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비밀

리카는 레바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 입 잘 턴다?"
"시끄러워."

레바가 샨에게 한 말 중 거짓은 없었다.




4. 비밀




샨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살려서 카니가 하는 일을 돕기로 했다. 사람들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그녀를 믿었다. 모두가 그녀를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카니왔니?"


카니가 하는 일은 마을의 순찰. 분쟁이나 범죄가 일어나면 그것을 막고 곤란한 일이 있으면 여러 가지 일을 도와주기도 하는 일이다.


"그 애는..."
"아, 이번에 저희랑 같이 살게 된 샨이에요. 얘기 들으셨죠?"
"뭐, 그렇지."


샨을 본 중년 여인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마을 일부는 샨을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그녀가 '순혈'일지도 모른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혼혈은 머리카락 색과 눈 색이 완전히 다르지만 순혈은 같은 계열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눈과 머리카락이 모두 녹색 계열인 샨이 순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혼혈 중에서 아주 소수는 같은 계열인 경우도 있지만, 그들은 그런 것까지는 생각해주지 않았다. 순혈을 향한 원망이 너무나도 깊다.


"하하, 별다른 일은 없었죠?"
"...나는 없었는데, 옆 구역에서 사는 아이들이 그놈들한테 맞았다고 하더구나."
"또 그놈들이에요?"
"그놈?"


언제나 미소를 지우는 일이 없던 카니가 얼굴을 구기며 언성을 높이자 가만히 지켜보던 샨이 물었다. 카니는 신경질적으로 땅바닥을 밟고는 잠시 후, 진정된 듯 샨이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밝은 표정을 지으며 샨에게 설명했다.


"사냥꾼인 형제인데 자기 힘만 믿고 행패 부리는 놈들이야. 사냥꾼은 귀중한 인력이니 강하게 처벌할 수도 없고 그놈들도 그걸 아니까 더 날뛰지.

저번에 오빠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밟아준 뒤로 잠잠하더니 난리 났네."


아를리는 현재 감금되어 있고, 레바와 리카는 다친 두 명의 사냥꾼 대신 사냥하느라 바쁘다. 카니의 힘으로는 그들을 막을 수 없으니 보란 듯이 날뛰는 것이다.

카니는 혼혈이지만 체질 때문에 육체 능력이 형편없다. 이럴 때 카니는 자신의 약함이 원망스럽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해야 하는 약함이, 그동안 벌어지는 일을 막을 힘이 없다는 것이.


"그건 그렇고 카니, 집 벽이 망가져서 그런데 도와주겠니?"
"아, 네. 셋이서 하면 금방..."
"너만 들어와라."


카니는 그 말에 어쩔 줄 몰라 샨과 여성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여기서 어떤 말로 샨을 감싸던 역효과일 것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란 어렵고, 바꾸려고 할수록 거부하고 더 강하게 자기 생각을 굳힌다.

샨은 괜찮다는 뜻으로 웃으며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카니는 애써 웃으며 금방 돌아오겠다고 말하며 낡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있으면 조금 춥네.'


그렇게 생각하며 카니를 기다리는 샨을, 뒤쪽 골목에서 두 남자가 지켜보고 있었다.


"저 여자인가?"
"딱 봐도 혼혈이 아니잖아. 레바 그놈은 힘만 더럽게 세고 멍청하다니까."
"순혈따위는 이곳에 있을 수 없지."


샨을 바라보던 남자들의 두 손이 검은 비늘로 뒤덮였다.





사냥꾼이 둘이나 다친 것은 큰일이었기에 리카와 레바가 동시에 사냥을 나가야 했다. 한참 사냥을 하던 레바는 불길한 예감에 리카와 다른 사냥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을로 돌아왔다.


"오빠!!"


레바는 막 마을로 들어서는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발소리와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카니가 자신에게 손을 흔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카니는 매우 불안한 얼굴로 헐레벌떡 뛰고 있다. 심각한 상황임을 짐작한 레바는 한걸음에 그녀의 바로 앞까지 뛰어가 어깨를 붙잡았다.


"카니, 무슨 일..."
"오빠, 샨이 없어졌어요!"
"뭐?"
"어떡하죠? 제가...두고가는 게 아니었는데, 어떡해..."


카니는 자신을 탓하며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레바는 그런 카니를 안아주며 어깨를 토닥였다.


"진정해. 걱정하지 마. 응?"


진정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는 지금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이 도움되지 않는 것임을 안다. 카니는 떨리는 몸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반응도 이해가 간다. 샨이 마을 사람들에게 호감을 얻기는 했지만 그건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 이야기이고 나머지 몇몇 사람들은 샨이 순혈이라고 의심하는 이 상황에서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혼혈은 순혈을 증오한다. 샨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괜찮아. 나도 찾아볼게. 넌 쉬고 있어."


레바는 카니를 가까운 바위에 앉히고는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와 목도리를 그녀에게 둘러주었다.


"저도 찾아야..."
"그 모습을 샨이 보면 울걸. 내 실력을 믿고 잠깐 쉬고 있어."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엉망이 된 머리카락, 붉게 굳은 얼굴과 손, 부은 눈. 레바는 여동생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는 가볍게 뛰어올랐다.

가벼운 도약으로 그는 커다란 나무의 끝까지 올라갔다. 레바는 나뭇가지 끝에 서서 마을을 둘러보았다. 그렇게 잠시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돌리고 뛰어올랐다.


'피 냄새다.'


그것도 꽤 무거운. 만약 저 상당한 양의 피 냄새가 샨의 것이라면 샨은. 레바는 애써 불길한 생각을 지우고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샨이 기다리던 그 장소였다.

냄새가 진동하는 것을 보면 이 근처가 분명한데 보이지 않는다. 눈을 감고 후각에 집중해 냄새의 근원지를 찾으려던 도중, 냄새가 갑자기 더 강하게 풍겨왔다. 레바가 고개를 돌아보니 아까까지는 아무것도 없었던 골목에 피가 흩뿌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급하게 골목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갈기갈기 찢긴 시체가 벽과 바닥에 널부러져있었다.


'이놈들은 그 멍청이 형제잖아?'


자기 힘만 믿고 까불다 결국 레바한테 밟히고만 그 형제들이 참혹하게 찢겨있었다. 멍청하다고는 해도 레바나 아를리가 아니면 그들을 막을 자가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정예 사냥꾼들이다.

레바는 방금 이 현장에 왔고 아를리는 감금되어있다.


'대체 누가...'
"레바."


그가 화들짝 놀라며 몸을 틀자 그곳에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샨이 서 있었다. 걱정과는 달리 상처 하나 없는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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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01 19:50 | 조회 : 1,235 목록
작가의 말
B.B.ZZ

4화만에 주인공이 죽을 뻔 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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