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올해 스물 여섯.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나이.
대부분 직장인이 그렇듯 늘 일에 치여 살고 있어 제대로 된 취미 하나 없는 처지이다.

"한 대리, 이것 좀 복사해주게."

그리고 평소에도 나를 갈구지 못해 안달난 박부장님이 오늘도 어김없이 나에게 일을 시킨다.
아니, 내가 신입이면 이해하겠는데 내 아래로 신입이 무려 3명이나 있는데!
그러나 일개 사원이 뭘 어쩌겠느냐만은.
투덜거리며 박부장님이 안겨준 종이 한 상자를 들고 엘레베이터에 탔다.
그러니까...3층이었나?

삑-

한 손으로 힘겹게 버튼을 누른 뒤,머릿속으로는 이따 먹을 점심 메뉴을 고르고 있었다.

띵-동

그러다 다왔다는 소리가 들려 무의식적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툭-하고 상자가 무언가에 닿았다.

"응?"
워낙 상자가 큰 터라 옆으로 고개를 내밀자, 앞에는 어디서 본 것만 같은 차가운 표정을 가진 남자가 서 있었다.

어디서 봤지....?
어디서 봤더라?
잠시 머리를 굴렸지만 이내 지금 해야 할 일을 생각해내곤 남자에게 말했다.

"아, 죄송하지만 비켜주시겠어요?"
웃으며 친절하게 말했건만, 남자는 꿈쩍도 않는다.

"저기요?비켜주시라고요."
잘못 들었나 싶어서 한 번 더 크게 말했지만, 역시나 미동도 없다.

"비켜달ㄹ..."

"....거야..?"

"네?"

다시 한 번 비켜달라 하려는 참이였는데, 남자의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되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입을 열었다.

"니가 쏟은 이 커피, 어쩔거냐고 물었는데."

커피..?
앗!!!
그제서야 시야에 남자가 들고있는 컵의 커피가 옷에 쏟아져 있는것이 들어왔다.

"죄..죄송합니다!!"

왜 저걸 이제서야 발견한거지?!
당황한 나는 박스를 들고 나가 얼른 커피를 닦아주던지, 세탁비는 얼마 드려야 할까요라던지 하는 말들을 내뱉으려 했지만,

"어..어..어..?"
그만 발이 꼬여버려 넘어져버렸다.
박스 안에 들어있던 종이들은 왜인지 악마의 날개처럼 팔랑팔랑 사방에 흩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심지어 몇 장은 바닥에 쏟아져 있는 커피 위에 내려 앉기까지.

"으.."
설상가상으로 어떻게 넘어진건지 발목이 무척 아파왔다.
발목을 연신 문지르며 어떻게든 일어나려 했지만, 이런 고통에 익숙치 않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어쩔수없이 고개를 든 나는 아직도 앞에 서서 날 차갑게 내려다보는 남자에게 SOS를 청했다.

"이..이왕 민폐끼친거..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될까요..?"
왠지 내 자신이 무척 뻔뻔하다고 느꼈지만, 어쩔수 없었다.
그러나 남자는 내 말을 들은건지 아닌건지 어떠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휴...도와주지 않으려나..
하긴 커피까지 쏟았는데...
근데 힘이 안 들어가는데 어떡하지?

일단 머리를 굴리며 엘레베이터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와,
어정쩡하게 바닥에 앉아 최대한 다리에 힘을 주었다.

"으..."
그치만 너무 아프다...
어떡하지...?
잔뜩 울상을 지으며 어쩔줄 몰라하고 있기를 몇 분,
이런 내가 한심했는지 내 앞으로 손을 내미는 남자.

"앗!감사합니다!"

보자마자 큰 소리로 감사인사를 하며 동아줄을 잡은 것 마냥 단박에 남자의 손을 잡고 힘을 실어 어찌어찌 일어섯다.
그리고 남자는 나를 부축하여 다시 엘레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어?저기요?어디 가는거에요?저 저거 복사해야 되요!"

또 다시 당황한 나는 소리쳤지만, 남자는 나를 들쳐매기까지하여 어디 갈 수도 없게 했다.
그가 누른 층은 7층.
내 사무실은 5층이라 그 위로는 가본 적이 없기에 다소 생소한 층수였다.

"저기요,진짜 어디 가는거에요?"
나는 다시 한 번 물었지만, 돌아오는건 역시나 침묵.
결국 나는 남자가 가는데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띵-동 소리와 함께 엘레베이터가 열리자, 남자가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고,
얼마 안 걸어 검은 색 문 앞에 다다랐다.

띠띠띠띠띠띠띠-
비밀번호를 하나하나 누르니,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남자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귓가에 박히는 지독히도 낮은 목소리.



"어서 와. 우리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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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1-19 00:40 | 조회 : 1,501 목록
작가의 말
오네

안녕하세요:)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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