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옛날 이야기를 해 볼까 (1)





음..옛날 이야기라고 부르기도 좀 그렇고 예전이야기를 한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세한이와 만난 건 11살. 학교도 아니고 학원도 아닌 길거리였다.


정말로 우연이였네, 같은 반도 아니고 마주칠 수 있는 기회도 있지만 그냥 지나쳤을 테지.


막 생각하다 보면 초등학교중에서 제일 쪽팔리고 부끄러울 때가 4학년 아니겠는가 123학년은 저학년 어리니까 봐준다 해도 아직 성장도 안 했고 유치한 4학년은 꼴불견이잖아!!



그래도 약간 개념이 있었던 나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누나를 기다리며 어두운 7시에 (2월이었으니까 어두웠을라나) 혼자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물론 요즘 애들이 그렇듯이 미끄럼틀이나 시소 타는 건 아니고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면서 그네를 타고 있었지. 그러고보니 나 왜 이리 자세히 기억 하고 있지.



...아무튼 슬슬 어두워져서 오늘은 누나 기다리지 말고 집에 들어가자 할 즈음에 무릎이랑 허벅지에 덕지덕지 의사가 붙인 게 아닌 밴드를 꽤나 많이 붙이고 있는 아이를 만났다. 그 애가 세한이였는데 말없이 옆에 그네에 타 가만히 있었다.



아, 그때 정말로 귀여웠는데...이런 쓸데없는 생각 냅두고 다시 말하자. 그 애가 말없이 그네를 타는 모습을 보고 게임하는 것도 잊은 체 그 애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물론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다리에 나 있는 상처들을 무심히 보며 나도 휴대폰을 집어넣으며 말없이 그네를 탔다.



정말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우리 둘 다 그네를 타고 있다가 몇 분 뒤 누나가 와서 데려간게 첫만남의 끝이다. 정말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초저녁에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던 것 뿐이었다.



집에서 '정말로 뭔가 신비로운 경험인 것 같다.' 라며 또래인 남자애들과는 다른 애였다며 생각하던 게 다였는데,



다음 날 내가 누나를 기다릴 때는 벌써 와 있었다. 문득 반가운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아는 척 하기가 쑥스러워서 다시 말없이 그네를 타고, 그게 반복이 되면서 일주일이 지날 즈음이였다. 어떻게 7일 동안 만나면서 말을 안 할 수 있을까.



일요일 저녁에는 누나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는데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정확히 7시에 놀이터로 달려나갔다. 하지만 그 아이는 없고 약간의 또래의 남자애들이 있었다. 아마도 그 애 성격상 애들이 시끄러워서 갔을까란 생각이 들어 다시 바로 집에 들어갔다.



그 다음 날 누나를 기다릴 때에도 오지 않았다.



그 다다음 날도 오지 않았다.



그 다다다음 날도



그 다다다다......



.....




분명히 나랑 모르는 사이이다.



한 번도 이야기 나눈 적도 없다.



그래도 안 오던 일주일동안 삐진 건지 조금 실망한 건지 나도 일주일 정도 가지 않았다. 너도 좀 당해봐라 식이였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참 바보 같았다. 그리고 제일 후회가 되는 일이였다.



일주일 정도 안 오자 슬 궁금해져서 약간 밝아진 7시에 놀이터로 나갔다. 요즘 밝아졌으니까 애들이 많아서 이제 안 오는 건 아닐까 하며 약간 주춤했지만 그냥 누나를 기다리러 가는 거라고 생각하며 나갔다.



다행히 애들은 없었고



얼굴까지 상처투성이인 세한이가 있었다.



그네에 앉아서 조는 것을 죽은 줄 알고 완전 기겁을 하던 게 기억에 남는다. 괜찮냐고 어깨를 엄청 세게 흔드는데 싸대기를 맞은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 때가 처음 대화였던 것 같다.



그 후에 나도 다시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는데 일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상처가 더 늘고 쇠약한 것 같아 내 잘못이 아닌데도 정말로 미안했다.



...생각하다 보니 너무 유치한게 많은 것 같네... 내가 예전에 저랬다고? 흠흠...아무튼 그냥 하자.



"넌 왜 이리 상처가 많아?"


"..."


"저기, 듣고 있어?"


"어."


"그런데 왜 답을 안 해 줘?"


"그냥."


"....."



예전의 세한이를 소개하자면 뼛속까지 지금의 세한이를 닮았다. 겉모습도 말하는 것도 모~두 달라진게 없는 것 같은 게 예전의 세한이다.



"왜 째려봐? 기분 나빠."


앗, 미, 미안."


아니 분명 내가 미안할 게 아닌데 미안하네. 응, 어감이 딱 너가 잘못했다 식이야.


"그, 말해주면 안 돼..? 아, 아프진 않아? 괜찮은 거야? 왜 그래?"


"안 아파, 괜찮아, 왜 그런지는 그냥 안 알려줘."


"....."


정말로 칼 같고 남이 들으면 욕이 바로 튀어나올 것 같은 대답이었다. 그렇게 성의껏 답하는 건 바라지 않았지만 이건 조금 상처받을 것 같은데?



"나, 난 박 영석인데! 이름이 뭐야?"


"이 세한"


"그, 그렇구나.."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로 어릴 적의 세한이랑 지금의 나랑 대화한다 해도 내가 질 것 같고 울 것 같은 게 감상이다. 부끄럼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기주장이 확고하게 망설임 없이 툭툭 말을 내뱉는 무뚝뚝충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몇 살이야?"


"너부터 말해."


"11살인데.."


"나도 그래."


"우와! 동갑이구나! 혹시 우리 친해질 수 있을까?? 너랑 이야기를 많이-"


"싫어."


아무리 이유가 있었다 해도 세한아, 난 그때 정말로 상처받았단 말이지. 너 너무 단호박이잖아.


"...왜?"


너무나 명쾌한 대답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지만 꾹 참고 물어봤다.


"시끄러울 것 같아."


"안 시끄러워!"


"귀찮아."


"안 귀찮아!"


"그게 시끄럽고 귀찮은 거야 바보야."


".....그래도 응? 친구 하자!"


"알았어."


"....?"


너무나 쉽게 나온 대답에 난 흔들 흔들 하던 다리를 움직이던 걸 멈추고 과연 이 애는 무슨 애일까 하고 생각하던 차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이런 유형의 애를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왜?"


"아 아니...너무 쉽게 답해서.."


"거절하면 더 시끄럽고 짜증날 것 같아서"


너무 상처받을 대답이였지만 이제는 그런 아이인 갑다~ 하면서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정말로 안 아파?"


"괜찮아."


상처를 보면서 고개를 푹 숙인 세한이의 표정은 내가 보기에도 무표정이지만 복잡한 감정이 섞인 것 같았다. 계속 물어도 괜찮아, 하면서 안 말할 것 같아 그냥 내가 말을 계속 이어갔다.


"상처 그럼 낫게 해줄까?"


"어떻게?"


"엄마가 말했는데~ 이렇게 해서,


말을 하면서 난 그네에 내려 아이의 볼을 잡고 이마에다가 숨을 불어쉬며 말했다.



후우-하고 나아라!! 하면 나아!"


"..."


약간 놀란 표정이였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인 정말로 미소를 보았다.


"...이상한 애네, 너."


정말로 천진난만하고 기쁜 웃음이여서 보는 나까지 덩달아 웃었다. 그래, 반해버린 계기는 이거구나. 아니 처음부터 반해 있었던 걸지도.


그러면서 한 달 정도를 그렇게 이야기하며 꽤나 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한 달 동안 들은 이야기 말한 이야기가 너무나 재미있고 그 시간이 소중해서 기억에 꽤나 남았다.



하지만 그런 날도 잠시 다시 몇 주 동안 나오지 않았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며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곧 3월이고 12살이 되면서 할 일이 이것저것 늘어나 나도 만날 시간이 없었다. 누나도 시간이 바뀔 뿐 더러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늘어났으니.


학교에서도 찾아봤지만 역시나 실패했다.


3월이 되고 4월이 되고 몇 주일이 지나자 원래 사람이 다 그렇듯 나도 세한이를 잊고 있었다.






+






내가 살던 곳은 아파트였지만 약간 주변에 허름한 주택이 있던 도시도 아닌 마을이라서 도로 한 번만 건너면 건너편이 바로 도시고 학교도 있는 그런 마을이었다.


그래서 학교도 가깝고 도시 생활을 준비하려고 곧 이사를 하려던 참에 사람이 잘 없는 놀이터에서 세한이를 만난 거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파트 사람 말고 동네 사람들끼리도 꽤 친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조용한 마을에 경찰이 오고 소방차가 오고 어릴 적에 내가 보면 난리가 났던 것 같았다.


아마 어떤 집에 불이 났겠지 하며 구경을 하려던 참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불은 약간의 집이 탄 정도였고 엠뷸런스에 실려가는 완전히 죽은 것 처럼 피를 흘리는 남자아이와 경찰서로 이송되는 아저씨, 거기에 약간의 울고 있는 여자아이, 소리지르고 있는 여자아이의 부모로 보이는 두 명이 보였다.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라 나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떠들고 구경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다리는 굳었고 얼굴은 창백해졌다.


그러던 와중에 사람들의 말이 귀에 들렸다.



"-아니- 그러니까, 저기가 그 이 씨랑 아들아니야?"


"이게 뭔 말세야, 요즘은 미친 놈들이 많다니까."


"아마 그 저기 아파트 살고 있는 가족 아니에요? 어떻게 된 거래? 이 집이랑 상관 있었어?"


"이 집에 이 씨가 여자아이를 성폭행하려 한 걸 아들이 막았대, 그래서 저기 이 씨 아들만 불쌍한 꼴 됬구만."


"----"


"---"


"-"



아무 소리도 안 들리게 되고 사람들도 거의 갈 때 즈음 나도 발을 뗄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한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라지면서 그게 말 못할 SOS였나 싶기도 하고 도와줘라고 속으로 몇 만번이고 외친 걸까 하며 생각이 들자 집으로 바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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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7-08 18:20 | 조회 : 1,060 목록
작가의 말
하토

세한이는 솔직히 도와달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민폐라고 생각해서 바로 생각을 접은 것 뿐입니다. / 봐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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