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전중개화 (戰中開花) 下

따뜻한 느낌.

아주 포근하고 졸린 느낌이었다. 코끝에는 갓 지은 밥 냄새가 맴돌았고 기분 좋은 달그락 소리가 귓가에서 춤을 추었다. 자연스레 안심이 되어 입꼬리는 살짝 올라갔고 긴장된 몸이 한순간에 풀어졌다.

"일어났니?"

흔히들 말하는 쟁반위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 그런 목소리가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너무나도 포근한 느낌에 경계할 것도 없이 일어나 앉았다.

"여기는 어디죠?"

"내 집. 네가 심었지? 그 방울."

"방울?"

"정신없어서 못봤으려나... 네가 땅에 묻은 거."

아. 그 조각조각 나 있었던 걸 말하는 걸까. 난 입모양으로 짧게 '아' 했고 여자는 여전히 웃으며 식탁을 차렸다.

"윽!"

본능적으로 일어나 도우려 했지만 몸을 관통하는 듯한 고통이 나를 덮쳤다.

"누워있어. 급한대로 응급처치는 해 놓았지만 그래도 아주 위급한 상황이었어. 하마터면 너 죽을 뻔했다는거 알아"

여자는 급하게 달려와 나를 침대에 눞히며 말했다. 걱정하는 눈빛이 확실하게 눈에 보였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의심할 수 있을까.

"따로 죽을 끓여 놓았어. 건강에 좋으니까 먹어?"

식사준비를 마친 여자는 식탁앞에 앉아 문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누가 또 오나요?"

"응. 오늘따라 늦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여자는 헤실헤실 웃으며 숟가락으로 꼼지락 댔다. 궁금한 것이 넘쳐나던 난 정적을 깨며 물었다.

"근데 누구세요?"

"아, 아직 내 소개 안 했구나? 난 -"

그때 문이 열리며 낯이 익은 누군가가 들어왔다. 나를 구해준 소년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어~ 왔니? 밥 먹자."

소년은 나를 의식하지 못했는지 짐을 내려놓고 바로 식사를 시작했다. 소년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난 갑자기 고개를 든 소년과 눈이 마주쳤고 민망함에 얼굴을 이불 아래로 숨겼다.

"살아났네? 역시 아줌마는 대단해."

"그렇지? 나도 실력 녹슬지 않았다니까?"

둘의 친근한 대화에 조금 안심이라도 한것일까... 살짝 이불을 내려 그들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두분다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아. 난 제희. 지난주에 널 구출했고 난민구조 일을 하고 있어. 전쟁통에 휘말린 아이들을 주로 구하는 거지. 아 물론 나 말고도 몇명 더 있고."

"그럼 그쪽은..."

소년이 말하는 내내 아주 뿌듯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여자. 어머니라도 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한 순간.

"난 가비에요. 제희를 만들었구요, 음... 나이는...기억은 안나요. 1500살 넘어가고 나서는 귀찮아서 안 세요. 물론 1500살 때 나라들이 생기기 전이니까... 제가 조금 늙었죠?"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너무 놀라 입이 바닥쪽으로 내려갔다. 제희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줌마, 내가 말했잖아.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면 놀란다고."

"난 그거 외에는 자기소개 할 게 없단 말이야!"

나... 지금 꽤나 엄청난 사람들을 만난 것 같다.

0
이번 화 신고 2018-08-02 14:14 | 조회 : 1,106 목록
작가의 말
넘나조은거

정말 오랜만에 올리네요... 한동안 폭스툰에 잠적했다가 생각나서 들어와보니까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셔서...ㅠㅠ 생각난 김에 올려봅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