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5화[마왕님, 일냈네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황제는 마침내, 무릎을 꿇었습니다.
선처를 바라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에 답한 건 마왕님이 아니었습니다.

“추하네요, 황제씩이나 되는 게.”

답한 건 메이드씨 였습니다.
너무나 담담해서, 무릎을 꿇은 게 아무렇지도 않아질 정도로 맑고 시원한 반응이어서. 다들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한 가신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어요.

“이런 무례한 것! 아주 건방지구나!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전하, 이런 무례한 것의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을 생각이십니까! 마왕이 무서운 것입니까! 어차피 봉인된 무력한 몸입니다! 저놈이 가진 것이라곤 몸과 불사뿐이란 말입니다! 병사들에게도 밀릴 무력한 봉인된 마왕이란 말입니다! 어서 일어나서 저년에게 벌을 내리시고 체통을 지키소서!”

무례하군요. 정말 무례합니다. 누가 누구더러 무례하다고 하는지. 혀를 차지 않을 수 없군요.

“너야말로 정말 주제 파악을 못하나 보구나, 건방진 신의 아이야.”

마왕님은 담담히 말했어요.
하지만 그 말에는 약간의 위압감이, 묻어있었습니다.
그 위압감은 방금의 가신은 물론이고 이에 동참하려던 다른 가신들의 입조차 다물게 하였습니다.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마왕님은 따분해졌습니다.

“더는 할 말이 없다면 이만 돌아가도록 하거라? 뭣하면 볼 것도 없지만, 구경하다가도 괜찮고. 난 슬슬 다시 자고 싶으니까 말이지. 더 깨 있으면 분명 봉인이 약해질 거야. 그런 건 내가 원하지 않거든.”

마왕님은 자신이 할 말을 모두 끝마쳤다는 듯 상체를 지탱하던 팔을 접고 다시 침대에 누웠어요. 메이드씨는 살며시 이불을 덮어줬고요. 이 부분만 보면 아주 평화롭네요.
황제는 고민했습니다.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결정했습니다.
제국은 패망하고 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마왕이라도 끌어들여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패전이 거듭되어 제국은 지도에서 사라질 것임을 황제는 직감했습니다. 황제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허리를 세우고 반듯이 서서 할 말을 조금 곱씹었습니다.
곱씹던 그때, 젊은 가신이 앞으로 나와 말했습니다.

“마왕이여, 그대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 하나는 용의 제국으로 팔릴 것인가. 둘째는 우리 인간의 제국의 편에 서서 제국이 전쟁에서 이기도록 힘을 보탤 것인가. 제아무리 봉인 당했다고 해도 일반병사보다는 강하겠지? 약하다면 최소한 뚫리지 않는 방패 정도라면 되겠지. 자, 선택하도록 해라.”

오만방자한 대사입니다. 아까 그 가신의 친척이라도 되는 걸까요.
마왕님은 슬그머니 일어났습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서서 다가오고 있었기에, 황제와 가신들은 마왕을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자르지 않아 허리를 넘어가는 길이의 긴 은발. 검붉은 색의 뿔. 보는 이를 압도하는 맹금류 같은 눈빛. 아쿠아마린보다 맑은, 마치 맑은 날의 바다와 같은 색의 눈. 마족 특유의 희고 매끄러운 피부. 옷은 가벼운 셔츠와 검은 바지. 산책하듯 가벼운 걸음걸이.
황제는 힘겹게 침을 삼켰습니다.
마왕님의 아름다움과 피부로 느껴지는 압도적인 강함에 숨을 쉴 수 없었습니다.
마왕은 천천히, 가벼운 걸음으로 젊은 귀족에게 다가갔습니다.
젊은 귀족은 폐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위압감에 몸이 찌부러질 것만 같았습니다. 자신은 왜 거기서 나섰을까.
구조의 뜻을 담아 황제를 보았으나, 황제는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려버렸습니다.

“어딜 보는지 모르겠구나, 자. 날 보고, 똑바로 말해보거라. 기회를 주마.”

가까이에서 본 마왕님은 생각보다 큰 키가 아니었습니다.
180이 조금 넘는 자신과 비슷한 키. 그것도 살짝 작았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 담긴 힘은, 그 눈빛에 담긴 위압은 자신은 고사하고 용제의 그것과 비슷할 정도였습니다.
젊은 귀족은 입을 벌렸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나오길 했죠. 비명도 말이라고 할 수 있다면요.
방안에 사나운 비명이 울렸습니다.
메이드씨는 조금 인상을 찌푸렸고 황제는 일순 정신이 날아갔고 다른 가신들과 병사들은 놀라 우왕좌왕했습니다. 마왕님은, 조금 웃고 있었을지도요?

“말하란다고 정말 말하려고 할 줄 몰랐는데, 멍청하네.”

마왕님은 뽑아낸 혀를 저만치 던져버리며 말했습니다. 그때 마왕님은 분명히, 웃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후련하다는 얼굴로 말이죠.

“사람의 혀를 뽑아놓고 한다는 말이 그겁니까..? 치우는 쪽의 입장도 생각해주시죠”

메이드씨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어딘가로 연락했습니다.
이윽고 하얀 사제복을 입은 누군가가 뛰어들어왔습니다.

“루이지아! 마왕님 깼다고?! 그보다 응급환자! 나 진짜 심심해 죽는 줄 알았어!”

꽁지머리의 남자는 방긋 웃으면서 젊은 가신에게 다가갔습니다.

“정-말 깨끗하게도 뽑히셨네요! 적당히 조각이라도 남아있으면 그걸로 재생시켜 드리려고 했는데! 마왕님 외과 의사하지 않으실래요? 명의가 될 실력이신데? 그보다 이 정도면 그렇게 아프진 않았겠다-! 뽑혀서 다행이에요! 전 마왕님 처음 만났을 때 뜯겼거든요? 근데 그게 얼-마나 아픈지! 정말-”

“그만하고 치료나 해. 평범한 인간이라구?”

“어, 아! 응! 루이지아는 오늘도 예쁘네-!”

“.. 로리콤”

“에-? 상처받아버려-!”

“에카이츠, 일해.”

“에- 차가워-? 언제나처럼 리안더♡라고 불러줘?”

..산만한 남자로군요. 이걸 잠자코 듣고 있는 마왕ㄴ-???
마왕님이 사라졌-!! 아, 아니군요. 그냥 침대에 다시 들어간 거 뿐이었네요.
황제는 분위기가 조금 풀어진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황제는 조심스레 말을 꺼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마왕님이 더 빨랐어요.

“그래서, 전쟁에 참전해라? 같잖은 소리. 난 참전하지 않아.”

단호했습니다. 전혀 돌려 말하지 않았고, 장난삼아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황제는 절망했습니다.
마왕을 참전시키기 위해 왔는데, 젊은 가신은 혀까지 잃었는데. 얻은 건 하나 없이 돌아가야 한다니. 황제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머리에서 불이 날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깨에 큰 손이 턱- 하고 얹혀졌습니다.
놀라 뒤를 돌아보자, 무려. 무려! 용제가 떡하니 웃으며 있었습니다.

“넌 역시 인간에게 너무 차가운 거 같아 로이드- 인간의 사정 정도는 조금 생각해주지그래?”

용제는 가볍게 말했습니다.
그에 반응해서 마왕님의 표정은 썩어들어갔습니다.

“인간의 사정 따위 알까 보냐. 내가 사정을 봐주는 인간은 용사뿐이야. 인간 따위, 은혜는 물론이고 원수도 기억하지 못하니 말이야.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번식과 미칠 때까지 웃는 것뿐이야. 아, 미칠 때까지 웃는 건 너도 그랬던가? 카데르”

마왕님은 언짢다는 어조로 쏘아붙이듯 말했어요.
그에 용제는 웃음으로 답했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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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06 05:41 | 조회 : 1,261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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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화만3번 날려먹은 작가양반입니다. 어, 0.75화 생깁니다. 쿨럭.. 분량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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