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젠 정말 쉬어야 했다. 기억을 찾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테오에게 떠날 날짜를 늦추자 편지를 쓸 예정이다. 지금도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조금 더 미적거며 미루거나 했다면 예의도 없이 약속한 때쯤이 되서야 편지를 보냈을 거다. 최대한 신속히 편지를 부쳐야 한다.
먼저 오전엔 도서관에 박혀서 책을 읽을 거다.
얼마나 완벽한 계획인지!
멋진 계획이 기대된다.

**

편지 쓰기를 그렇게 쉽게 보는 게 아니었다.

"안녕히 지내셨나요, 공작님. 벌써 봄이 찾아왔네요. 아름다운 꽃이 만개한 걸 보니 공작님이..."
뭔가 과장되게 가식적이다.

이 열 번째 편지도 처참히 구겨져 휴지통으로 들어갔다.
아.....안 되는데? 빨리 보내야 한다고 좀 전에 생각하지 않았나. 모레부터는 장마 기간이라 편지 전해주기도 어렵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보내야 한다. 더 끌었다간 정말 약속된 당일, 편지가 도착하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좀 치졸하고 유치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일명, 모방.

모아 둔 다른 영애, 영식들의 초대장이나 연서나 뭐 그런 편지들을 뒤져 괜찮아 보이는 문구를 골랐다.

"테오, 요즘 벚꽃이 예쁘게 피었죠? 다름이 아니라-"
뭔가 너무 가벼워 보이긴 했으나 전의 그 편지들보다는 나은 것 같아 마음엔 들지 않으나 울며 겨자 먹기로 보냈다.

시간이 쫒겨가며 다급히 엉성한 편지를 부치게 되었지만, 왠지 전처럼 불쾌하지 않았다.
이런 게 사랑인가 싶을 정도로 마음 한 켠이 간질거렸다.
낯설지만 기꺼운, 그런 감정이었다.

*

그녀에게 편지가 도착했다.
기대하지 않은 이런 사소한 행복이 날 얼마나 들뜨게 하는지, 당신은 모를 거야.
그러나 편지 내용은 사소한 내용이 아니었다. 아프다니, 어디가? 당장 뛰쳐나갈 것 같았으나 그녀가 곤란해 할까 봐 간신히 이성을 붙들었다.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그녀 곁에 있어 주지 못한단 사실이 불안했다.

걱정과는 별개로, 편지를 써준 정성이 갸륵했다.
향수를 뿌리고 예쁜 편지지를 골라 썼다는 걸 발견하자 웃음이 나왔다. 어떤 표정으로 이 편지를 썼을지, 얼마나 걸렸을지 상상이 가 다시 또 살풋 웃음을 지었다.

누가 보면 미친놈이라 생각할 정도다.
인정한다. 표정을 험악하게 굳혔다 다시 실실 웃어대는데, 누가 봐도 제정신으로 보이진 않을 터였다.
그러나 모두 그녀를 향한 감정이기에 이런 오류쯤은 괜찮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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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3-12 23:46 | 조회 : 458 목록
작가의 말
stande

너무 오랜만에 왔네요ㅠ 연재 주기 같은 걸 생각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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