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예이이이이

협회 사람들이 가고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루드.”

“마스터, 혹시 내가- 탑에 갔던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보다 훨씬 어릴 때 내가 혹시 탑에서...”

“-루드! 그래. 다 이야기 해 줄게. 하지만......! 먼저 여길 나가고 나서야.”

공기는 긴장 상태였고, 진지했다. 하긴, 지금 상황에서 장난을 제대로 칠 사람은 거의 없을 테지.

“아리아. 넌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 구나. 이유라도 있니?”

“전 스승님을 믿어요. 언제 때가 된다면 전부. 이야기 해 주실 거라고.”

묻기 귀찮다는 것도 있겠지만, 지금은 지금의 일에 집중을 하는게 나을 것 같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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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본제로 돌아가서, 라노스테 협회장은 아무 이유 없이 남을 돕기 위해서 움직이는 자가 아닐세.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지만 단순히 힘을 합치자는 의도가 아닌 것은 확실하네.”

“그러니까 일단 여길 나가서- 제국을 떠나죠. 아직은 늦지 않았습니다. 루드, 너는 이제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고...”

“그럴 순 없어요.”

여기를 떠난다. 오빠를 버리고? 그럴 순 없어. 나에게는 이제 하나의 소원이 생겨버렸는 걸. 이룰 수 없는, 그렇지만 이뤄야만 하는 그런 소원이.

“...마스터도 알고 있잖아요. 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탑은 이제 우리에겐 문제가 되지 않아요. 마스터씨, 렌씨, 스승님.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우리가, 나랑 루드가 해야만 해요. 우리의 임무는 아직 안 끝났거든요.”

.

.

.

[ 시점 변경 : 공작과 후작이 있는 어느 방 안 ]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하델리오 후작과 아르티안 공작은 긴 책상을 사이에 두고 가라앉은 분위기로 이야기 하고 있다. [ 리스펜 ]이라는 자를 10년동안 지켜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몰랐는 지. 데이너 공작 부인은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리스펜]을 데리고 왔을 적에 모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르티안 공작은 마법사였다. 공작의 칭호를 받은.

정말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오르펠 경이 이상한 말을 하더군요. 리더시스에게-...”

“하델리오 후작.”

아르티안 공작은 하델리오 후작의 말을 끊고, 입을 열었다. 대부분의 질문에도 묵묵부답을 일관하던 아르티안 공작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그 입에서 나온 대답은 여태까지의 질문의 답이 아니었다.

“그때- 이브릴 대신 리더시스가 죽고, 아리아 대신 리더시스가 다쳤다면 좋았을 텐데.”

10년 전 쯤. 그 일에 하델리오 후작의 딸, 이브릴이 죽었고. 아르티안 공작의 귀여운 막내 딸, 아리아가 트라우마에 걸릴 정도로 신체를 손실당했던 그 날. 그날의 일을 아르티안 공작과 하델리오 후작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잊을 수 없었다.

“...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나.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 생각한다네. 리더시스에게는 그때, 죽고 다치는 것이 더 나은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대체 지금 무슨 소릴...!!!”

자신의 아들이 죽었으면 나을 것이라고 말하는 아르티안 공작의 말에 하델리오 후작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쾅하며 소음이 나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마법의 시작은 인간이 아니었고, 가짜가 진짜를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결국은 그들에게 패배하게 될 테지. 그렇기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아르티안 공작만이 아는, 그 일. 리더시스가 자고 있을 때 인간의 눈동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세로로 찢어진 동공을 가진 금색 눈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왔다.

리더시스가 지금 죽길 바라는 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살기를 바라는 지. 더 살기를 원한다면 [힘]을 부여받는다. 하지만 그 [힘]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고, 결국 고통을 받다 죽게된다는 것은 변함 없는 것이지만, 아르티안 공작에겐 선택권이 주어졌다.

아르티안 공작은 결국 아이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없어서 외면했다. 노란 꽃다발을 들고 자신을 향해 웃는 아이를, 사랑스러울 터인 아이를 외면했다. 결국 죽게될 아이니까. 그는 하델리오 후작에게 자신이 알고 있던 사실을 내뱉었다. 그래, 그는 리스펜이 마물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역시 다 알고 계셨군요. 리스펜이 마물이었다는 것도. 그 자가 리더시스에게 뭔가를 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으면서 그 동안 조용히, 그렇게 침묵하고 있었던 겁니까?!”

하델리오 후작은 약간은 화난 듯한 목소리로 아르티안 공작에게 언성을 높였다. 그렇지만, 아르티안 공작은 입을 다물고. 다시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방법이 없다 지레 짐작하고..! 멋대로 포기하고..! 당신이 외면하고 침묵하는 사이에 일이 이 지경까지...! 내가 당신이었다면 절대로..!!”

화를 내던 그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반응이 있어야 화를 더 내던 말던 할 텐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벽에 대고 말하는 것 같아 끓어오른 화도 가라앉아 버리는 듯 했다.

“...됐습니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아, 오르펠 경의 보고로 리더시스는 지금 홀로 격리가 되었고. 아리아는 행방을 알 수가 없습니다. 격리된 리더시스는, 혼자 격리 되어 갇혔는데도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더군요.”

하델리오 후작은 격리되는 리더시스와 마주쳤을 때를 떠올렸다. 자신이 왜 격리되는 지는 궁금하지도 않은 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물어보는. 그래, 검은 마법사와 인형의 마법사. 그 둘의 안부를 물어볼 뿐이었다.

“오로지 검은 마법사와 인형의 마법사의 행방과 다른 아이들의 안전. 그리고 가족들에 대한 걱정뿐이었습니다. -리스펜이 마물로 밝혀지면서 가문과 당신에게 무슨 피해가 가진 않는지 걱정하고 있다군요. -그런 아이입니다.”

그때, 자신이 외면하고, 차갑게 대한 아이가 자신의 걱정을 하면서 홀로 격리된 것엔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아이라는 하델리오 후작의 말에 아르티안 공작은 심장이 덜컹하고 내려 앉아버리는 것 같았다. 그 뒤로, 앉아있는 아르티안 공작을 두고 하델리오 후작은 그대로 방 밖을 나섰다. 고개를 숙였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그에게는 필요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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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점 - 아리아 ]

우리는 리더시스와 친구들이 있을 황성에 갈 것이다. 그곳에 있는 리더시스를 찾아내어 각성시킨다. 그것이 계획이다. 표식의 기운이 느껴졌으니까. 당연히 마스터도, 스승님도, 렌씨도 극구 말렸다. 우리는 할 만큼 했다고.

아니, 아직 모자라.

루드는 완벽히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아마도 우리의 본체이거나 과거 전생이거나. 루드가 왕 일때의 기억. 솔직히 나도 [빛]이라는 오글거리는 명칭일 때의 기억이 완벽한 건 아니다. 루드의 눈은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세로로 찢어진 눈이 내가 인간이 아니라고 증명하고 있었다. 머리카락도 점점 하얀 색으로 각성모습이 변하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처음부터 [루드 크리시]가 왕이었고, [아리아 리엔 아르티안]이 빛이였을까. 그것이 아니라면 [왕]이라는 존재가 [루드 크리시]의 모습을 빼앗고 [빛]이라는 존재가 [아리아 리엔 아르티안]의 모습을 빼앗고 그, 그녀가 되어버린 걸까. 어느쪽이든 우리가 빨리 인정하고 움직이라고 했었다. 시간이 없다고, 알고 있다.

기억이 온전하지 않은 터라 내가 원래부터 빛이었는지, 빛이 내 몸을 차지한 것인지 모른다. 제국을 감싼 보호진이 사라지기 전까지 우리가 방도를 생각해야 한다. 물론, 그 전에 시크무온이각성하고 공격하는 바람에 창문이 깨졌지만.

우리가 황성에 들어가기 전까지 리더시스가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하얀색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살짝 쥔 채로 블로우.. 루드의 손을 잡았다. 눈은 바꿀 수 있었으니까.

“자 그럼- 슬슬 움직여 볼까요. 과연 당신들을 보면 황성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 군요. 검은 마법사, 인형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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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5-27 10:54 | 조회 : 1,927 목록
작가의 말
백란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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