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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원과 김희원 요원이 성공적으로 촬영을 끝마쳤습니다. 현장에서는 아무런 능력도 감지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최 실장은 귀에 낀 스피커로 보고를 들으며 심드렁한 얼굴로 “그래, 수고했다고 전해.”라고 입을 열었다. 이영욱, 그 자에 대한 웬만한 정보는 이미 꿰뚫고 있었다. 사실상 C팀에서 들어온 자료만 해도 수백 가지. 굳이 A팀의 히어로들이 나설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가 그들을 보내야 했었던 이유.

최 실장의 손에 잡혀 있던 서류의 끄트머리가 와락 우그러진다.

세계를 뒤집었던 초능력의 발견과 발현. 그와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초능력을 이용한 범죄나 단속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그 사이에서 이례적인 평화를 맞이했고, 오히려 초능력의 단속과 체포를 위한 히어로들이 국가 소속이라는 이유로 ‘세금도둑’이라는 오명을 피해 아파트 경비나 경찰의 일들을 도맡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확히 3년 뒤. 기다렸다는 듯이 전국적으로 일어난 빌런 사태는 모두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중심에 선 것이 바로 오범이 주도하는 제주도 귤파.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행하는 것은 절도나 방화, 공공기물을 훼손하는 등의 중범죄. 최근에는 악질적인 방법으로 살해당한 40대 남성 또한 발견됐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너무 평화에 찌들어있었다. 갑작스러운 빌런들의 범죄에도 대처하지 못할 만큼 히어로들은 각지에 흩어져 있었으며 그들이 가진 정신 또한 히어로에 걸맞을 정도로 숭고하지 않았다. 그건 당장 자신이 담당하는 A팀의 히어로들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그들의 결심은 그뿐이었던 거다.

최 실장의 시선이 올라가며 서류의 맨 첫 단을 향한다.
「시민들의 안전을 기하여 히어로 부에 전한다.」
…그리고 곧장 끝단으로.
「―때문에 히어로 부의 지원비를 전면 삭감하고, 시민들의 눈에서 최대한 노출을 피하길 바란다.」

이건 겉만 번지르르한 말들이다. 속은 듣기 좋은 미사여구만이 들어차 있다. 좋게 보면 시민들의 안전이지만, 정작 그걸 피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최 실장은 국가 소속임에도 세세한 것은 비밀로 돌아가려는 이 시스템을 무엇으로 써먹을 수 있는지 이해했다. 그들은 철저히 시민들에게 두려움을 심으려 한다. 그것도 일정한 공포심을 부여하고 부각할 수 있는 빌런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럼으로써 시민들에게 더욱 나라에 대한 강한 애착심과 갈망을 불어넣기 위해서.

최 실장은 언제인가 보았던 이영욱에 대한 정보를 한줄 떠올리며 구겨진 서류를 파쇄기에 밀어 넣었다.

<신돌 고등학교 2학년 3반, 폭력 사태에 연루. 피해자 김연우는 가해자로서 이영욱을 지목.>

답답한 속이 풀리질 않는다. 피해자 김연우, 가해자 이영욱이라고? 그럴 리가. 최 실장은 그 사건을 맡았던 김 경관을 알고 있다. 강력계 반장 최종길, 그건 히어로부의 A팀 실장을 맡기 전 그의 직함이었다. 그는 김 경관과의 통화 내용을 상기시켰다.

[…이영욱이요? 당연히 알고 있죠. 요즘 TV에서 볼 때마다 얼마나 친근하던지.]
“신돌 고등학교 사건 알아? 이영욱이 연루됐다고 하는.”
[알죠. 제가 맡았으니까요. 하지만 자세하게는 못 말해드려요.]
“그래. 그것만으로도 괜찮아. 고맙다.”
[뭘요. 신세도 많이 졌었는데 그 정도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죠. 음, 신돌 고등학교 말이죠…. 잠시만요. 제가 정리해놓은 파일이 있을 텐데― 아, 찾았다. 거기에는 일단 예전부터 불량 청소년이 넘쳐났어요. 교문 근처만 가도 담배 냄새가 진동을 하니 말 다 했죠. 저희들도 그 출신 애들 때문에 속 많이 썩였었어요. 그런데 그 사건 때문에 학교가 완전 뒤바뀌었죠.]

전화기 너머로 파일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김 경관은 목을 가다듬고 다시금 말을 잇는다.

[아이들 사이에서 큰 시비가 붙은 모양이에요. 학우 중 다리를 저는 아이가 있었는데 따돌림당하는 모습을 참지 못한 이영욱이 나섰거든요. 그 과정에서 이영욱이 많이 다쳤었어요. 그리고 그날 밤에 가해자 무리는 경찰서로 와서 자백했죠. 자신들이 이때까지 벌여왔던 신체적이나 정신적 가해 사실들을요. …이렇게 말하니까 조금 신기하게 들리네요. 어떻게 보면 그건 당연하겠지만― 그래서 뭐, 우리들은 서로의 심정이나 상황들을 들어주고 조율해준 것 밖에 안돼요. 죄송해요. 많이 말할 수가 없어요. 요즘 많이 빡세졌거든요. 뭐 만하면 잡으려 든다니까요.]
“아니야, 고마워.”
[네, 그럼.]

현실로 돌아온 그가 골치 아프다는 듯 이마를 문질렀다. 이영욱이 어째서 그런 일에 나섰고 가해자들이 그런 선택을 내렸는 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또 알아보면 될 일이다. 중요한 것은 C팀이 전해온 정보는 왜곡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최 실장은 의심만으로 가득 찬 머리를 게워 내려 답답한 사무실을 나섰다. 품속에서 꺼낸 하얀 담배 곽 안이 달칵거린다.

당시의 피해자는 이영욱, 그 본인.

어째서 C팀은 그가 가해자라고 왜곡해 정보를 보냈을까? 항상 철두철미하던 C팀의 실장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다. 분명 그 서류들까지도 그가 검토해봤음이 틀림없을 텐데. 그렇다면 대체 왜….

최 실장은 몇 개비 남지 않아 살살 흔들면 달칵거리는 담배 곽을 다시 품속에 집어넣으며 사무실의 옆으로 배치된 하늘 정원으로 향한다.

잘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다. 이해할 수 없는 나라의 결정, 신념 없는 히어로, 거짓된 정보의 전파, 현재의 생활에 안주하고 있는 시민들.

최 실장은 숨을 힘껏 들이마셨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다. 나랏밥을 먹는 처지에 무슨 힘을 바라겠는가. 하지만 그는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건 이곳으로 좌천되기 전부터 그의 마음속에서 굳게 자라난 것. 최 실장의 숨이 천천히 내뱉어진다. 자신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11
경호원이라니, 뜬금없이.
영욱은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것만 같은 거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등학생 때의 그 사건으로 껌딱지처럼 달라붙게 된 이해원은 때때로 자신에게 이상할 정도의 집착을 보이곤 했다. 이번엔 도가 지나치지 않는다면 좋을 텐데. 영욱이 해원의 앞에서 무심코 힘들다는 소리를 내뱉었다가, 온 집을 가득 채우는 건강식품들의 행렬을 목도했던 탓이다. 그밖에도 수많은 전적이 있었기에 그가 그의 집착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 모든 것은 그 사건 때문이었다. 영욱은 지금과는 달랐던 해원을 떠올렸다.

학창시절, 세계적으로 유명한 m사의 장남으로 태어난 해원은 자존감과 자신감이 쥐꼬리만큼도 없었다. 모의고사에서 항상 올 1등급을 받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음에도 그랬다. 아니면 해원의 주위에서 자존감과 자신감을 높일 수 있는― 그런 기회들을 모두 빼앗아 버렸을지도 모른다.

덥수룩한 적갈색의 머리칼. 그 밑으로 올망졸망 모여 있던 이목구비. 제 얼굴만큼이나 큰 까만 뿔테안경을 쓰고 한쪽 다리를 절던 이해원의 모습.

그는 아주 소심했다. 살짝 옷깃이 스친 것만으로도 고개를 꾸벅이며 사과를 했을 만큼. 고등학생 때의 이해원은 항상 주눅들어 있었다. 영욱이 보았던 그는 매일 무언가에 두려워하고, 미안해하는 얼굴을 했다. 고개를 일정이상 들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영욱은 신기했다. 모두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보다는 한 가지라도 더 관찰하고 싶은 욕망이 컸다. 거친 남자아이들의 손길에 이리저리 떠밀리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그걸 연기자로서 어떻게 소화해낼 수 있는지 고민했다. 죄책감보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참 잔인하게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계속된 관찰 아래, 영욱은 그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무서워함을 알았다. 아이들이 때렸던 곳보다는 좀 더 안쪽으로 멍우리가 져 있었다. 핏자국이 선연하게 물든 파카의 안. 그는 그걸 보고 서늘해지는 가슴께를 느꼈다.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제서야 자신은 그 아이, 라는 이름보단 해원이라는 진짜 이름을 부르고 싶어졌다.

그리고 평소보다 심한 폭력이 그에게 행사되었을 날에. 영욱은 해원의 이름을 불렀다. 앞으로 나서고, 그만하라 이야기했다. 그러자 해원을 괴롭히던 무리의 아이들은 시답지 않다는 듯 웃었다. 반 아이들의 시선도 그리 곱지는 않았다. 모두는 그저 나의 행동에 의아해할 뿐이다. 어차피 자신도 방관자였으며, 직접적이진 않지만 가해자에 속해있었으니까.

당시 아이들의 중심에 섰던 김연우는 내 어깨를 틀어쥐고 사물함의 모서리 위로 내려찍었다. 눈앞이 어찔하고 조금의 후회가 몰려들었다. 하지만 참을만 했다. 나는 옆으로 돌아서 숨을 몰아쉬고 해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해원은 당황하지도 않았고, 무언가에 떨고 있는 모습도 아니었다.
이해원은 입을 다물고 무엇보다 서늘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왜?

해원의 입이 그렇게 벌어진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찰나에 나는 하나의 연극 속으로 참여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은 그 순간 엑스트라가 됐다. 어쭙잖은 모습으로 주역을 넘보는, 그런 엑스트라가.

영욱은 변함없이 이기적이었다. 나 자신은 이미 그 아이에게서 악역이었던 거다. 그런 악역이, 지금 해원을 구하려 하고 있었다. 이건 싸구려 비디오 영화와 비슷했다. 그것도 빌어먹을 정도로 인기가 없는.

기억을 회상하던 영욱이 커피포트를 잡고 컵으로 기울였다. 쪼르륵 소리와 함께 컵의 안쪽으로 커피가 차올랐다. 그윽하고 무거운 향이 코끝을 스친다.

뜨거운 컵을 잡고 몇 번을 호록거린 영욱이 생각했다. 아마 그 사건은 이해원이 처리했었던 거겠지. 다음날이 밝아서 학교를 찾아온 경찰들과 잔뜩 기가 죽은 듯 고개를 숙인 김연우와 그 무리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자신에게 잔뜩 붙어오던 이해원의 모습까지도.

이해원은 그 사건을 마지막으로 밝아진 듯 했다. 웃음이 많아지고, 다양한 감정 표현이 생겼다. 더 이상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눈을 마주치고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안쪽으로 진 멍어리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영욱은 나서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이해원은 성가신 인물이 되어갔다.

이해원, 무뢰배, 귀찮은 놈…. 그 아이를 지칭하는 말은 점차 늘어나며 가벼워졌다.

영욱은 커피가 담긴 컵을 들고 침실로 향했다. 피곤하네. 그는 모든 것에 있어서 초연해지는 법을 배웠다. 경호원이라, 어떻게든 되겠지. 그는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었다. 이기적이었고, 성실하다면 성실한 그저 그런 악역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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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1-10 14:45 | 조회 : 712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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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2307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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