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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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 반, 맥주 한 캔만 하기로 했는데 결국 맥주 두캔에 소주 한 병까지 마셨다. 30분 정도 일찍 어린 포주를 만났을 땐 술이 조금 덜 깨 머리가 멍해서 잔소리를 좀 들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음주를 하시다니…. 근무 태만 아녜여?”


“…, 옥자 씨가 불러내서 그랬습니다.”


“소주는 현수 씨가 까셨잖습니까….”


공범주제에….


“초등학생이예여? 됐어여, 그만해여."


“한태석은 어디있습니까?”


“오고있어여. 집에 가는 줄 알고 신나하고있는데…. 그거 절망하는게 또 볼만해여.”


몇시간 전까지만해도 어린 포주에게 드리운 어두운 가족사가 조금은 안타깝다 생각했는데…. 역시 과거랑은 별개로 무서운 남자였다. 나쁜 쪽으로 엮이지 말아야지. 그런데 나와는 달리 옥자는 뭐가그렇게 좋은지 어린 포주를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고있었다. 콩깍지인지, 아니면 그냥 술 기운인지.
우리는 폐쇄놀이터까지 걸으며 몇가지 대화를 주고 받았다. 대학을 가지 않은 나와는 별개의 주제가 된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대화에는 지장이 없었다. 틈틈이, 혼자 집을 보고있는 그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직까지 안자고 있는 것을 격려해야 하는지, 구슬려서 자게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잔소리를 하는 대신, ‘보고싶다.’, 라고 보내었더니, 그가 전화를 걸어와 달콤한 목소리로 나와 똑같은 말을 속삭여주었다. 한태석의 말로 뒤엔 바로 집으로 들어가 그를 끌어안고싶다.


“예지 씨 아직도 안주무세여?”


“절 기다리겠다고 하는 바람에.”


“…, 네네, 일찍 퇴근 시켜드릴게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어느 새, 그 앞에 도착했다. 안전선을 넘어 그 안으로 들어가니 빛도 없는 컴컴한 곳에 재갈을 문 남자가 잔뜩 겁에 질린 채 이쪽을 향해 꿇어앉아 있었다. 주변엔 나보다 큰 남자들이 진을 치고 있어 꽤나 위협적이었다. 자세히 보지않아도, 그들이 포르노에서 한태석과 뒹굴던 이들이라는 것을 대충 어림짐작 할 수 있었다.


“한태석.”


달빛에 의지해 꿇어앉은 그는 나를 올려다 보았다. 몇달만에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고있었다. 참, 보고싶었다. 오물을 삼키고, 남자의 것을 앞으로, 뒤로 빨던 그 얼굴을 잊을 수 있을 리 없지. 나의 사랑하는 남자를 욕보인 남자가 그보다 더 한곳으로 추락하던 것을 떠올렸다. 이 남자에겐 쓰레기라는 말이 어울린다.
이렇게 대화하고싶었다. 공포, 또는 다른 무언가로 점칠된 남자를 내려다보며 난 하고 싶었던 말을 떠올렸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은데 막상 하려니까 떠오르지 않네.


“최…, 최현수….”


말을 더듬으며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넋을 놓는다. 일그러진 그의 일상은 불쌍하지않았다. 일말의 동정조차 들지 않았다. 잠시 내 인성을 돌아보았다. 그다지 좋은 인성은 아니다.


“보고싶었습니다.”


막상 보게되니 웃음부터난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시면 뭐든지 다 할게요. 정말로…, 살려만주세요! 제발, 하라는 건 뭐든지….”


덕배를 돌아보니 내 앞으로 준비되어있던 A4용지와 펜을 내밀었다. 흰 종이는 달빛을 받아 푸른 듯, 희게 빛났다. 꿇어앉은 남자에게 그 종이와 펜을 쥐어주었다.


“받아적으십시요.”


펜을 쥔 남자의 손이 벌벌 떨리고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몇 달 동안 생각해온 말을 종이에 옮기기위해 입을 열었다. 내 머릿속의 말을 내 손이 아닌 내 앞의 남자의 손으로 옮기려고 시도한다. 그 남자를 제물로 받쳐 다른 모든 이들을 해방하려는 말을 적을 것이었다.


“'남자로 태어나…,’ 적어.”


그를 향해 명령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기에 바들바들 떠는 남자의 머리채를 한 손으로 쥐었다. 이렇게나 가벼우면서, 그렇게나 무거운 척 집에서 홀로 나를 기다리는 남자를 희롱했다. 나를 이용해 그를 유린하고 회유하고 옭아매고 협박하고 죽이려들었다. 나를 팔아 그를 취했다. 더러운 그 입속에서 터져나온 시꺼면 말들이 과거의 사랑하는 남자를 능욕했다. 그래서 난 눈 앞의 이 새끼를 용서 할 수 없어.


“살려만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

“…, 네가 찍은 그 좆같은 동영상 속에서 예지가 몇번이나 거부의사를 하는 지 세어봤어? 20분 동안 60번을 해. 20초에 한 번은 저항했다는거야.”


‘싫어, 하지마, 제발, 그만, 살려주세요, 그만해주세요.’ 수많은 말들로 애원했다. 아직도 그 동영상이 재생되는 듯 난 선명하게 그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 애원 뒤엔 항상 따라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리고 넌 멈추지 않았어. 되려 그것을 즐겼지. 나도 멈추지 않을생각이야.”


…, 비웃음이었다.
눈앞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남자는 괴성인지 비명인지 구분하기 힘든 것을 종이 위로 토해냈다. 머리에 총구가 들이밀어졌을 때야, 그는 내 뜻대로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유서였다. 비관자살의 증표로 나를 포함한 나를 도와준 누구에게도 화살이 돌아가지 않을 최상의 보이지않는 무기였다. 그래서 곧 죽을 이 남자는 남길 수 있는 어떠한 억울함도 없다.


“'남자로 태어나 남자를 사랑하고 남자를 안았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그런 저를 더럽다고 하셨고, 저는 그것을 버틸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태어날 수 밖에 없었던 저를 용서하세요. 저는 강간범이 맞습니다. 제대로 된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 한 것이 세상과 피해자에게 죄송스럽습니다. 안녕히.’”

그 종이는 남자의 신발과 함께 그 앞에 놓였다. 우리의 지문도 없고, 증거도 없고, 한태석을 죽인 것은 그들의 부모였다. 남자는 거구들에게 들려 공사현장 천장에 목이 매였다. 흔들리는 남자의 몸은 죽고싶지 않아 발악하던 것 만큼 큰 폭으로 흔들렸다.
5분 정도, 허무한 그 죽음을 지켜보았다. 이미 이세상에서 사라진 그에게서 나올 것은 추기 밖에 없었다. 어린 포주가 신발을 벗고 흔들리는 시신 위로 발길질을 했다.


“덕배야, 가자.”


“…, 응. 현수 씨, 수고 많으셨어여. 저희 관계는 여기까지예여. 그럼…, 예지 씨 잘 부탁드려여……. 그리고…, 그리고 혹시라도 예지 씨 괜찮으시면 한 번 뵙고 싶어여.”


“…, 아무말도 안 하신다고 약속하시면 언제 한 번 날 잡도록 하겠습니다.”


옥자는 어린 포주와 함께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새벽 5시 반, 서서히 새벽 여명이 푸르게 밝고있었다. 헤어지는 인사는 간단한 악수로 대신했다. 더이상 옥자나 어린 포주의 전화를 받을 일은 없다. 아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아침에 걸려올 전화가 줄어든다는 것은 묘한 허전함을 가져다 주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잠시 잊고있던 초조함이 다시 파르륵 올라왔다. 디지털 숫자가 오늘 따라 변하는 속도가 느렸다. 요즘 계단으로만 다녀서 잠시 엘리베이터의 속도를 간과하고 있었던 것일까 새삼 느리다. 다리를 떨며 20분 전에 부재중이 와있는 것을 확인했다. 맑은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뛰어서 문 앞으로 다가갔다.


“예지야.”


소파에 등을 대고 반쯤 누워있던 남자가 튕겨지듯 일어나 내게 달려들었다. 양팔을 벌려 남자의 몸을 온 가슴으로 받았다. 얇은 몸이 한 품에 확 들어왔다.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잠의 냄새가 풍겼다. 그의 목덜미에 코를 묻고 폐 깊숙히 냄새를 들이켰다. 어서 그를 안은 채 잠들고만 싶었다.


“현수 씨….”


“다녀왔어. 많이 기다렸지?”


“왜이렇게 늦어요…. 수상한데 다녀온 거 아니죠? 왜 전화 안받았어요…?”


“20분 전에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면서 걸어오다가 못받았어. 미안해. 정말 아직까지 안자고 기다린거야?”


“응…….”


그렇게 이야기하며 그는 뿌연 눈망울을 한 번 깜박였다. 그 눈 위에 입술을 맞추고 그를 들어올려 아직 돌아가는 영화 앞에 같이 앉았다. TV를 끄고 그 밑에 위치한 수납공간을 당겨 열었다. 깊은 곳에 숨겨진 주인 잃은 반지 상자. 나는 그것을 내 사랑하는 남자의 앞으로 내밀었다.


“약속했던 물건.”


“어…, 언제 준비하신 거예요?”


그는 반지 상자를 양손으로 들어올려 열어보지는 못하고 떨기만했다. 그 안에 튀어나와 놀래키는 인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난 그의 손을 잡고 반지 상자를 열어주었다. 은과 다이아로 장식된 반지. 같이 영화를 찍었던 여배우에게 조언을 듣고 산 그를 위한 반지였다. 많이 늦어, 주지 못한 채 봉인 당한 그것.
사랑스러운 남자의 이마 위 흉터에 가볍게 입술을 찍어 누른 후, 그 반지를 왼손 네번 째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역시 생각 했던 대로 딱 들어맞았다. 반지가 제 주인을 찾는 순간은 동이 트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작년 네 생일에. 그 때 케이크 불 끄면서 주려고 했는데…. 우리 그 날 아침에 헤어졌다.”


그의 생일은 곧 우리의 이별의 날이었다. 홀로 남겨졌던 나는 저항도 못해보고 그를 놓쳤어야했다. 반지를 낀 그가 그것을 아침 볕에 비춰보다 내 뺨에 입술을 맞춰주었다.


“미안해요. 그리고 정말 고마워요. 고마워요…….”


“사랑해, 예지야.”


“고마워요. 앞으로 현수 씨 를 더 사랑할게요.”


태양을 주례로, 마치 결혼 서약처럼 서로에게 속삭이고 맹세의 키스를 나누었다. 맞잡은 두 손으로 그와 나의 온기가 교차되었다. 반지에 박힌 돌의 의미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것을 받아준 남자와 나 사이의 관계가 회복 되었음이 중요한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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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5-20 03:10 | 조회 : 1,002 목록
작가의 말
니어

우왕 ㅎㅌ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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