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점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도영이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고 있는데,

"누구길래 그래?"

불쑥 튀어나온 윤재의 목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그냥 그...그래!여기서 같이 일하는 친구!"

나도 모르게 당황해 횡설수설 대답하자,그리 좋아보이지 않는 윤재의 표정.

"신입인가봐!어휴~정말 저 친구가 여기가 얼마나 낯선지 나한테 자꾸 의지하네!그렇게 그리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건만!하하하!"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지?
뒤늦게 어색한 웃음으로 마무리를 해보지만,말 같지도 않은 말들은 이미 나간지 오래였다.
윤재의 표정은 평소와 달리 잔뜩 굳어 있어 어쩐지 낯설어 보였다.

"윤..재야?"

그에 바보같이 겁먹어선 조심스레 이름을 부르자,윤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글 웃으며 내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 말이 그렇다면 뭐.어쨋든 난 이제 부장님께 인사 드리러 가볼게."

그리곤 부장님의 사무실 쪽으로 몸을 돌리는 윤재에 나는 찜찜한 기분으로 자리로 돌아왔다.

아까 도영이의 반응은 대체 뭐였을까.
또 그런 차가운 표정을 짓다니...
왜 그런거지?

도영이의 차가운 목소리와 표정이 뇌리에 깊게 박혔는지 자꾸만 떠올랐다.
일은 해야 되는데 잊혀지지가 않아 좀체 일에 열중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여기는 엄연히 직장이었고 이런 사적인 것에 계속 이러고 있을 순 없다는 것을 겨우 알아차린 나는 양 손으로 뺨을 때렸다.

"안 되,한태윤!정신 차려!"

스스로 기합을 넣으며 일을 어서 끝내야 겠다고 다짐했다.

**************

"후...겨우 끝냈다."

오후 8시가 되서야 일을 끝낸 나는 자리에서 기지개를 쭈욱 폈다.
계속 수그리고 컴퓨터를 보느라 눈에 피로감이 잔뜩 몰려 눈을 감으며 휴식을 취했다.

꼬르륵-

"아,배고파."

잊으려고 미친듯이 일을 하다보니 배에서 밥 달라고 아우성이였다.

"슬슬 가볼까."

더 이상 배고픔을 견딜 수가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정리한 후 옷가지를 챙겨 들고 나왔다.

집 가서 뭘 먹지?
귀찮은데 뭐라도 시켜 먹을까?
피자?치킨?보쌈?

깜깜한 복도를 걸으며 행복한 고민에 빠져 싱글벙글 웃는데 문득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 왔다.

"어디 가"

으응?이 목소린...

"도영아!"

어째 익숙하더라 했더니 역시나 도영이였다.
낮에도 그랬듯이 여전히 차가웠지만 괜히 반가워 밝게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나만 반가운건지 차가운 눈빛이 날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도영아,낮에는 말이야..."

그 눈빛에 눌려 내가 왜 변명거리를 늘어 놓으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해야 될 것 같애서 시작하려는데,

"그만."

도영이가 딱 끊어 버렸다.

아...
많이 화가 난건가?
어쩌지?
아니 애초에 화가 난 포인트가 뭐지?
속으로 답답해져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다시 한 번 복도 내에 울리는 차가운 목소리.

"그 남자,누구야."

마치 여자친구 단속하는 남자 마냥 평서문의 짤막한 한 마디였다.

그 한 마디가 나에겐 무척 당황스러웠다.
뭐지?
그 남자라면...윤재를 말하는 건가?
윤재가 뭐 잘못했나?
왜 갑자기 윤재가 궁금한거지?
그러나 최대한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윤재?윤재는 내 친구야."

그러나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도영이가 어느 새 내 코 앞까지 와 내 팔을 거칠게 잡았다.

"그러니까 무슨 친구라는거냐고.너는 친구라는 새끼랑 그렇게 회사 내에서 껴안고 그러냐?"

"아 그게..."

너무 오랜만이여서 그런건데 왜 그렇게 화를 내.
라고 하고 싶었지만 거칠게 당겨진 팔에 중심을 잃어 도영이의 단단한 팔 안에 갇혀 버렸다.

"나도...나도 참고 있는데.그 새끼가 뭔데 먼저 선수 치냐고."

귓가에 무언가 억누르는 듯한 도영이의 목소리가 내려 앉았다.
그러면서 더더욱 나를 꽈악 안아와 한 마디 하려는 찰나.

꼬르륵-

뭔가 심각한 분위기에 알맞지 않은 소리인거 같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배가 고픈데 어쩌리.

소리가 작지 않아 역시나 도영이도 들었나 보다.

"뭐야,아직도 밥 안 먹었어?"
나를 자기 품에서 떼어내며 물어와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까지 밥도 안 먹고 뭐한거야.하,진짜 너 때문에 내가 미치겠다.따라 와."
내 손을 꽉 쥔채 성큼성큼 회사에서 빠져 나가는 도영이.

너 때문이잖아,너 때문.
나도 얼른 밥 먹으려 했는데.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다행히 화가 좀 풀린 것 같애서 열심히 도영이 뒤를 쫒아갔다.

열심히 쫒아가다보니 다다른 곳은 일명 상위 몇 퍼센트들만 다닌다는 그 유명한 이탈리아 레스토랑 앞이였다.

"여..여길 가자고?"
설마 아니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를 품고선 물었지만,
도영이가 망설임없이 안으로 들어선다.

"아,아니 잠깐만!"

"왜 그래?"

결국 나는 발길을 멈췄다.
의아한 도영이의 시선에 나는 우물쭈물 말했다.

"나 여기서 밥 먹을 만큼 돈이 많지가 않다구..."

자존심은 상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일개 직원이 번다면 몇 푼을 번다고...
엄마에게 좋은 것 해드리려면 돈도 많이 쓸 수 없는 처지였다.

"걱정 마.내가 사."
그러나 도영이가 짤막히 대답하며 다시 한 번 나를 이끌고 어떤 방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우..우와...
뭐라 설명할진 모르겠지만,이 곳 확실히 비싼 곳이구나를 뼈저리게 체감할 수 있었다.

"빨리 앉아."

촌놈같이 이리 저리 두리번거리는 나를 손수 의자에다 앉혀준 도영이가 벨을 누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들어온 남자가 도영이를 보더니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이제 오셨군요!언제 또 들리실지 궁금했는데!"

"한 동안 일이 좀 바빳습니다.에이미는 잘 지냅니까?

"그럼요,그럼요!덕분입니다!"

아는 사이인건지 짧게 대화까지 나누는 걸 보니 왠지 기가 죽었다.
이 대화에는 낄 수 없으니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럼,주문을 늘 하던데로 하시겠습니까?"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한 차례의 대화가 끝나고 남자가 나가자 방 안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그러고 있을 필요 없어.익숙해져야지."

그리고 잠시 동안의 침묵을 깬 건 도영이의 목소리였다.

"왜 익숙해져?"
그 말에 의아함이 들어 고개를 들고 묻자 도영이의 다정한 눈빛이 날 사로 잡았다.

"왜..왜 그렇게 봐?"
놀라서 말까지 더듬으며 묻자 도영이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뻐서."

그러면서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난 남자라고."
왠지 다정한 눈빛에 홀릴 것 같애 고개를 홱 돌리며 툴툴댔다.
그러고보니 예전에도 윤재가 나한테 예쁘다고 했었는데.
난 남자라고.
왜 남자한테 예쁘다고 하는거지.

"그게 뭐가 중요해.내가 이쁘다는데."

하지만 도영이가 막무가내로 나오자
나는 체념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썩-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왜인지 도영이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처음보는 듯한 즐거운 표정이 생각보다 티없이 해맑아서,
잠시 넋이 빠져 버렸다.

똑똑-

"주문하신 스페셜 A코스 2개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문 두드림과 동시에 들어온 직원 때문에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재빨리 고개를 돌려 버렸다.

양 손에 은쟁반을 든 직원이 차례대로 음식들을 내려 놓았다.
닫혀있던 뚜껑들을 열자 색깔의 조화를 이룬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그 자태를 뽐냈다.

"편안한 시간 되십시오."

직원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나가자 방 안은 맛있는 음식 냄새로 가득찼다.

"너,진짜 정체가 뭐야?재벌 2세,뭐 이쯤이라도 되는거야?"
바로 눈 앞에 놓여진 잘 구워져 윤기가 좔좔 흐르는 스테이크를 두고 다시 한 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아까 언뜻 보니까 가격들이 몇 백은 넘어가는 것 같던데...

"픽-재벌 2세라..그렇다고 해두자.그 편이 더 낫겠네."

"와아-재수 없어라."

알 수 없는 말을 한 주제에 이리 재수 없을 수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더 말하기를 멈추려다가 문득 궁금증이 생겨 입을 열었다.

"근데 저번에 그랬잖아.나랑 같은 병원이었다고.그 때 우린 무슨 사이였어?"

"...그건 왜?"

"사실 잘 기억이 잘 안나서 말이야~이상하게도 어렸을 때 일이 너무 희미하네."

"희미..하다고?"

이렇게 물은 도영이의 표정은 어딘가 오묘한 구석이 있었다.

"응.누군가 지워버린 것 마냥 기억이 나질 않아.아무리 어렸어도 그렇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니까 답답하기도 하네."

지금 말하는 순간에도 아무런 기억도 나질 않았다.
안개에 가려져 있는 것 처럼 뿌연것도 같고.

"글쎄,무슨 사이였을까..."

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은 도영이는 의자를 내 옆으로 끌어와 앉으며 무언가 회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 입에서 무언가 기억이 날만한 실마리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자,
바로 몇 미터 거리에 있는 붉은 입술이 움직였다.

"톰과 제리 알아?"

엥?
왠 톰과 제리?
난데없는 톰과 제리 타령에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돌리자 도영이가 장난기 한 점 없는 진지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톰과 제리는 원수지간이야.왜인줄 알아?톰이 하도 제리를 괴롭혀서.그것도 딱 죽기 직전까지.그치만 톰이란 놈은 아주 교활해서 그냥 괴롭히지 않아.당근과 채찍 알지?처음엔 잘해주는거야.제리가 방심할 수 있게.그러다가 제리가 방심할 때 쯤 되면 다시 숨통을 죄여가는거지."

무슨 사이였는지 물었는데 갑자기 톰과 제리라니.
혼란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을 알아챘는지,도영이가 다시금 말했다.

"그냥 뭐...친한 사이였다고.아주."

이 말을 끝내며 미소를 띄우는데,처음엔 사실 아주 조금이지만 소름이 돋았달까.

"그렇구나.친한 사이였구나,우린."

그러나 추워서 그랬겠거니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러면 병원 생활은 어땠을까?
또 다른 궁금증이 생겨 물어보려 입을 열려 했지만,

"어쨋든 이제 먹어.배고프다."

먼저 도영이가 선수쳐 잠자코 식어버린 스테이크 조각을 하나 둘 입에 넣으며 접시를 비웠다.

"벌써 어둡네"

조금은 혼란스러웠던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나오자 이미 9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아,저녁은 진짜 잘 먹었어.너 덕분에 집에 가면 배부르게 푹 잘 수 있겠다.헤헤."

맜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나니 기분이 좋아져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도영이 역시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면 난 먼저 가볼게.오늘은 고마웠어."

이 말과 함께 뒤돌아 섯는데 손목이 꽈악 잡혀 버렸다.

"어디 가.데려다 줄게."

"어,괜찮은데..어어어?"

저녁만 해도 과분한데 귀가까진 미안해서 거절하려 했지만,한 순간 몸이 부웅- 뜨더니 도영이의 어깨에 안착했다.

"야야야!!"

어쩐지 데자뷰 같았지만 일단 내리는게 먼저라서 소리쳤다.

"조용히 해.이렇게라도 안하면 가버릴 거 같애서."

그러나 담담하게 말을 하는 도영이는 빠르게 발을 옮겼다.

"아,진짜 괜찮다니까."

"내가 안 괜찮아.누가 잡아 가면 어떡해."

이렇게 결국 차 안에 앉혀졌다.
진짜 괜찮은데...누가 날 잡아 간다고.
그치만 이왕 이렇게 된거 어쩔수 없지 뭐.
나는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안전벨트를 메려고 클립 쪽을 잡았는데,갑자기 도영이의 손이 내 손을 덮는다.

"으응?"

당황해서 쳐다보자 도영이가 내 손을 빼내더니 직접 안전벨트를 매주는 게 아닌가!
뭐지,이건!
눈을 연신 깜빡이며 쳐다보자 도영이가 슬쩍 웃어주며 자기 것도 맨 후 차를 출발시켰다.

아니,무슨,왜...
아까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 물으려 했지만 어쩐지 타이밍을 놓쳐 우물쭈물 있었다.
그 사이에 빨간 신호에 차를 멈춘 도영이가 오른손을 움직여 라디오를 틀자 잔잔한 클래식이 흘러 나왔다.

"어라?이 클래식,나 좋아하는건데."

어쩐지 낯익은 클래식이라 했더니,요즘도 많이 듣는 클래식 중 하나였다.
좋아하는 클래식이 나와 나도 모르게 내뱉자,

"나도 좋아하는 거야."
도영이 내 쪽을 한 번 보곤 말했다.

이 클래식,은근 호불호 갈리는 거라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데.
설마 새로 생긴 친구가 나랑 동지였다니!

"이 클래식은 어떻게 안거야?"
한껏 들뜬 목소리로 묻자,도영이가 생각하는 듯 잠시 아무 말 없다가 말했다.

"예전에 좋아하는 사람이 자주 듣는 거 였거든.가끔 생각 날 때 듣는 건데,이렇게 들으니 또 감회가 새롭네."

좋아하는 사람의 클래식이라니.
뭔가 로맨틱하잖아!
도영이의 의외인 모습에 또 한 번 놀라며,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구나,낭만적이네."

이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조용히 클래식에 빠져 들었다.
창 밖을 내다보며 바깥에 빠르게 지나쳐가는 차와 사람들을 구경하며 마음에 평화를 만끽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정신을 놓고 깜빡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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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2-12 15:48 | 조회 : 999 목록
작가의 말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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