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맞다.
확실해졌다.

근 한달동안 매주 일요일 빼고 카페에 와본 결과,

저 사람은 이 카페 사장이 확실하고, 다른 직원들은 전혀 없다.
문제는…직원을 구하고있지 않는다는 것.




규모가 큰 카페도 아니고, 북적일 땐 북적이고 한산할 땐 한산했다.
밖에서 서성거리며 몇번씩이나 드나드는 나를 사장은 가끔 이상하게 보곤 했지만,
이내 신경을 끄며 다시 읽던 책으로 시선을 던지는 모습이…








아,

급하게 몸을 돌렸다.



지나치는 사람들이 흘금거릴 정도로 식은 땀을 흘리며 급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들어섰다.
일부러 카페 근처로 이사까지 왔다.
이정도야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렇게 시도때도 없이 아래가 반응하는 사람인데,
이사 쯤이야.





집으로 들어서서 급하게 버클을 풀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나뒹구는 신발은 이미 뒷전이었다.





"후으…"





무심한 듯 책으로 던진 시선은 반짝이고, 커피향 가득한 카페 안에서 그는 땀에 젖는다.

책이 이미 저쪽으로 내팽겨쳐진 뒤, 그는 테이블 위에 눕는다.

이미 밖은 새벽,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고,

카페엔 두사람.




나와,

내 아래에서 신음하는 그.







"……읏,!"


파정의 순간이 썩 달갑지만은 않았다.
실제와 상상의 괴리는 생각보다 끔찍하고, 슬펐다.
그래도 이제 슬슬 그의 곁에 다가갈 수 있겠지.




"뭐부터 해야되나…"



담배는 피지 않지만 이럴 때면 가끔 피고싶었다.

머리가 복잡하고, 개운치 못했다.
여전히 그 생각만 하면 빳빳히 고개를 드는 것도 참아야 할텐데,
바로 곁에 두고도 과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일단, 부딪혀보자.




"저기…"

"아 네, 무슨일이세요?"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젊었다.
보통 이런건 은퇴 후에 하지 않나? 고작해야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
자영업 시작하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나이 같은데.




"혹시 직원은 구하지 않으세요?"

"아…지금은 일손이 부족한것도 아니고…그래서 혼자하고있어요."




착한 그는 미안해 죽겠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웃는다.

너무 착하게 굴지마.
죄책감들잖아?



"제가…커피를 정말 좋아하는데…"



뜬금없이 얘기를 꺼내면 이상하게 볼 만도 한데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금새 내 말에 집중했다.
나보다 한뼘정도 작은 키는 생각보다 훨씬 자극적이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테이블이 원망스러웠다.




"집안 사정때문에…배울 시간도 없어서요…그냥 어깨너머라도 조금씩 보고싶어서…"




가지가지한다.
순식간에 부모님을 아들 바리스타 학원도 못보내는 형편으로 만들어버렸다.

어차피 내가 뭘하고 다니는지 관심도 없으실텐데, 이러나 저러나 중요한건 무조건 카페에서 일할만한 구실이 필요했다.




"보수는 많이 안주셔도 되요! 그게 목적도 아니고…최저임금보다 조금 주셔도 되요…!"

"아니에요!!"




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면도 있었나, 깜짝놀라서 흠칫했는데 그가 거의 울듯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그렇게 꿈을 갖고 있는데 당연히 다 알려주고! 시급도 많이줘야되요! 이제 매일 오세요!"




와,

생각보다 훨씬 순진하구나.
정말로 나이가 궁금해졌다. 게다가, 저렇게 순진해서 지금까지 사기당한적이나 없을까.
이젠 내가 맨날 옆에있을거라 그럴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될까요?"

"되고말고요! 오늘부터 하실래요? 간단한것부터 다 알려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정말…그런데, 말놓으셔도 되요."



자기가 사장인 걸 모르는건지 아까부터 계속 존댓말을 쓰길래 슬쩍 얘길 꺼냈더니
본인도 이상한걸 느꼈는지 머쓱하게 웃는다.



"그, 그럴까 그럼…? 이쪽으로 와."





카운터 안으로 들어서는 뒷모습이 너무 앙증맞다.
깨물어버릴까?

미치겠다, 정말.




단언컨데 정말이지 나는, 그만 아니었으면 평생 커피같은거 얼마 마시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럴바에 밥한끼를 더 먹고 술한잔을 더 마시겠다.
그렇지만 역시 그에게는, 이런 은은한 향이 나는 커피가 잘어울리긴 했다.




"아, 아직 내 이름도 모르지? 현 우현이에요. 웃기지?"

"아뇨, 예쁜 이름이네요."

"고마운데."





인상을 찡그릴 법도 한데 그는 남자에게 남자인 자기 이름이 예쁘다는 말을 듣고도 진심으로 고마워한다.

하긴, 진심으로 예쁜이름이긴 했다.
그 갈색 눈동자보다는 덜했지만.




현우현, 현 우현…

곱씹을수록 좋은 이름이었다.

섹스할 때 부르기 참 좋겠네.







"기계 다루는 법 부터 알려줄게."



언젠가 그의 몸도 이 기계처럼 다 알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어딜 만져야 그가 가장 흥분하고, 어딜 만져줘야 가장 오래동안 전희를 느끼는지.
나는 그의 말에 집중하는 척 하면서 쉴 새 없이 그 여리고 가는 몸을 훑었다.










"오늘은 손님이 없어서 다행이다. 어때, 할만 해?"

"네. 생각보다 훨씬 좋아요."

"나까지 뿌듯하네."




작전이 생각보다 꽤 괜찮았나. 그는 진심으로 좋아했다.
이런거에 약하구나.
테이블을 정리하고 바닥을 닦은 뒤 문을 잠갔다.
CLOSE 라고 써있는 팻말이 예쁘게 흔들거렸다.




"사장님"

"응?"

"오늘 회식할까요? 환영회 해주세요."



넉살좋게 웃어보이자 그가 하하-웃는다.
그의 눈엔 그저 막내동생같은 느낌일 수도 있겠다.
흔쾌히 그는 그러자며 근처 술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적당히 시끌시끌한 분위기의 번화가, 적당히 어두운 술집, 적당힌 취한 두사람.

우현 사장님,

떠오르는 거 없으세요?










"술 잘 마셔?"

"남들 마시는 정도는 마셔요."

"그래? 부럽네-난 진짜 못하거든."

"저때문에 무리하시는거 아니에요?"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래, 그 얼굴엔 술 못마셔줘야지.
어쩜 이사람은 이렇게 대놓고 나를 끌어들이는거지?

생각했던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한달동안 지독히도 노력한 결과가 달았다.





"오늘같은 날은 취해도 괜찮아."




그런 말을 하면서 웃는 그는, 정말이지 빳빳하게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미치겠네.

그래도 오늘 하루종일 잘 참아서 대견해하고 있었는데.
하루하루를 이렇게 보내야될걸 생각하니 암울했다.
그가 선뜻 다가와 해결해줄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후읏…"




밭은 숨이 터져나왔다.

화장실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놀라긴 하겠지만 지금 가장 급한 건 나였다.
화장실 문을 잠그자마자 그대로 벨트와 버클을 푸르고 고개를 쳐든 것을 어르고 달래주었다.

조금만 참자. 이제 곧 진짜 네 주인을 만날거야.








"…사장님?"

"아, 왔어."



내가 그렇게 오랜시간동안 있었나. 아니면 진짜 이렇게까지 술에 약한건가.
고작 몇병 마신 거 가지고 벌써부터 얼굴이 빨개져있었다.

게다가,



"담배도 피세요?"

"가끔, 가끔-"




의외였다.

술엔 약하면서, 담배라니.

뿌연 연기가 그 입술에서 뿜어져 나오며 흩어진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가리던 연기가 흩어지며 다시 그 얼굴이 보인다.



이상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지독한 어둠이 이끌어낸 욕망.

0
이번 화 신고 2016-12-15 00:19 | 조회 : 1,276 목록
작가의 말
레몬녹차

이것도 많이 사랑해주세여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