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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


한 사내가 붉은 머리카락과 붉은 눈썹을 휘날리며 급히 하르페에게 뛰어왔다. 사내는 루미엘 용병 길드의 단장 하르페의 광팬이자 하르페교 광신도 기사 제로였다. 제로는 하르페에게 초대장을 건네며 발신자와 간략한 내용을 전달했다.


“하이드나 공작님의 따님께서 생일을 맞아 여는 파티에 단장님을 초대하신답니다.”

“난 어제 분명 그쪽과는 다시 볼 일이 없다고 했을 텐데? 게다가 난 그 따님과 어디서 본 기억도, 만난 적도 없다.”


제로는 신경질적으로 살기를 내뿜는 하르페를 보고 정말 황홀한 표정을 했다. 화를 내도 변함없이 하늘이 내리신 천상의 외모라고 생각하며, 분위기로 타이밍이 매우 나빴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제로는 이 대지에 강림하신 초 절정 꽃미남 저승사자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영광을 경험했다.
그 저승사자가 하르페라는 것은 안 비밀.


“저도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저녁 7시 전까지 오시지 않는다면 직접 모시러 온다는군요.”

“뭐? 그게 무슨 제로 녀석의 궁뎅이가 두 쪽 나는 소리야?!”


하르페는 두 손으로 책상을 내리치고 의자를 박차며 일어났다가, 밤을 새서 서류를 처리했던 탓에 잠시 현기증을 느끼며 한 손으로 책상을 짚어 몸을 지탱하고, 다른 한 손은 욱신거리는 눈을 살짝 눌렀다.
본인은 정말 진심으로 레알 혼또니 누구누구 씨를 잊고 싶어서 밤을 새며 서류를 처리했건만, 그런 노력이, 물거품이 되다 못해 수증기로 증발하게 만든 누구누구 씨의 아버지의 따님 덕분에 하르페는 미칠 지경이었다.
그걸 어떻게 머릿속에서 지웠는데!
속으로 절규하며 당장이라도 제로의 손에 들린 삐까뻔쩍한 초대장을 땅에 내던지고 그 위에서 탭댄스를 추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른 하르페는 빠드득, 이를 갈았다.
그 모습을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제로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하르페의 연약한 모습에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부축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궁뎅이가 아닌 머리통이 두 쪽 난다는 것을 2년간의 학습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참고 또 참았다. 혼자 눈물을 참으며 비련의 사모님을 연기하던 그는 하르페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이걸 말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지금 일깨워주지 않으면 안 그래도 무식한 하르페가 진짜로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 두려워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저... 단장?”

“뭐.”

“왜 굳이 저인지는 묻지 않겠습니다만, 제 궁뎅이는 태어날 때부터 두 쪽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심지어는 단장님도요.”


제로의 말에 하르페는 잠시 침묵을 고수하다가, 이내 의자를 끌어 앉아 책상 위를 정리하더니, 위엄 있는 얼굴을 하며 진지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흠... 하이드나 공작님의 따님께서 날 보고 싶어 하신다고?”

“말 돌리지 마십쇼. 심각하게 어색합니다.”

“...실언이었다. 영 찝찝하면 세 쪽으로 고쳐줄까?”

“됐습니다.”


쳇, 재미없는 녀석. 혼자 투덜거리며 제로에게 나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제로는 하르페의 책상 위에 초대장을 놓고 문을 닫으며 퇴장했다.
하르페는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드러눕다시피 기대어 눈을 감고, 한숨을 쉬며 어제의 일을 회상했다.




하르페는 부단장이라기보다는 앙숙에 가까운 부단장 레인과 함께, 못쓰게 된 검을 가득 싸들고 무기점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이때 얼굴에 난 자잘한 상처들과 둘 사이의 먼 거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루미엘 길드가 위치한 로크 마을에 있던 유명한 무기점이, 주인 칸트가 디벤 마을로 이사하며 같이 옮겨졌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는 그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직접 찾아가는 중이었다.


“어이, 은색대가리님.”

“왜, 금색대가리.”

“저거 제로 녀석 아닙니까?”


레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제로와 한 여인이 마주보고 서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도 아름다우시군요. 아하핫!”

“어머, 제로 씨도 참. 호호호!”


보통 사람이라면 별 반응 없이 그냥 그런가보다- 했겠지만, 둘은 모태솔로였기 때문에 그 모습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타도 커플!”

“커플 지옥, 솔로 천국!”


평소에는 툭하면 싸우던 둘이 눈을 마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에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사람들은 꼭 남 괴롭힐 때만 찰떡궁합이 된다.
물론 보통 사람일 때만 해당하는 사항이다.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이다.
예를 들면,


“왜 나지?”

“어울리니까요.”

“젠장, 말이 돼?!”


이 둘이라든지, 모 길드의 단장과 부단장이라든지, 금색대가리와 은색대가리라든지, 하르페와 레인이라든지.
두 사람은 사람이 잘 드나들지 않는 골목길의 구석에서 서로를 노려보며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 주제는 바로,


“얼굴도 몸매도 자신 있는 당신이 하는 게 어떻겠나, 레인 아가씨?”

“하하하. 제가 비록 한 얼굴, 한 몸매 하지만, 어디 단장님만 하겠습니까?”

“이 드레스는 당신의 아름다운 금빛 머리카락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여 산 것인데, 본인이 입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저는 단장님의 아름다운 은발에 어울리면서, 위장에 효과적이도록 은색 가발을 샀는데, 본인이 쓰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이가 쓴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여장에 관한 것이었다.
둘 중 한 명이 제로와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한 가짜 연인으로 분장하여 제로와 여인의 사이를 갈라놓아야 하는데, 여장이 하기 싫은 것은 둘 다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평소에는 하지도 않던 칭찬과 경어까지 사용하며 피해가려는 것이다.
둘은 서로를 한참 노려보다가, 이대로라면 제로와 여인이 자리를 어디론가 옮겨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여, 결국 먼 선조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적이고 가장 공평하며 아무도 불평을 할 수 없는 궁극의 기술, ‘가위바위보’로 정하기로 했다.


“불평하기 없기다?”

“당연하죠. 갑니다!”


가위바위─


“보!!”


둘의 목소리는 골목길의 쓰레기더미에서 몰래 먹을 것을 찾아 뒤지던 고양이와 까마귀들을 모조리 쫓아낼 정도로 우렁찼다.


“으아악, 이럴 수가!”


그리고 하르페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뒤이어 울려 퍼졌다.
여자처자 해서 하르페가 여자로 분장을 하고 골목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하르페에게 꽂혔다. 그 노골적인 시선들에 하르페는 조금 긴장했다.
선천적으로 희고 고운 피부와 가냘픈 체형 덕분에, 화장을 하지 않고 가발과 드레스로 분장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완전체 여자였다. 어디 그뿐이었겠는가. 원래 모습 자체도 하늘이 내려주신 천상의 외모의 소유자였던 터라, 미의 화신 엘프의 뺨을 치는 것은 물론, 온몸을 사뿐히 즈려밟고 그 위에서 탭댄스를 춰도 용서가 될 만큼 여신이었다.
그로 인해 레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자에게, 그것도 인생의 라이벌에게 설렜다는 수모를 겪고, 앞서 걸어가는 하르페를 뒤따르며 비틀거렸다.


“단장. 혹시 그런 겁니까? 돌아가신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남장을 하고 길드에 들어와 원수에 눈에 들어서...”

“레인.”


하르페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레인의 말을 끊었다. 레인은 심장을 부여잡으며 괴로워했다. 분명 여자들 한정으로 껌뻑 죽을 중저음의 환상적인 목소리였으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각자 상상 속 자신만의 여신의 목소리로 미화되어 들렸다. 레인도 그들 중 하나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지사.


“닥치렴.”


레인은 근처의 벽을 잡고 비틀거리며 신세계를 경험했다.
여신님, 부디 제게 사랑의 매질을-.
그것을 말로 직접 내뱉었다면 채찍에 맞는 게 아니라 조각조각 썰릴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상상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신사답지 못한 상상을 하는 레인을 뒤로한 채 하르페는 사뿐한 발걸음으로 제로와 여인에게 다가갔다.
신나게 수다를 떨던 제로와 여인은 자신들에게로 다가오는 한 인영 덕분에 잠시 대화를 끊고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들은 환한 웃음을 머금고 자신들에게로 다가오는 아름다운 여신의 미모를 소유한 소녀의 분장을 한 꽃미남을 발견했다.
제로는 흔하지 않은 은발과 황금빛 눈동자를 보고 소녀가 단장 하르페라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어째서 하르페가 로크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이 디벤 마을에 강림하였는가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기억에는 무언가 하기로 한 것도 없는데 갑자기 하르페가 자신을 찾아와서 꽤나 당황한 제로는 말을 더듬었다.


“다.. 다, 단장?”

“안녕하세요.”


하르페는 일단 하기로 마음먹은 건 절대로 대충 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 증거로, 하기 싫어서 난리를 피웠던 여장을 하고서는, 완전히 여자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수줍게 볼을 붉게 물들이며 여인에게 인사를 건네는데, 여인조차 하르페의 아름다움에 빠질 뻔했다.


“저는 루미엘 용병 기사단 단장 하르페의 여동생이자, 제로 씨의 연인인 하르샤라고 합니다.”

“네? 네.. 안..녕하세요.”


여인은 하르페의 외모에 넋이 나가 연인이라는 말에 제대로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제로 씨, 오늘 저랑 데이트하기로 한 거 잊었어요? 지금 바람피우는 거예요?”

“아아..?”

“지금 얼른 얘기 끝내고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안 오면 알지?
입모양으로 그렇게 말한 후 하르페는 레인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둘은 기다리는 척 하며 제로와 여인을 힐끔거렸다. 둘이 뭐라고 얘기를 하더니, 여인은 홱 돌아서 어디론가 갔고, 시무룩해진 제로만 남았다. 그 모습을 보며 작전이 성공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한편, 조금 미안하기도 했다.
하르페와 레인은 답지 않게 분노의 오라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제로의 모습에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제로는 그들에게 다가와서 뭇 여성들을 애타게 할 만큼 화사한 미소를 달고 있었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자아, 그럼 하르샤 양? 데이트를 하도록 하죠.”


하르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파랗게 질린 얼굴로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예상 외로 제로는 하르페에게 위협을 가한다거나 해를 끼치는 등의 복수를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르페가 들고 옮기던 검들을 대신 들고 걸어가거나, 위험한 요소가 있으면 하르페를 우선시하며 도움을 주었다.


“제로, 화 많이 났냐..?”


제로는 무표정한 얼굴로 짧게 아닙니다, 대답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안 나기는 개뿔이. 옆에서 작게 중얼거린 레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가격한 하르페는 걱정 어린 눈으로 오늘 따라 멀게만 느껴지는 제로의 뒷모습을 쳐다보기만 했다. 평소에는 실실 웃으며 귀찮게 붙는 녀석이 갑자기 조용해지니 더 불안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어느덧 셋은 칸트의 무기점에 도착했다.


“어서오... 엥? 너, 넌.. 하르페가 아니냐?”

“오랜만이야 영감. 이건 사나이로 태어난 이상, 내가 안고 가야 할 비밀 중 하나에 곧 속하게 될 테니 묻지 말아줘.”


하르페는 썩소를 지으며 둘에게서 검을 받아 그에게 내밀었다.


“껄껄.. 잘 어울리는데?”

“잘 어울리긴 개뿔이. 남자한테 이런 모습이 뭐가 어울린다고.”


칸트가 레인과 제로를 번갈아봤다. 레인은 흥, 하고 고개를 홱 돌려버렸고, 제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난감해서 그저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나 눈 앞에 두고 욕 하는 거야 지금? 텔레파시라도 써? 쳇, 하여튼, 이것들 얼마야?”

“20골드다. 내일모레 다시 와라.”

“그래. 그때 올게. 잘 있어, 영감.”


밤길 조심해라, 하며 껄껄 웃는 칸트의 말을 상큼하게 씹으며 하르페는 주먹을 꼭 쥘 뿐이었다.
인사를 마치고 무기점에서 나오며 하르페는 배가 출출함을 느끼고, 제로와는 화해를 할 겸 둘에게 근처 식당에서 밥이라도 먹고 가자는 말을 꺼내려고 했다.


“우왓!”

“큭..”


하르페가 맨 앞에, 레인과 제로가 하르페를 호위하듯이 뒤를 따라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하르페는 갑자기 튀어나온 누군가와 부딪쳤다. 그대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려는 그를, 레인이 간신히 등에 손을 받쳐 잡아냈다.


“어.. 고맙다.”


평소 같으면 넘어지지 않았을 테지만, 하필이면 치마를 입고 있었고, 구두를 신었기 때문에 중심을 잡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저, 저기 괜찮으십니까?”


레인의 부축으로 제자리에 서는 하르페에게, 상대 쪽에서 당황하며 물었다. 옷을 보아하니 꽤 높은 지위에 있는 귀족의 자제인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당황하는 걸까, 하르페는 속으로만 궁금해 했다.


“괜찮습니다. 그쪽이야말로 어디 다치신 곳은?”

“아뇨.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저흰 이만...”

“저, 저기!”


다시 갈 길을 가려는 그들은 남자의 다급한 음성에 멈칫했다.


“저는 하이드나 가의 장남 ‘라위스 드 하이드나’입니다. 숙녀 분께의 무례를 용서받고자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자 합니다만, 시간 있으십니까?”


하르페는 느끼한 음성과 태도로 자신에게 말을 거는 눈앞의 남자를 당장이라도 조져버리고 싶었지만, ‘하이드나’라고 하면 이 루마이어 제국에서 꽤 영향력을 행사하는 공작 가문이기 때문에, 감히 개 패듯 패지는 못하고, 눈부시게 웃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타깝게도 지금부터 로크 마을에 가봐야 해서요. 정말 감사하지만, 마음만 받겠습니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왜냐면 나님은 여자가 아니니까요, 이 느끼한 버터덩어리야.
하르페는 간신히 이 말을 억누르며 눈부신 미소를 힘겹게 유지했다.


“그럼 꼭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으니, 감히 이렇게 아름다우신 여성분을 놀라게 한 죗값을 치르고자 합니다.”


이렇게까지 나오면 더 이상 거절할만한 핑계거리가 없어지게 된다. 그리고 실제로 핑계로 댈만한 게 없어서, 하르페는 조금 과하지만, 그래도 빨리 납득시킬 수 있도록 사실을 밝히기로 결심했다. 사실 눈앞의 느끼한 버터덩어리가 당황하여 굳어버리는 모습이 구경하고 싶기도 했다.


“정말로 그럴 필요 없습니다. 왜냐면 전..”


하르페는 가발을 벗으며 말을 이었다.


“남자니까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시는 볼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놀라서 굳은 라위스를 뒤로한 채 유유히 멀어져갔다.
부디 불쌍한 버터덩어리의 마음에 안식을.




“음. 그랬었지.”


하르페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약 30분 전부터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레인은 한심하게 쳐다보며 쏘아붙였다.


“‘음. 그랬었지’는 뭐가 ‘그랬었지’입니까? 단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일을 게을리 해도 되는 겁니까? 정 하기 싫으면 그 자리 제가 물려받겠다니까요?”

“음, 누가 개를 데리고 왔나보군.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럽네.”


둘은 눈에 스파크가 튀게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레인은 웬일로 먼저 기 싸움에서 물러나며 키득거렸다. 그 모습에 괜히 불안해진 하르페는 눈에 힘을 팍 주고 더욱 노려봤다.


“뭐야. 약이라도 했나?”

“제가 단장님입니까? 킥킥.. 오늘 그렇게도 싫어하는 파티에 가야 한다던데요, 그것도 하이드나 가에서 열리는?”


그건 또 어디서 주워들었대. 제로가 말했을 리는 없고. 하르페는 레인을 못마땅하게 쳐다보다가, 책상 위에 남은 서류뭉치를 들어서 레인에게 넘겨줬다.


“이, 이건..?”

“알다시피 난 파티에 가야 하는 몸이라서 말이야. 단장이 바쁘신데 부단장이 도와야지. 안 그래?”

“허어..”


어이없어하는 레인에게 조소를 날리며, 하르페는 단장실에서 벗어났다.
하르페는 원래 파티나 무도회처럼 높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식적인 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무척이나 피곤한 일인데다가,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고,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사탕발림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우리 앙증맞은 부단장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업무를 봐주신다면 얘기가 다르지.”


하르페는 단지 산더미처럼 쌓인 종이 덩어리에서 벗어나는 대신 파티에 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어차피 파티에 간다고 해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으면 사람을 상대할 일도 없으니, 적당히 시간을 때우며 쉬다가 올 생각이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루미엘 길드의 제복을 차려입고 모자까지 쓴 후 거울에 한 번 비춰보고 나서야 길드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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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6-30 22:56 | 조회 : 684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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