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진다.
긴 흑발을 늘어뜨린 청년이 오늘 또다시 해넘이를 보고 있었다.
두 개의 태양을 가진 다섯 행성. 그는 지금 다섯 행성 중 마지막 행성에 와 있었다. 그것은 남자가 모시던 군주..동시에 이 태양계의 최고신이 그에게 내린, 처음이자 마지막 명령이었다.
명령은 모두 완수했는데, 왜 당신은..
청년은 자신의 군주를 떠올렸다. '그녀'는 군주였고, 신이었으며 동시에 창조주이기도 했다. 햇살을 닮은, 곱슬거리는 아름다운 금빛 머리카락이 아직도 눈에 밟혔다.
평균보다 조금 더 큰 키에 가녀린 체구, 그럼에도 씩씩하게 울려퍼지던 목소리.
가끔 그녀는 키를 더 크거나 작게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모습이든 자신이 더 컸다, 항상.
낮이라고 불러도 좋을 여인이었다. 맑고 푸른 눈빛은 화창한 날의 하늘과 닮아 있었다. 이름과도 잘 어울리는 빛의 여인. 그녀의 이름은 최초의 빛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를 처음에 '실패작'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곧 그녀의 유일한 수하인 동시에 친구가 되었고, 과거의 일 따위는 신경쓰지 않았다. 둘 다 그런 성격이었으니까.
해가 완전히 사라진다.
곧 어둠이 이 땅에 내려올 것이었다. 내일 다시 해는 뜨겠지..남자는 생각했다. 그리고 하염없이 해가 사라진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해는 다시 뜰 것이다..하지만 남자의 '태양'은 사라져버렸다.
"아페리엔다..."
남자는 절대 잊지 못할, 그 이름을 또다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