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9

「어떤 용사의 이야기_1」

언제부터인가 대의를 잃고 말았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고 말았다.
본래라면 많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최전선에 나서서 싸워야 했을 터인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지켜지고 있었다. 최후방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최전선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하지만. 그래도 선두는 아니었다.
항상 선두는 흰색의 강한 그 사람과 어딘지 불안한, 뭔가를 숨기고 있는 그 사람. 그리고 나를 싫어해야 했을 그 녀석. 나는 아니었다.
나에겐 그들처럼 강한 힘도. 싸움의 흐름을 읽을 지능도. 전사들을 지탱해줄 믿음직한 부분도 없다.
나는 정말 용사인 걸까
그들은 항상 선두에서 사람들을 지키고, 여유를 가지고, 웃으며 적의 목을 떨구어나간다.
그런데 나는, 용사는 어째서..?
어째서 지켜지고, 두려움에 떨고, 초조해하나? 왜? 어째서? 난 왜 이렇게나 약한 걸까
적의 눈을 보면 전의를 잃고 주저앉아버린다.
적의 칼을 보면 두려움에 발걸음을 멈춰버린다.
적의 피를 보면 죄악감에 머리가 아파진다.
적의 잘려버린 머리를 보면 나의 가족이 겹쳐져 보인다.
나는.. 용사는 용사에 걸맞지 않았다.
결국 부적합했던 것이다.
용기도 없고, 의지도 없고, 재능도 없다.
스스로를 지킬 힘도 없는 주제에 남을 지키려 들다니, 한심해라.
용기 있는 자는 아름답다.
강한 자는 믿음을 준다.
재능 있는 자는 빛을 낸다.
나는 아름답지 못했고, 믿음을 주지 못 했다. 빛을 내지도 못한다.
이런 내가 용사인 이유는 뭐지
내가 용사. 나는 용사.
어째서..?
붕괴한다. 나의 세계가 무너진다.
나의 꿈을 가진 그림자부터 점점 바스러진다.
빛이 되어주던 태양도 바스러지고, 희망이 되어주던 하늘도, 지탱해주던 땅도. 모두 다.
그럼에도 나의 몸은 사라지지 않아서, 그제야 나는 용사임을 다시 깨닫는다.
용사는 뛰어나서 선택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서 선택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다 주사위 놀음이다.
그저 당시에 운이 좋았을 뿐. 용사의 의미 따윈 처음부터 없었다.
나는 뭘 위해 용사가 되었나? 그런 건 없다.
그저 용사를 동경했고.
가족을 잃었고.
도망치고.
넘어지고.
굴러서.
그렇게 도달한 곳에 그저 빛나는, 강한, 듬직한 사람들이 있었을 뿐이다.
정말 운도 좋지.
왜 내가 용사인 거야, 정말
이제 나에게 남은 건 내가 용사라는 기정사실과 아직도 너무 멀리 있는 나의 행복.
이젠, 다 필요 없어.
이젠 내가 모두를 지켜줄게.
내가, 모두가 행복한 세계가 될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되돌려줄 테니까.
그걸로 조금이나마 행복에 다가갈 수 있다면.
그걸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모두가 죽어버려도, 망가져버려도 내가 다시 시작하게 해줄게.
해피엔딩을 위해서. 이건 자기만족이 아니야. 그래야만 하니까.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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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12-29 18:44 | 조회 : 731 목록
작가의 말
어떤 사람

제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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