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eral.

밀집해 있던 군사들 중 최 전방에 있던 이들이 한꺼번에 쓸려 나갔다. 그들과 싸우는 듯, 반대쪽에 서 있던 한 무리에서 오오,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요정들의 혼혈, 소수 민족인 [라이르]와 [키르]를 사냥하는 군대 [하르티시카]가 저렇게 쉽게 무너지다니. 언제나 하르티시카에게 위협받는 요정과 악마의 혼혈 키르족이 환호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르티시카 중에서도 최고의 부대, H-23을 단숨에 당황하게 만든 것. 그들은 계속 보고 있어도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단 한명, 그것도 열 다섯살의 소녀가..?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었다. 높게 묶어올린 검은 색 머리칼을 가볍게 휘날리며 적진에서 싸우고 있는 것은 아직 앳되 보이는 얼굴의 소녀. 양손에는 날카로운 검은색 긴 양날검을 들고, 그 맑고 붉은 두 눈을 반짝이며 적들을 하나씩, 장난치듯 가지고 놀고 있었다. 죽을 각오로 달려느는 적의 공격을 여유 넘치게 피하고, 또 가끔은 간발의 차이로 피하며 미끄러지듯 전쟁터를 누볐고 적들을 쓰러뜨렸다.

적들이 하나 둘 쓰러질 때마다 소녀의 눈은, 타오르며 빛났다.

라이르족 군 사령관인 동시에 '마녀'인 소녀. '전쟁의 군주'라고도 불리는 이의 화려한 귀환식이었다.

전혀 지치지 않고 전쟁터를 파고드는 소녀에게 적들도, 아군들도 모두 혀를 내둘렀다.

그녀를 놓치지 않고 지쳐보던 갈색 머리의 여인-라이르의 여왕-이 조용히, 뒤쪽에 서 있던 동맹군-곧 라이르와 키르 연합군-에게 명령을 내렸다.

"내가 신호하면 발사합니다."

키르 연합군들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라이르의 여왕이 내린 명령은 간단한 것이었다. 가능한 한도 내에서 가장 강력하고 위협적인 공격 마법을 전쟁터에 무차별적으로 시전하라는 것.

"하지만 우리가 지금 마법을 사용하면, 저..라이르 총사령관은..마법에 맞을지도 모릅니다."

"괜찮습니다, 장로님."

서글서글한 인상, 여자같이 곱상한 얼굴에 푸른 눈을 반짝이는 소년이 생긋 웃으며 키르 연합군을 안심시켰다.

"쟤가 맞을 일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

키르들이 머뭇거리자 소년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환하게 웃으며 적진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

"직접 보여드릴까요? 푸리아 데 리카테Furia De Rikate"

반짝이는 빛의 흔적이, 적진을 초토화시키던 소녀를 향해 정확히 날아가다가.... 어느 순간 공중에서 흡수되었다. 보호막에 막힌 것처럼 경계가 보이며 터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틈새'로 빨려든 것 처럼 흔적 없이, 깔끔하게.

"어떻게....?"

키르 연합군 측에서는 놀라움의 외침이 터졌다.

소녀는 휘돌아서, 마법을 발사한 쪽 그러니까 소년의 푸른 눈을 곧바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피식 웃더니 자신 위로 덮쳐드는 적들의 칼을 받아치며 가볍게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 휘익- 검의 궤적을 따라 아까 소년이 날려 보낸 금빛 마법이 채워졌다.

마법원소를 운용하는 것 뿐만이 아닌, 마법의 움직임 자체를 덩어리째 가지고 노는, 한 단계 높은, 차원이 다른 마법사. 이 자리에서 모든 이들은 '마녀'의 위엄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신호하면 그때부터는 계속 마법을 쏘세요."

"언제까집니까..?"

"이 전투가 끝날 때까지. 셋, 둘, 하나. 지금입니다."

갈색 머리, 아름다운 여자가 신호하자 그들은 일제히 공격 마법을 시전했다. 붉은색, 푸른색, 여러 가지 색깔의 마법들이 마치 불꽃놀이를 하듯 화려한 궤적을 그리며 밤하늘을 갈랐다. 그리고 그 궤적은 일정한 장소..그러니까 반구 모양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존재하듯이, 순식간에 모두 사라져버렸다.

푸른 눈을 반짝이며, 소년이 휘파람을 불었다. 어린아이처럼 생글생글 웃고 있었지만 그 두 눈은 파란의 중심에 위치한, 단 하나의 존재만을 쫒고 있었다. 소용돌이치는 특이한 홍채를 가진 눈에, 순간 걱정과 자부심이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마녀는 마법의 운용 뿐 아니라 엄청난 마력 또한 가지고 있다. 그런 소녀가 왜 굳이 자신의 마법을 쓰지 않고 남의 마법을 빌리느냐-그건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마법을 사용할 때는 몇 가지 고려할 요소가 있다. 표적을 향한 좌표와, 마법의 유형과, 파워. 다른 사람이 마법을 대신 써 준다면 좌표만 생각하면 되기 때문에 훨씬 효율적이였다. 게다가 다양한 유형의 마법을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은 채 다채롭게 사용할 수 있으니, 무기를 쓰며 직접 싸우는 것을 좋아하는 소녀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그 뿐이 아니다-바로 그, 두 번째 이유. 너무나도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소녀의 마법.

"이제 우리는 뭘 하면 됩니까....?"

"계속 마법을 쏘고..그리고 시간이 되면 구경하면 되는 거죠, 뭐."

소년이 피식 웃으며 말한 그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검을 휘두르던 소녀가 갑자기 검을 치워버린 것이다. 그리고 군대가 그녀를 향해 달려든 순간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소녀가 높이 치솟아 올랐다.

그들은 잘 볼 수 없었지만 소년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창백한 얼굴과 붉은 눈에 번져가는 차가운 웃음을. 소녀는 그랬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법도 하건만 소녀는 유독 하르티시카 군대에게는 인정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이 망령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로 구성되어 있으니까-그것이 변명이라는 것은 소년도 잘 알았다.

소녀가 하르티시카 군대를 벌레 잡듯 죽이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녀가 살려면 그들이 죽어야 했기에.

소녀가 두 손을 하늘 높이 뻗었다. 시야에 구멍이 난 것처럼 검은 공간이 그곳에 생겨났다. 군대가 도망치기 위해 그 자리를 벗어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순간, 빛의 향연이 다시금 그들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날, 본부로 살아 돌아갈 수 있었던 하르티시카는 없었다.

황무지에서 일어난 전투는 그 곳의 지명을 따서 마츠렌 전투라고 불렸다. 그리고 그 전투는 지난 800여년간 소수민족이 당해온 그 억압과 차별을 되갚아준 전투로 손에 꼽혔다. 사실, 소수민족이 하르티시카를 그렇게 큰 규모로 이겨본 전투는 그것이 유일했던 것이다. 또한 그 전투 이후, 전설로만 알려지던 유명무실한 '마녀' 그리고 전쟁의 군주는 진실이 되어 소수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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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1-29 22:02 | 조회 : 1,337 목록
작가의 말
히에

오랜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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