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 오른쪽 허벅지에 선명하게 새겨진 글씨는 다름 아니라 사람의 이름이었다.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진한 필체로 적힌 이름은 ‘及川 徹’, 읽으면 오이카와 토오루. (일거나 아마도)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글씨. 그리고 사람의 이름. 틀림없었다. 나는 ‘네임 버스’ 였다.

대체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지 아니면 사춘기 시절에 나타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주변에 존재하는 소수의 네임버스는 다 그랬으니까.

그런데. 왜. 사춘기는 다 지나갈 고등학교 3학년에 돌연 이름이 새겨진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보통 이 나이면 거의 성인이나 다름없는 거 아닌가. (아직 5월이지만)

거기다 하필이면 더 공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이런 귀찮은 일에 말려들어야 한다니 완전 사양하고 싶다. 아니, 사양한다고 될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나저나 ‘토오루’ 인가.”

기막힌 우연인 걸까. 누가 짜놓은 시나리오라면 삼류. 운명이라고 하자니 오장육부에서 거부감이 올라온다. 이름 자체는 마음에 들었다. 내 이름도 ‘토오루’ 니까. 한자는 다르지만. 분명 이름에 잘 어울리는 남자아이일 거고.
조금은 궁금해졌다. 이름의 주인이 누구인지.

‘같은 학교…는 아니겠지.’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네임 버스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이름이 연결된 두 사람이 신체적 접촉 같은 걸 하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 아마 같은 학교는 아닐 것이다. 아, 하지만 지금까지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몰랐을 수도.

상대가 내 이름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냐도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몰라도 그 사람은 내가 상대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니 혹시나 주변에서 맴돌았을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을 떠올려보면 힌트가 있을 수도 있는데.

다만 나는 꽤나 괴멸적인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는 터라 초등학교 시절부터는 물론이고 중학교, 현재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풀네임으로 외우고 있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안면 인식 장애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같은 학교고 자시고의 문제를 넘어서서 다른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지금 당장 같은 반 급우의 이름과 얼굴을 떠올리라고 해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 내가 말주변이 없고 무뚝뚝한 얼굴에 귀여운 성격도 아니라는 거다. 그 상대와 만난다고 해도 잘 될 것 같지 않을 것 같아. 이런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아주 개인적인 문제도 하나 있고.

머리 끙끙 싸매봐야 지금으로서는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슬슬 욕조에서 나가지 않으면 현기증이 일어날 것 같았기 때문에 나는 이 문제를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그래,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미뤄두자. 되도록 대학에 올라간 다음 만났으면 좋겠다. 그 때 만난다고 내 성격이 달라져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당장 급한 성적에는 지장을 주지 않을 테니까 조금은 상냥하게 굴 수 있지도 않을까?

일단은. 아마도.

*

‘아, 제대로 잠 못 잤어. 머리 아파라.’

최대한 미루자고 욕조에서 기세 좋게 일어나서 씻고 닦고 말리고 누운 것까지는 좋았는데 머리를 눕히자마자 다시 온갖 걱정거리가 스멀스멀 올라온 것이 원인이었다.

덕분에 원래부터 챠밍 포인트였던 (거짓말이다, 그런 거 없다) 다크서클이 기세 좋게 내려와 버렸다. 제대로 학교 수업에 집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눈이 건조해서 하품이 난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실제로는 관련이 없는 것 같다)

나름 주변에서 예쁘다고 인정받는 교복을 살랑거리며 횡단보도를 막 건널 때였다. 바깥을 걸어 다닐 때 나는 일부러라도 고개를 숙여서 다닌다.
남들과 시선이 마주치는 것은 거북하다. 마주치지 않아도 거북한 것이 많으니 최대한 무시하기 위한 나름의 자기 방어 수단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부터 제대로 재수 말아 먹은 것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빨간 불이지만 알게 뭐야」

라고 들린 순간, 나는 몸을 홱 틀어 바로 내 뒤에 걸어오고 있던 사람을 덮치듯이 도보로 도로 뛰어 들었다.

균형을 잃고 쓰러진 몸이 바닥에 부딪히는 것과 동시에 기분 나쁜 크랙션 소리가 소음을 내질렀다.

그리고 동시에.

「아침부터 재수 없게, 뭐야-!」

그에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의 몸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재수 없는 건 이 쪽이야-!!”

아싸, 또 저질렀다.

“…?”

내려다보니 나 때문에 부딪혀 넘어진 남자가 뭔가 살짝 당황한 얼굴로 나와 멀어져 가는 트럭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저기 뒤편에 이 남자랑 같은 학교 친구인지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이건 좋지 않아. 이런 상황은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겪어본 일이고 곧 다가올 상황도 예측할 수 있을 지경이다. 겨우 자리 잡았나 싶었는데, 계속 참아가면서 말도 하지 않았는데 순간 욱해서 저질러버렸다.

아, 이걸로 조만간 또 전학 가야겠구나. 라고 허탈해지려는데.

“너, 다리 피나는데?”
“에?”

남자의 말에 보니 무릎이 아주 화끈하게 쓸려 있었다. 왜 지금까지 몰랐을까, 싶은 정도의 상처다. 눈으로 인식되는 순간 아픔이 전달된다고 하던가. 엄청나게 따가웠다. 하지만 상처는 둘째 치고 빨리 학교로 가고 싶었다. 교복으로 보니 이 사람은 나랑 같은 학교도 아니고.

“괘, 괜찮아요. 이 정도는.”

그래, 딱 이거만 말하고 돌아서자. 그리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학교로 가자. 그렇게 생각하고 발을 뻗는데.

“아니, 안 괜찮아. 적어도 반창고는 붙여야 할 거 아니야. 야, 오이카와.”

어깨가 붙잡혔다. 돌아서 보니 이 사람도 그렇고 저 사람도 그렇고 엄청 크다. 무서워. 위압감 장난 아니야.

그런데. 오이카와?

“자.”
“땡큐.”
“그런데 이와쨩은 괜찮은 거야?”
“어. 나는 상처 없어. 문제는 이 꼬마… 뭐라고 불러야 되지?”
“꼬마 아가씨?”
“…그걸로 하던가.”

멋대로 붙들려서 다리에 반창고가 붙여지고 있다. 그것보다 이 두 사람 엄청나게 실례인 소리를 하고 있어. 분명 내가 여자라고 해도 작은 건 알겠는데. 교복을 보면 알 거 아니야. 카라스노 고등학교 교복이라고!

3학년이라고는 도무지 생각하지 못하는 걸지도.

반창고를 다 붙이자 둘 다 굽혔던 무릎을 피고 일어섰다. 다시 한 번 더 위압감이 장난 아니다.

“학교 가면 꼭 보건실부터 들려라.”
“…….”
“그리고-.”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신호등에 초록불이 켜졌다. 무릎에는 반창고가 상처를 막아주고 있다. 그리고.

「그냥 고맙다고 말하면 되나?」

감사 인사를 들었으니 충분했다. 나는 학교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아까 부딪힐 때 이름표를 떨어트렸다는 건 눈치 채지 못하고 짧은 다리로 최대한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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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9-26 18:28 | 조회 : 1,892 목록
작가의 말
nic SU

그냥 예전부터 써보고 싶었어요. 이런 저의 망상의 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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