다.



그저 차가운 말투로 몰아붙이는 그가 무서워 주춤주춤 물러나기만 했던 나를,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하얀 머리의 장발 남자가 감쌌다.


[말이 너무 심한거 아니야? 갓 태어난 애라고,..]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놀란 나를 뒤로한 채

하얀 남자는 나의 팔을 몇번 주물럭 거리며 만지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 아이...실체가 있어.]


[뭐? 그럼 인간이란 말이야?]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마 실피드. 인간이 어떻게 정령계로 넘어올 수가 있겠어?]


하지만 미간을 구긴채로 내 양팔을 잡고 있던 실피드라는 이름의 남자가 다시 대답했다.


[하지만 확실해. 이 아인 인간이다. 물의 권능이 느껴지는.]



나에대해 이런 저런 말을 나누던 세 사람을 뒤로한채

내가 뒷걸음친 거리를 다시 좁혀온 물빛 머리의 남자가 갑자기 내 멱살을 잡았다.



"무..무슨...."



[넌 누구지? 왜 나와 똑같은 권능을 갖고 있냐는 말이다.]



그가 거칠게 추궁하며 그의 뒤편으로는 얼음으로 된 창이 수십개 생긴 듯 했다.

얼음창은 일사분란하게 나를 겨눴고,

그에 감탄할 새도 없이 겁에 질린 나는

대답할 거리를 이리저리 찾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에

숨을 멈추었다.








-이건.....다......때문이야...!!!!!




갑자기 멱살을 잡혀 버둥거리던 내 움직임이 멈추자, 모두가 날 바라보았고,




-다...때...문.....죽어!!!!










파앗-


내 옷을 거칠게 잡은 손을 떼어내고는

나는 주저 앉아서 숨을 거칠게 쉬었다.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기억과 물 밀듯 밀려오는 두려움에

울음이 터져나왔지만, 왜인지 소리내어 울지는 못하였다.


[세상에..엘퀴네스..!! 무슨 짓이야 대체??]


"때...때리..지..마....때리지...마..."


실피드에게 감싸안긴 채로,

눈물을 머금고 엘퀴네스라는

사람을 쳐다보자,엘퀴네스는 위협적으로 차가운 시선을 보내다, 이내 물로 녹아내려 사라졌다.



[진정하렴, 괜찮단다. 아무도 너에게 해를 가하지 않을거야.]


그에게 안겨있는 품속에는 온기가 없었지만,

그 말 안에 담겨있는 따뜻한 온기가 나를 다독여

어느새 기절하듯이 다시 잠들고 말았다.

아무것도 모른채로.













{실피드의 시점}










오늘도 평소같이 할 일 없는 하루였다.

자연계의 순리에 따라 바람을 일으키고, 정령들의 이런저런 보고를 듣는.

그런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강한 기운이 물의 영역에서 느껴졌고,

그 기운에 놀란 나는 물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믿기 힘든 광경이 일어나고 있었다.


햇빛이 비춰 내려오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물길 속

거대한 소용돌이가 물의 영역의 정원을 뒤덮고 있었다.


투명한 소용돌이는 유동성있는 바다의 보석을 보는듯한, 신비로운 모습이였다.


멍하게 보고있자 어느새 하나 둘씩 모여 사대 원소의 정령왕들이 모두 모였고,

이는 즉 이번 대의 물의 정령왕인 엘퀴네스가 소멸하지 않았다는 뜻이였다.



[이봐 엘퀴네스, 네 영역에서 무슨 일이야?]

[닥쳐라 이프리트. 네놈 목소리를 들을 기분이아니야.]


그 후 이프리드의 말도 못하게하냐, 니가 그러고도 정령왕이냐 하는 불만에

가득찬 목소리가 빗발쳤지만 그에 신경쓰지 않고

내 시선에 들어온 것은 한가지였다.



물의 폭풍 중심애 있는 작은 인영.



그리고 이 과정은 틀림없는 탄생의 순간이였다.



[내가 노망 날때가 다 됬나봐..실피드...]

[아니, 네가 멀쩡하게 보고 있는게 맞아.]


노아스가 믿을 수 없는 눈초리로 말하자 조용히 대꾸해주고는 안을 주시했다.

그리고 보이는 것은..



틀림없는 또 다른 물의 정령왕이였다.


물빛 머리를 갖고, 현대의 엘퀴네스보다는 좀더 부드럽고, 작은.



[나름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건 또 처음보군.]

[이봐, 엘퀴네스. 네 머리엔 뭐가 든거냐? 이렇게 한가롭게 볼때냐?]

[그건 내가 할말이다. 여기서 지켜보는 것 말곤 뭘 할 수 있다는거지?]


다른 세 정령왕들의 대화가 끝나자, 이내 물의 폭풍이 옅어지더니

'또 다른 물의 정령왕'이 선명하게 모습을 보였다.


허리까지 오는 물빛의 머리, 물빛의 눈동자를 갖고 선명한 이목구비를 가진 그 아이는

살며시 내리깐 속눈썹에는 정령왕 만이 타고나는 고귀함마저 베인 듯했다.


아직 성체가 되지 못한 미성숙한 모습에서는 개화 직전의 꽃의

아름다움이 내비쳤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창백한듯 투명한 피부와, 분홍빛으로 빛나는 입술,

그리고 사파이어를 박아놓은 모습은,

현대 엘퀴네스의 자식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령왕은 후손을 볼 수 없는데 말이지/.'


멍하게 주위를 보던 '또 다른 정령왕'에게 심기가 불편한

엘퀴네스가 다가가서 넌 뭐냐, 하고 물었지만

그 '정령왕'처럼 보이는 아이는 대답을 못한채 우물거리며 말을 삼켰다.


방금 탄생의 순간을 거쳐 정신 없는 것은 알겠지만,

궁금한 것은 마찬가지기에 뒷걸음질 치는 그 아이의 뒤로 이동해 팔로 감싸 안았다.


정령왕이라고 생각한 그 아이의 팔에 따뜻한 온기가 만져졌고,

그에 인간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확실히 물의 권능이 느껴졌다.




그리하여 땅의 정령왕인 노아스와 불의 정령왕인 이프리트와

잠시 논의를 하고 있던 사이에

기분이 바닥을 치던 엘퀴네스에 의해 일이 터졌다.





엘퀴네스의 물의 권능으로 그의 등뒷편으로는 수많은 얼음창이 생겨나

그 아이를 겨누고 있었고

바닥에 주저앉아 벌벌떨며 울고 있는 그 아이의 모습이보였다.


[세상에..엘퀴네스..!! 무슨 짓이야 대체??]


내가 아이를 주저 앉은 아이를 안으며 아이를 살펴 보았을 때에는

아이는 소리를 삼키며 울고 있었고,

엘퀴네스의 눈은 잠시 그 아이를 바라보다

눈물이 가득차 흘러내리는 아이의 물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고는

그대로 뒤돌아 사라졌다.



한번도 누군가의 탄생에 이런 소란이 일어난 적은 없었고,

정령왕이 두명 있던 일은 없었어야 했지만, 지금 내가 할 일은 하나였다.



"때...때리..지..마....때리지...마..."


품에 안겨 때리지 말라는 소리를 반복하고 있는 이 아이에게



[진정하렴, 괜찮단다. 아무도 너에게 해를 가하지 않을거야.]


라고 말해주는 것이였다.







소란스러운 정령계의 첫 하루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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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3-24 22:21 | 조회 : 806 목록
작가의 말
nebuia

분위기가 무겁네요..!다음화부턴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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