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탈출

녀석은 내가 빌빌대면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자 내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들어 올려서 식탁 의자에 앉혔다. 의자에 앉자 기구가 깊은 곳으로 쑥 들어와서 나도 모르게 신음을 내었다.

“흐앙!..흡”

“왜 그러지?”

갑자기 나도 모르게 나온 신음에 놀라 바로 입을 틀어막았다.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나에게 왜 그러냐고 묻고 있었지만 분명 저 자식은 일부러 구멍에 기구를 넣고 나를 의자에 앉혔을 것이다. 지금 나를 보고 있는 녀석의 눈에 장난기가 가득하고 웃고 있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개자식.

“...아무것도 아니야.......요”

“그래? 그럼 착하게 잘 앉아있어, 밥 차려 줄 테니까”

아무 생각 없이 반말을 했다가 순간 나를 내려다보는 싸늘한 시선이 느껴져 ‘요’라고 말끝에 붙여버렸다. 여기서 녀석의 심기를 거슬렀다간 비어있는 나의 위장을 채우지도 못할 것이다. 일단 배불리 먹어야 힘이 생겨 탈출할 궁리를 하든 녀석에게 싸움을 걸든 뭐라도 시도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글지글)(보글보글)(치이이이익)

녀석이 부엌에서 뭘 하나 뒤에서 슬쩍슬쩍 봤는데 계란후라이를 만들고 된장국을 끓이고 있었다. 그동안 녀석이 나한테 한 짓을 보면 뭔가 계속 괴롭힐 것 같고 밥도 대충 간단한 걸로 줄 것 같았는데 밥은 의외로 정성스레 해주었다.

“계란후라이는 반숙? 완숙?”

“ㅓ..어? 나는 반숙...요..”

‘???’

나는 갑자기 다정해 보이는 이 녀석에 당황했다. 만약에 누가 지금 내 얼굴을 본다면 분명 얼굴에 ‘???’라고 써있을 것이다. 녀석은 잘 요리된 반숙 계란후라이와 된장국 등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식탁에 하나둘씩 차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고슬고슬하게 잘 된 쌀밥을 차려주었다.

“먹어”

“네... 근데 ...이건...?”

“뭘 말이지?”

이 자식은 분명히 내가 뒤에 꽂은 이것을 괴애애애애앵장히 불편해 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 모르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다. 구멍에 꽂혀 있는 기구라고 말하기가 매우 심히 쪽팔려서 제대로 말도 못하겠다.

“아...아닙..흑”

배를 채울 따뜻한 밥도 있겠다, 긴장이 풀릴 대로 풀려버린 누군가한테 한탄할 수도 없는 나의 처지에 그만 참지 못하고 찔끔 울어버렸다.

“흡..히끅”

“우는건가?”

“아..아니야!!요...”

녀석에게 우는 얼굴을 보이기 싫어 팔로 눈물을 쓱쓱 닦고 바로 숟가락을 들어 밥을 크게 퍼 입에 한가득 쑤셔 넣었다. 녀석은 씨익하고 재수 없는 얼굴로 웃고선 같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쫩쫩냠냠)(옴뇸뇸)

누군가는 정말 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고 나도 그런 것처럼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내 속사정으로 말하자면 오랜만에 밥을 먹어서 쌀과 반찬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끼며 먹고 싶었지만 뒤에 꽂혀있는 무언가 때문에 먹는 것에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또한 정말 이자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또 한 가지는 의자가 있어도 꼭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갖다 놓은 것이다. 이 녀석이 밥을 만들고 있을 때는 그 모습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 구멍에 있는 기구에 신경 쓰지 못했지만 밥을 먹다보니까 다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밥을 먹은 게 다시 올라올 것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힘을 비축해두기 위해서라도 꾸역꾸역 집어넣었다.

“다 먹었어?”

“네...”

얼마나 지났다고 왠지 존댓말이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역시 나의 생존본능이란...

“일어서서 이제 씻고 와, 목줄은 잠시 풀어줄 테니”

“???”

갑자기 목줄을 풀어준다고 해서 깜짝 놀라서 잠시 벙 쪄 있는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지? 씻겨주길 원하는 건가? 구석구석까지..”

“무..무슨..! 아, 아니에요.. 빨리 풀어주기나 하..세요...”

“훗.. 그러지, 구멍에 있는 기구는 빼지마”

녀석은 나의 목줄을 풀어주고 내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봤다. 화장실로 걸어 들어가는 내내 등에 꽂히는 시선이 따가워서 왠지 자꾸 뒤를 돌아봐야 할 것 같았지만 무시하고 빠른 걸음으로 총총총 걸어갔다. 화장실 문을 닫고 보니 이 안은 정말 여기서 자도 될 정도로 넓었다. 한참을 감탄하다가 탈출할 곳이 있나 보니 사람이 지나다닐만한 통로가 있을 법한 곳도 없고 창문 하나도 없다. 일단 지금은 너무 피곤하고 순식간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 머리에 과부하가 나서 잠시 탈출이고 뭐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따뜻한 물에 내 몸을 맡기고 싶었다.

바로 넓은 욕조에 뜨끈한 물로 목욕물을 받고 몸을 담갔다. 머리에서 복잡하게 꼬여있던 생각들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몸의 피로가 풀리니 왠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하아.... 일단 이 방에 오기까지 난 기절해 있어서 여기가 어디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핸드폰은 당연히 없겠고, 역시 일단 창문 쪽으로 탈출하는 게 가장 가능성이 있어보이는데...”

녀석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나 혼자 소곤소곤 말을 했다. 여기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곤 저 자식밖에 없는 것 같은데, 저 자식한테 먼저 말 붙이긴 싫으니 그냥 내가 나에게 말 붙일 수밖에...

“음... 일단 창문 밖을 보는 게 제일 먼저겠어.. 잘하면 여기가 어딘지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고 ...”

나는 완전 불쌍하게 같이 말할 사람이 없어 스스로에게 말 붙이며 탈출할 궁리를 하고 있다가 몸의 피로가 녹은 탓인지 그대로 잠에 빠져버렸다.


.
.
.


“음...”

나는 짹짹 우는 참새 소리를 들으며 포근한 이불 속에서 기지개를 폈다. 이불에 얼굴을 묻으며 ‘좀만 더 자자...’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여기가 어딘지 생각나서 번쩍 눈을 뜨며 일어났다. 주변을 살펴보니 여태껏 있었던 일이 꿈은 아니었나 보다. 목줄은 다시 내 목에 채워져 있었다. 이 방에 누가 있는지 둘러봤는데 그 녀석도 없고 나 혼자 있었다.

‘아? 생각해 보니까 욕실에서 그대로 잠든 것 같은데 몸도 다 씻겨져 있는 것 같고 침대에서 자고 있네..? 그 녀석이 해준 건가..?’

녀석이 혹시 자고 있는 틈을 타서 내 몸에 또 손을 댔나 여기저기 살펴봤다. 별 다른 건 없었지만 녀석이 내 구멍에 꽂아둔 무언가는 그대로였다.

“아놔... 이거 빼지 말라고 했는데... 잠깐, 내가 왜 그 자식 말을 그대로 듣고 있어?!”

그 녀석이 또 나를 괴롭힐 것 같아 무서웠지만 왠지 갑자기 억울해져서 기구를 빼려고 손으로 잡았다. 쭉 빼려고 살짝 움직이자마자 구멍이 찢어질 것처럼 엄청 아파서 다시 바로 놔버렸다.

“헉..허... 뭐야 미친.. 왜 이렇게 아파? 우씨, 짜증나..”

그렇다. 나는 아픈 것은 싫었다. 고로 구멍에 박혀 있는 기구는 잠시 보류하기로 하고 목욕하면서 생각한 계획의 첫 단계, ‘창문 밖 살펴보기’를 실행해야겠다. 왠지 녀석이 바로 방문 밖에 있을 것 같아 살금살금 소리 없이 걸으며 창문 쪽으로 갔다. 그리고 창문 밖을 바라봤는데 왠지 울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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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7-06 02:53 | 조회 : 7,222 목록
작가의 말
솜니움의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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