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다리며

10. 너를 기다리며


밤길을 걷는 동안 집에 두고온 남자와 통화했다. 남자는 내가 집에서 나올 때 보다는 조금 잠이 깬 목소리로 내게 대꾸해 주었다. 핸드폰이라는 기기를 사이에 두고 귓가에 속삭여지는 목소리를 직접그와 대화하는 것과는 다른 설렘을 가져다 주었다.


-현수 씨, 우리 사귀잖아요….


그의 입에서 나온 ‘사귄다’, 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나에겐 큰 감동이었다. 그가 제대로 인지하고 있었고 우리 관계가 그만큼 확립되었다는 이야기이니까.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있다는 의미에서 응, 하고 대답했다. 우리, 사귀고있다. 그와 사귀고 있다고 온 세상에 소리쳐 알리고 싶었다.


-그러니까, 제가 커플링 해 와도 돼요…? 저 하고 싶어요….


“…, 네 손에 내가 끼워줄테니까 아침에 그걸로 잠깐 이야기 하자.”


-네. 현수 씨, 벌써 보고 싶어요. 빨리오세요. 아직 친구분 못 만나셨어요?


“저기 앞에 보이네. 기다리지 말고 자고있어. 최대한 빨리 갈게.”


-안잘거래도…. 기다릴게요.


기억의 잃기전의 그도, 언젠가 나를 기다리느라 며칠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운 적이 있었다. 그 예쁜 얼굴에 다크서클을 남기고, 건강을 해치게 만들었다. 그것을 눈으로 본 기억이 있기 때문에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빨리 들어갈게. 전화를 끊고 4시까지는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옥자의 앞으로 뛰었다. 옥자는 편의점 앞에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내가 산 맥주 한 캔과 종이 컵 두 개, 커피 두잔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맥주를 종이 컵에 따랐다.


“왜 불렀습니까?”


집에서 밤을 새고 있을 그가 생각나서인지 조급해 맥주를 들이켜 목을 축였다. 옥자는 나를 따라 한 잔을 들었다. 밤도 깊고 옥자의 침묵도 깊다.


“아침에…, 덕배가 학교를 빠졌습니다. 현수 씨와 통화를 한 후에 실신 할 정도로 울기 시작하더니 결국 탈진해서 쓰러졌습니다. 안그래도 요즘 과제가 많아서 밤샘도 많이 했었는데…. 제가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아서요. 덕배는 저한테 숨기는게 많습니다.”


“…, 사정이 있겠죠.”


“사정, 알아요, 사정. 말 할 수 없는 조직의 사정이란거 압니다. 그래도…, 좋아한다고 고백한 사람한테는 가르쳐 줄 수 있는거 아닙니까? 먼저 좋아한다고 했으면서…. …, 되게 섭섭해요.”


뜻밖의 내용이었다. 덕배가 옥자에게 좋아한다고 고백을 했단말야? 물론 두사람의 거리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은 했는데…. 하지만 더 의외인 것은 옥자의 입에서 사귀고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덕배가 고백했고, 옥자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은것인가?
조금 놀랐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덕배 씨를 찼습니까?”


“…, 네. 아무래도 둘 다 남자다 보니까 그 때는 조심스러웠습니다.”


“얼마나 됐습니까?”


“일년……, 됐습니다.”


“그럼 들을 자격이 없네요.”


안주는 커피로 대신한다. 쓴 맥주와 쓴 커피는 비슷한 듯 달랐다. 일년동안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하다니, 이기적이다. 뭐, 나도 한 번 내 사랑하는 사람을 거절하고 그 이후에 많이 힘들게 하긴 해서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 그럼 제가 고백하면 되는 겁니까?”


“쓰레기네요.”


“그럼 어떡합니까!”


답답한 듯, 옥자는 소리쳤지만 나는 보이는 그대로를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 머리도 마음도 깨끗한 군인이 그깟 비밀에 관한 호기심 때문에 이러는 걸로 밖에 보이지않는다.


“알아서 뭘 어쩌시게요? 알아봤자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아무사이도 아닌 사람에게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왜 합니까?”


“덕배에게 전 ‘아무사이’가 아닙니다."


“독단이네요.”


옥자는 제법 분한 얼굴로 나를 보았지만 그럴듯한 대꾸는 하지 못했다. 어느정도 인정하는 것 같은 느낌. 가만히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며 나를 기다리는 그에게 문자를 찍어 보내었다.
-영화는 재미있어?
문자 전송을 하고 답장을 몇번 씩 주고 받은 후에야, 옥자는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덕배 옆에 남을 수 있습니까? 저는 소위 말하는 ‘일반인’이고, 돈이 많지도 않고, 평범합니다. 덕배는 끼어들지 말라고 그러지, 그렇다고 덕배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전 정말 친하고, 좋은 연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어떻게…,덕배에 대해 현수 씨보다 더 모를 수가 있습니까?”


무슨 말 인지 이해 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어린 포주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니, 사실 나는 어린 포주의 편이었다. 아마 자기가 고백한, 소중한 사람을 지키려고 한 침묵이었을테다. 합법적인 일도 아닐 뿐 더러, 자신이 속한 곳이 어떠한 ‘조직’이라면 더더욱이. 그렇기에 혼자 외로워 할 청년이기도했다.
고민했다. 내가 옥자에게 어린 포주의 상황을 말하는게 과연 그에게 득이 될 것인지, 독이 될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둘 다 아니었다.


“대충 어떤이야기를 했는지만이라…….”


“혹시…, 덕배 씨의 가족관계를 알고 계십니까?”


“…, 아버지는 안계시고, 어머니께서 대부시라는 것은 알고있습니다. 지금 건물도 어머니께 받은거라고 했구요. 어머니도 자주 안 봽는다고 했습니다.”


옥자는 어린 포주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과연 내가 이 말을 해도 되는 것인지 다시 고민해야했다. 하지만 나도 어린 포주에 대해 아는 것 없는 사람이었고, 나보다는 옥자가 알고있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말 할 수 밖에 없지 않나.


“형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그 형 분께 납치 이후에 감금 강간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목이 졸려 사망했다고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지를 보면 자신의 형이 생각난다고 하더군요. 모르는 척 하세요. 이건 아마 저와 덕배 씨의 신뢰에 관한 문제인 것 같으니까.”


결국 이야기해버렸다. 약간의 죄책감을 동반한 것을 맥주 두번 째 잔과 함께 쓸어버린다. 나보다는 역시 옥자가 낫겠지, 라고 나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옥자는 내 말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딱히 대꾸나 반응을 기대하고 한 말은 아닌지라 나도 말을 이어가려고하지는 않았다.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밤이 적적한 만큼 어색하기도 했다. 이대로 새벽 4시까지 같이 있어야 한다니 그전에 어색한 공기에 숨이막혀 죽을지도…. 그 부분에서만큼은 괜히말했다고 후회했다. 집에가고싶다.


“…,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보다는 옥자 씨가 알고 계시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대충대충 대답했다.


“그래서…, 덕배는 복수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


혼잣말인지, 아님 내게 대화를 시도하는 것인지 모호한 경계에 걸친 목소리였다. 어쩌라는거야….


“현수 씨와 비슷 한 일을 많이 받았는데. 계중에서도 성 관련 복수극을 좋아했어요. 똑같은 방법으로 괴롭혔는데…. 아, 그래서였구나.”


“그래서 지금은 덕배 씨가 싫습니까?”


그냥 던진 말이었다. 그 속엔 어떠한 의미도 취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말하고나서 아, 이렇게 말하면 안되는거였나? 라고 다시 생각했다. 발끈 할 줄 알았던 옥자는 되려 웃었다.


“빨리 덕배 보고 싶습니다. 덕배한테 빨리 고백하고 꼭 안아주고 싶습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은 연인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근본없는 짜증이 확, 올라와 뒷머리를 때렸다. 그리고 어쩌면 매니저 형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나와 내 사랑하는 그이의 모습이 이렇게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저도 예지 보고 싶은데 집에 가도 됩니까?”


“엑! 그런게 어딧습니까! 저 혼자 두고 가시면 안되지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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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5-19 03:45 | 조회 : 992 목록
작가의 말
니어

잠을 너무 못잤더니 현기증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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