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그 이름

위잉-

오렌지 머리빛의 소년이 핸드폰을 흔들면서 진욱을 불렀다.

"친구, 친구! 전화 오는데?"

아침부터 공원으로 불러낸 소년에게 자판기에서 뽑아온 음료수를 던진 진욱이 벤치에 앉으며 소년의 손에 있는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연지?"

"그애 말하는 거 맞지? 그 애?"

진욱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소년이 눈을 빛내며 진욱을 쳐다봤다.

"조용히 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경고한 진욱이 통화버튼을 누르고 핸드폰을 귀에 댔다.

그러자 소년도 핸드폰 고리마냥 진욱과 가까이 앉아서 핸드폰에 같이 귀를 댔다.

"왜?"

괜히 소란스러워질까봐 진욱이 소년을 무시하고 전화를 받았다.

-응? 아~ 그냥. 지금 집이야?

"아니. 지금 밖에 나와 있어."

-오늘 연습 쉬는 날 아니야?

"응. 그냥 잠깐 나온거야."

-그래? 그럼, 같이 빙수 먹으러 갈래? 내가 살게.

"오~ 산대, 산대. 좋은 친구다. 그럼 나도 같이 가서 먹어도 돼? 나도 빙수 먹어보고 싶어!"

통화내용을 열심히 엿듣고 있던 소년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말했다.

저를 데려간다는 얘기도 안했는데 짝짝 박수를치며 소녀처럼 좋아하는 모습에 진욱이 인상을 썼다.

-응? 옆에 누구 있어?

"응!! 나는 진욱이 친..!!!"

"아냐. 무시해도 돼."

연지의 물음에 진욱이 소년의 입을 자신의 손으로 막아 밀면서 대답했다.

-친구 아니야? 약속 있으면 괜찮아. 신경 쓰지 마.

"아냐, 약속. 그냥 만난거야.

"으브..븝!!"

-그래?

"응."

-진짜지?

"응. 내가 이렇게 시끄러운 거 좋아하는 거 봤어?"

뭐가 그리 억울한지 입이 막힌 상태에서도 뭐라고 계속 얘길를 하려는 소년의 입술을 꽉 누르며 진욱이 말했다.

진욱의 말에 연지가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말 당사자 앞에서 하지 말라니까.

"뻔뻔한 녀석한테는 그게 약이야. 그 카페에서 만나는 거지?"

-하하. 진짜 너는. 알았어. 그럼 나 지금 출발할게. 그 옆에 있는 친구도 갈 데 없으면 데리고 와. 괜히 나 때문에 약속 깨는 것 같아서 미안하니까. 알겠지? 그럼 이만 끊는다.

자신의 말에 당연히 거절의 말을 할 것을 아는 연지가 먼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럼 나는 약속이 있어서 먼저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말도 못 들었다는 듯이 먼저 자신의 짐만 챙겨서 서둘러 자리를 뜨는 진욱의 뒤에 인기척이 따라 붙었다.

"어차피 같은 데 가는데 뭣 하러 먼저가? 같이 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그렇게 도란도란하게 가면 좋잖아?"

어깨를 으쓱하며 내뱉는 말에 진욱이 인상을 찌푸렸다.

"너는 네 갈길 가지? 음료수도 사줬으니까 볼 일 다 본 거 아니야?"

"내 갈길 가는 중인데? 너가 잠깐 잊었나 본데, 나 청각 엄청 좋은 거 알지? 그냥 인간 정도로 생각하면 안된다고! 그런 내 귀에 응? 같이 오라는 얘기가 똑똑히 들렸는데 어떻게 안 가냐? 나도 상대편이 안 좋아하면 눈치 없이 안 낀다고. 그런데 같이 오라잖아? 내 잘못 아니다? 나는 그냥 초대에 응하는 것 뿐이야."

아주 청산 유수로 내뱉는 말에 진욱이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어쩌다가 훈련같은 걸 가가지고 저런 걸 붙여왔는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코치님이 욕하던 선배가 때리던 절대 훈련에 안 갔을텐데...

진욱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성큼성큼 카페를 향해 걸어갔다.







저승사자이기는 하지만 한울도 연지 또래의 여자아이들이 민감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왜! 어떤 면에서! 자신이 민감하게 굴 거리를 제공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생각하는 게 표정으로 꽤나 고스란히 나타나는 연지의 반응으로 봐서는 몰래 침대 위에서 잤다던가 잠꼬대를 이상하게 했다던가 하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아무리 고민해봐도 짚이는 일이 없었다.

그 때 문이 닫히는 소리에 한울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시기니까 갑자기 삐진 것처럼 갑자기 풀릴 수도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어디가?"

쪼르르 달려나갔다가 외출복 차림의 연지를 보고 한울이 물었다.

"네."

약간 딱딱하게 대답한 연지가 신발장으로 다가갔다.

으어 너무 딱딱했나..

의도와 다르게 튀어나간 말에 연지가 잠시 멈칫했다.

"그래? 또 진욱이 그 친구 만나?"

"네."

"시험기간인데 괜찮은 거야?"

신발을 신는 연지를 보면서 한울이 물었다.

"네. 집중도 안되고..."

연지가 말 끝을 흐리면서 신발을 신느라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늦게 들어오지는 말고."

잠시 침묵이 흐르다 연지가 등을 돌려 문고리를 잡자 한울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진욱과 함께 있는 이상 엔간한 악령들이 달라붙을 생각은 못하겠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네."

연지는 짧게 대답하고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섰다.

"하아...."

곧이어 띠리릭-하며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자 한울이 참았던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까부터 계속 자신에게 다시 벽을 세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진짜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니까!"

쿵!하고 옆에 있던 벽에 머리를 박은 한울이 중얼거렸다.

진짜 이런 걸 물어볼 사람이도 있었으면...

물어볼 사람?

한울이 갑자기 무언가 생각난 듯이 몸을 일으켜서 핸드폰을 꺼내 익숙한 듯이 1번을 눌렀다.






"어어~ 안녕!! 네가 연지구나!! 반가워 반가워!! 나는 진욱이 친구야! 너도 진욱이 친구고 나도 진욱이 친구니까 우리 서로 친구 맞지?"

카페에 들어와서 친구 몫까지 빙수를 두 개 시킨다음 앉아있는데 입구의 딸랑- 소리가 들리자마자 소년이 연지 쪽으로 뛰어가서 눈을 반짝 거렸다.

"응?"

"조용히좀 해!"

진욱이 살짝 콩! 머리를 떼리고는 연지의 옆에 앉았다.

"먼저 시켰어?"

"응. 초코랑 망고로.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그냥 시켰는데, 괜찮지?"

"됐어. 저건 아무거나 다 잘 먹어."

연지가 슬쩍 소년을 곁눈질을 하며 물으니 진욱이 관심 없다는 듯 대답했다.

"뭐야~"

"괜찮아, 괜찮아. 나 진짜 아무 거나 잘 먹거든."

연지가 쿡 하고 진욱을 찌르자 소년이 해맑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이름이...?"

"나는 산 도깨비고, 386살 정도 됐어."

"응?"

소년의 소개에 연지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 거렸다.

산 도깨비?

그 이마에 뿔 있는 거?"

"...내가 그런 개그 재미 없다고 치지 말랬지?!"

"내가 뭐? ...아, 응응. 미안. 재미없었어?"

진욱을 쳐다보던 소년이 생글생글 웃으며 연지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쟤가 이상한 장난을 좋아해서 그래. 신경쓰지마."

"그럼 진짜 이름이 뭔데?"

"아, 음..."

"산 도비야. 도비. 나이는 우리랑 동갑이야. 19살."

소년의 말을 가로채며 진욱이 설명했다.

"아~ 이름이 도비구나."

"응응! 귀엽지?"

"하하."

그 때 진동벨이 울리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갔다올게. 야 도비! 너.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얌전히 앉아있어라."

"응~"

알겠다며 손을 팔락팔락 흔들던 소년은 진욱이 멀어지자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진욱이는 착한데 너무 냉담한 것 같아. 그렇지? 어차피 다 해 줄거면서 꼭 저렇게 툴툴 거린다니까. 물론 친구는 그런 것도 다 감싸주는 거잖아? 그래서 나는 그 점도 좋아하긴 하는데 그렇게 안 예쁘게 말하면 떡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악!!!'

중얼중얼 자그마한 손으로 이렇게 저렇게 모양도 만들어가며 설명하던 도비의 머리를 진욱이 퍽!하고 세게 때렸다.

"야!! 진짜 너..읍!!"

이에 뭐라고 반박하는 도비에게 진욱이 망고와 섞지도 않은 그냥 얼음을 한 숟가락을 퍼서 입에 밀어넣었다.

"하하하하!!!"

티격태격하는 둘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꾹꾹 참고 있던 연지가 결국 터져버렸다.







진욱은 무슨 귀찮은 길강아지마냥 여기고 있지만 은근 둘이서 잘 놀고 챙겨주는 모습을 보며 어느새 우울했던 연지의 마음도 다 풀려버렸다.

싱글싱글 웃으면서 아까의 일에 대해서 가벼운 마음을 가지게 된 연지는 사과하고 같이 나눠먹으려고 산, 예쁘게 포장된 마카롱을 품에 꼭 안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집에 들어온 연지는 소파 위에 보이는 이상한 인영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 안녕하세요. 연지씨 맞죠? 저도 저승사자에요. 한울이 보러 잠깐 왔던 거라 나쁜 사람 아니니까 소리지르거나 놀랄 필요는 없어요."

축축해 보이는 새카만 긴 웨이브머리에 흰 수건을 올려 둔 여자는 자신이 한울에게 사다 준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얇은 티셔츠 때문에 굴곡진 몸이 그대로 느껴졌다.

"연지씨?"

기다랗고 하얀 다리로 연지 앞에 다가온 여자가 연지의 이름을 부르며 싱긋 웃었다.

속눈썹도 많고, 웃는 모습도 같은 여자가 봐도 정말 예뻤다.

"아, 왔어? 놀랐지? 얘는 저승사자야."

그 때 부엌 쪽에서 뛰쳐나온 한울이 서원을 가르키면서 말했다.

"그건 내가 아까 말했어. 다시 한 번 소개할게요. 저는 저승사자 제 2부대 장 서원이에요."

서원.

'서원아... 서원아..."

한울이 울면서 애타게 부르던 그 장면이 생각이 나자 연지가 들고 있던 마라롱 박스를 툭-하고 떨어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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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0-03 13:35 | 조회 : 1,324 목록
작가의 말
브리사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시험 준비는 잘 되가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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