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여기 알바요

우여곡절 끝에 학교를 마쳤다. 오늘은 알바 하는 날이라서 집에 들러서 옷만 갈아입고 바로 나와 시내로 향했다.

저번에 갔었던 디저트 가게가 있는 시내는 번화한 곳이라서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내가 알바 하는 곳에도 사람이 꽤 많았다. 물론 덕분에 내가 채용됐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지하로 내려가 사장인 현우 형에게 인사하고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유니폼이라고는 해도 하얀 와이셔츠에 까만 정장바지 정도의 가벼운 정장차림이다.

각 출입구와 가까운 곳에 바가 있다. 대부분이 뚫려 있지만 둘 만의 조용한 분위기를 원하는 손님들도 계셔서 점점 안쪽으로 들어가면 몇몇 테이블은 양쪽으로 커튼을 칠 수 있게 해 놓았다.

“단추 잘 잠가 놓고, 저번에 말했던 것처럼 하면 되고, 혹시 무슨 문제 있으면 바로 말하고.”
‘엄마 같아...’

내 생각을 눈치 챘는지 머리를 가볍게 꽁 쥐어박으며 멍하니 있지 말라고 덧붙이며 자연스럽게 주문을 받는 형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서 오늘 연습해 볼 칵테일을 확인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형에 친근하게 말을 걸면서 나에 대해 묻는 사람이 있었다.

“어? 얘가 니가 말하던 걔야? 예쁘네. 안녕, 난 서준이라고 해. 준이 형이라고 불러.”
“왜 왔냐.”
“친구가 왔는데 너무 매정한 거 아니야?”
“뭐래. 주문 안 할 거면 나가.”
“주문 할 건데? 여기 이쁜이에게~”
“...나가라.”

고개를 들어보니 가벼운 호남형의 사람이었다. 초록색의 싱그러운 머리에 이젠 그러려니 했다. 밖에 나가면 보이는 알록달록한 색색의 머리들이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이채를 띈 서준 형은 상큼하게 웃으며 주문했다.

“그럼 애플마티니로 할게, 자기~”
“작업 걸지 마!”
“아이고 무서 워라~”

애플마티니는 사과 향이 풍부한 스미노프 그린애플 보드카와 달콤한 스위트 & 사워 믹스가 더해져 처음에는 상큼한 사과의 맛을 끝에는 보드카의 강한 알코올 맛을 느낄 수 있는 칵테일이다.

그리고 색은...

만들고 보니 영롱한 빛깔의 초록이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만들 기야 했지만 선뜻 주기가 망설여졌다.

살짝 눈만 들어서 그를 쳐다보니 바에 턱을 괸 채 여전히 상큼한 미소로 나를 보고 있었다. 현우 형은 주문을 받으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왜~? 새삼 반한 거야?”
“아뇨.”
“앗, 이 애플마티니는 혹시 내꺼? 고마워 잘 마실게!”
“이거 손님이 주문,”
“자기! 나를 생각하면서 만들어 준거야? 이 색은 나와 닮았네!?”
“아뇨. 절대 아닌...”
“에이 부끄러워하지 마. 괜찮아.”

왜 이 세계 사람들은 다들 내 말을 끝까지 안 들어줄까. 갑자기 슬퍼져서 그냥 남자가 말하고 싶은 대로 놔두었다.

그리고 실컷 떠들던 남자는 뒤에 온 현우 형에게 한 대 맞고 돌아갔다.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신경 쓰지 말라고 하며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준 뒤 또 다시 주문을 받으러 가버린 현우 형을 바라보았다. 어려지니까 머리도 쓰다듬어주는군!

단추를 끝까지 잠그는 것이 답답해 두어 개 풀어 놓았더니 현우 형이 놀란 토끼 눈을 한 채로 득달같이 달려와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잠가주었다.

약간 흐트러진 형의 자주색 머리카락이 따뜻한 조명에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예뻐서 만져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예쁘다...”
“...뭐?”

생각만 한다는 것이 말로 나갔나보다. 정확히 듣지는 못했는지 다시 물어보기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못 들었으면 다행이지. 그러자 또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다시 흉흉해진 얼굴로 잔소리를 했다.

“야 인마, 너 내가 단추 꼼꼼하게 잠그라고 했지!”
“답답해서…”
“답답이고 뭐고! 너 이렇게 하고 있으면 남자들이 널 어떤 눈으로 쳐다보는지 몰라?”
“네……?”
“그! 하- 아니다. 아이고, 내가 어쩌다가 이런 둔탱이를 채용시켜서는,”

그러더니 가슴을 퍽퍽 치고는 안쪽에 있는 창고 쪽으로 횡 하니 들어 가버렸다. 그렇게 바는 아니었지만 손님이 몰릴 때는 일손이 부족해지니 곧 나오겠지 해서 약간 어질러진 바를 정리했다.

‘내가 뭔가 화나게 했나?’

그래도 양심이 있어 잠시 고민해 봤지만... 역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금방 나온 형도 아무렇지 않아보여서 계단을 내려오는 손님을 보며 단추를 하나 풀었다.

답답해

물론 그걸 보고 기겁한 현우 형에게 또 다시 잔소리를 들으며 단추가 채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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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19 14:38 | 조회 : 4,406 목록
작가의 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궁금한게 있으시다면 바로바로 댓글에 써 주세요. 성심껏 답해 드릴게요.(소근소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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