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단형사 신가람

간만에 차키를 들고 집을 나왔다. 평상시대로라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은 하늘께서 시원하게 빗방울을 흩뿌려주시는 바람에 우산도 무용지물이 되어 가장 안전한 방패, 정말 오래간만에 나의 애마, 검은놈을 타기로 했다. 도대체 얼마만인지, 검은놈이 어디 있는지도 잊어버려 한참 비를 맞고 있었다. 그러고 있자니 옷이 젖어 주머니에 있는 것들도 다 젖을 것 같았다. 그래서 주머니 속의 물건들을 가방에 옮겨 담던 중, 작은 키 하나를 발견했다. 생각해보니 이걸로도 애마를 부를 수 있었던 것 같다. 키에 있는 작은 버튼 하나를 누르니 “삐빅” 하고 애마가 힘차게 한 번 울었다. 옳지.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 애마를 쓰다듬고는 올라탔다. 그러니 애마는 다시 크게 울더니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나가는 산책이라 정말로 기분이 좋은가 보다.

언덕위에 있는 이 파란 건물은 얼마 전 발령 난 나의 일터이다. 이곳에서 나는 형사라는 직함을 달고서 매일 컴퓨터를 뚫어지게 바라보거나 연신 휴대폰을 두들기기도 했다. 여기로 오면서 새로 시작하게 된 모바일 게임이 있는데 어찌나 즐겁던지 어느새 지갑까지도 열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어쨌든 나에겐 일이 너무 없었고, 이런 딴 짓거리를 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다들 그랬으니까. 사소한 사고쯤이야 순경 몇이서 사이렌 울리며 달려가면 종결이었고 형사 사건이 될 만한 일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 평화로워 여유롭달까. 그야말로 평화 그 자체였다. 나는 그런 평화로운 나날이 좋았다.
오늘은 내 애마가 달려준 까닭인지 파란 건물은 횡 하니 비어있었다. 덕분에 평소에 하지 못했던, 한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기로 했다. 의자에 앉아 어지러울 때 까지 빙글빙글 돈다거나 서류파일을 내리치며 잔뜩 분위기를 잡는다거나 형소 텔레비전에서 봤던 것들을 하면서 형사다움을 만끽했다. 마지막으로는 어렸을 적 봤었던 드라마 수사 반장의 최불암 아저씨를 따라해봤다. 한껏 감정이입을 한 뒤, 수화기에 손을 가져다놓으니 전화기마저 연기를 시작했다. 오, 연기 좀 한다? 그리고 나는 연기의 연장으로 수화기를 자신 있게 들었다.
“예, B경찰서 강력 1팀 반장 신가람입니다.”
사실 난 강력계 반장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건 연기일 뿐.
“아.......여, 여기. 그러니까.......”
“무슨 일인지 정확히 말 해주시죠.”
“그, 그니까 제 친구가........”
아이고 답답아. 말 좀 끝까지 해라.
“네. 친구가요?”
“죽, 죽었어요.......”
순간 당황했다. 연기인가? 실제상황인가? 만약 연기라면 이 사람, 연기를 정말로 잘한다.
“진짜.......인가요?”
“진짜라니까요! 제 친구가 죽었어요. 몇 번이나 말해야 됩니까!”
실제상황 이었구나. 아, 어쩐지. 연기치고는 너무 리얼했어.
“아.......저 그러니까 그러면, 조금만 기다려 주실래요? 반장님에게 보고해야 돼서.”
“당신이 반장이라면서요! 그냥 와서 뭐라도 해주세요.......”
말하는 여학생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 떨림이 상황의 심각함을 더욱 느끼게 해주었다. 일단 나라도 가봐야 하나. 잠시 고민이 되었다. 이럴땐 수사 반장에서는 어떻게 하더라. 일단 메모지를 빼고 펜으로 “반장님, 중요한 사건이 있어서 가볼께요.”라고 적었다. 그리고 반장님 책상에 얌전히 올려놓은 채 다시 검은놈을 불렀다. “삐빅” 아직 검은놈은 힘이 넘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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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0-01 00:11 | 조회 : 1,122 목록
작가의 말
미역무늬

안녕하세요. 형사 신가람의 미역무늬 입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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