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모험의 첫번째 동료(삽화)

"진짜로 찾아가려는거야..? 우리 그냥 돌아가면 안되나.."


슬슬 다리아픈데.. 하고 뒷말을 이으며, 잉여왕자이자 용사인 레오가 다리를 문질렀다.
벌써 몇시간이고 걸었는지 모른다.
그 앞에서 당당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는 흑발의 그가 눈을 유독 찌르는 앞머리를 거칠게 털고는 뒤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따라잡으려면 당장 가야해."


그러니까 왜 그렇게 열을 올리는거야..
귀찮은데,
하고 독백한 왕자는 거리를 둘러보았다.
상점가가 보인다.
대체로 시끌벅적하고 활기가 있어보였다.
이런 광경은 성안에 있었을땐 멀리서밖에 볼수가 없었는데 이렇게 직접 현장에 와보니 그 느낌은 비록 왕자가 몇시간째 걷기만하고 있는 상황이여도 새롭고 즐거운 기분이 들어 힘든것도 잊을 정도였다.
ㅡ하지만, 역시 그러네..


"목말라"
"침이나 삼키던지"
"물없어?"
"없어."
"매정해.."


몇시간째 걷고 있으려니 목이 말랐다.
주변을 둘러보니 상점가에서 파는건 대체로 고기라던가 방어구, 포션,용병집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적어도 술집이라도 보이면 좋을텐데.
포션이라도 마실까..? 하고 극단적인 생각에 빠져있을때, 앞장서서 걷고있던 그가 그자리에서 우뚝 서고는 한곳을 향해 날카롭게 시선을 던졌다.
바로 뒤에서 따라가고 있던 왕자는 우뚝 선 그의 등에 콩 하고 부딪혔지만, 그는 신경도 안쓰는지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저기있군"
"뭐, 정말??"


그가 가리키는데로 왕자또한 시선을 던지니 그곳에선 상점가의 활기가 미치지 않는, 그늘진 으슥한 장소에서 킬킬거리며 뭔가를 매만지고 있는 3명의 모습이 보였다.
틀림없다. 왕자를 삥뜯어간 그 도적단이였다.
매만지고 있는 저건...


"내 망토!"


왕자가 걸쳤던 화려한 망토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것이였다.
왕자는 딱히 자신의 신분을 상징하는 옷들이나 악세서리에 대한 집착같은것은 없지만, 왠지 저들이 만지니 기분이 안좋아지고 혹여 때가 탈까 조바심까지 들었다.


"이제 어쩔거야??"
"어쩌긴.."


그는 썩소처럼 보이는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활을 문질렀다.
그러곤, 그의 왼손에 있던 찰랑거리는 두개의 팔찌중 하나의 팔찌에다가 손가락으로 툭툭 치니, 팔찌가 빛이 나는가 싶더니 그의 손에는 분명 없었던 화살이 쨘 하고 들려져 있었다.


"우와..신기해!"
"시끄러워, 잠자코 있어."


그는 까칠하게 매도하곤 조용하고 신속하게 어느 상점가 윗 지붕위로 풀쩍 뛰어오르고는 화살을 활 시위에 정확히 정중앙이 되게 얹은다음, 시위를 잡은 깍지손을 어깨와 팔꿈치 힘으로 뒤로 잡아당겼다.
그 일련의 행동이 물흐르듯이 너무나 순식간에 갖추어졌다.
이제 활을 쏘기 위한 준비운동을 끝내고, 다음은 과녁을 향해 발사하는 단계로 넘어왔다.


그는 더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듯 바로 시위를 놓으니, 화살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목표물을 향해 올곶게 뻗어갔다.
화살은 피잉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더니,


"으아아악..!! 내 손이..."


왕자의 망토를 만지작 거리고 있던 한명의 손에 정확히 꽃혔다.
그 주위에 있던 두명의 도적이 당황해 했다.


"어디서 날라온 거지?!"
"저기야..! 저 지붕위.."


도적은 지붕위에 있던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자마자 뒤로 돌아 불이나케 뛰어갔다.
그는 그것도 예상했다는 듯이, 사냥감을 몰아세우는 하이에나 마냥 두눈을 빛냈다.
그 아래에서, 지붕위를 올려다 보던 왕자가 중얼거렸다.


"내 망토에 꽃히진 않았겠지..??"


























"제발 살려주세요!"
"우리가 뭘했다고..!"
"가진거 다 내어드릴테니.."


도망간 도적단 3인방을 뒤쫓아서 한발 늦게 왕자가 도착하니, 이미 상황은 일단락 된 뒤인것 같았다.
도적들은 무릎꿇고 앉아서 멍들고 이빨빠진 꼴로 손바닥에 불이 나게 싹싹 빌고 있었다.
'뭔일이 있었던 거지..?'


"됐고, 이 녀석한테서 모험의 서라는 책을 뺏아갔다면서? 지금 가지고 있냐? 안가지고 있으면 귓볼에다가 화살로 꽂아버리는줄 알아."
"히이이익..!"


협박엔 익숙하다는듯 맛깔나게 말한 그는 왕자가 여기까지 도착하는 시간도 계산해 두었나보다.


"그.. 모험의 서라면 이걸 말하시는.."


도적단은 서로 눈치만 보다가 한명이 대표로 나서서, 품속을 뒤적거리더니 낡고 흠집이 많은 책 한권을 꺼냈다.
그 책에는 /용사전기:모험의 서/라고 제목이 큼지막하게 적혀있으니 확실히 왕자가 빼앗겼던 그 책이 맞았다.


"..."


모험의 서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이 순간 누그러지는가 싶더니, 다시 험악하게 분위기를 잡으며 말했다.


"그거 내놓고 꺼져."
"아..알겠습니다.."


책을 꺼냈던 도적이 사나운 개에게 물리지 않게 조심히 사료통에 사료를 넣어주는것 마냥 조심스럽게 책을 내밀었다.
그는 그 책을 휙 하고 낚아채고는 지긋이 바라보았다.


"... 확실히.."


진품이군, 하고 속삭였다.
그 앞에서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려는 도적단 무리가 눈에 보인다.
'잠깐.. 내 망토라던가.. 옷은 내놓고 가!'


왕자의 생각을 대변하듯 그가 책을 갈무리하고는
슬금슬금 도망가려는 도적들을 불러세웠다.


"얘한테 옷도 뺏아갔었지? 그것도 내놔."
"그..그것이.."


가지고 있는건 이것뿐이고, 다른옷은 거의 다 팔아치웠어요.. 하고 이실직고하니, 왕자는 귀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는건 아닌가 싶을정도로 머리가 붉으락했다.


"그럼 그거라도 내놔."






왕자는 옷을 되찾았다!
되찾은 옷이라고 해봐야, 왕실 망토와 왕자가 평소에 입었던 네이비색 옷 정도가 다였고, 그 외에는 정말 말끔히 팔아치운듯 했다.
그럼 팔아서 얻은 돈이라도 되돌려받으려 했지만, 그 돈은 자신들의 대장에게 주어서 지금 자신들에게는 없댄다.


"그게 사실이겠지? 아니기만 해봐..."
"지...진짜예요!"


도적의 이마에서 부터 턱선까지 주욱 굵은 땀방울 하나가 굴러 떨어졌다.
'저건 진실이군'하고 판별한 그는 이젠 도적단에게는 관심도 없다는듯이 등을 뒤로 돌렸다.
그 뒤에서 그가 듣지 못할거라 생각하는지 은밀하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쳇, 우리 본전이나 뽑을까 했더니 왠 기생오라비같은게.."
"나중에 대장을 데리고와서 보복이나 해볼까?"
"아서라, 일단 여기서 벗어나고..."
"안들리는 줄 알았나 보지?"


그는 특히 기생오라비라는 단어에 발끈해하면서
주먹을 쥐고 3인방의 머리를 빠른스피드로 파파팍! 하고 내려쳤다.
그러자 3인방은 맥도 못추리고 털썩 쓰러져서 헤롱헤롱 상태에 빠졌다.
펀지 한방에 기절버스를 태우다니...
앞으로 그에겐 개기면 안되겠다고 왕자는 생각했다.


"볼일은 끝났어, 가자."


그는 그렇게 걸음을 옮겼고, 왕자도 따라서 걸으려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기절해서 엎어져있는 도적 3인방을 보니 재밌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그거 들었어? 상점가 길바닥에서 팬티바람으로 길가에 쓰러져있던 3명을 경비병이 보호 구속했다더군."
"팬티바람으로? 도적에게 털리기라도 한건가?"
"그건 자세히 모르겠지만, 그 3명도 참 불쌍해. 하필이면.."
"아.. 그렇네, 하필이면 가장 번화가인 란도르프 상점가에서 그런 추태를..."
"앞으로 얼굴피고 사는건 불가능하겠네, 그 3명.."


안쓰러운듯이 갑옷으로 중무장을 한 모험가와 그 앞에서 술잔을 따라 마시는 그의 동료격처럼 보이는 마법사가 속닥였다.
그옆에서 자신의 작품을 음미하는듯이 만족스럽게 미소를 짓는 왕자가 있었다.
3인방이라면 당연, 자신을 삥뜯어간 그 도적단 3명을 말하는 것이리라...
가장 번화가라고 한다면, 거기가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이였나?
왕자는 거기까지 신경쓰고 싶지는 않았다.
우선.. 뭐, 복수 완료라고 해야할까나, 자신에게 해줬던걸 그대로 갚아줬다.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왕자는 고개를 들었다.


목좀 축일려고 어디 적당한 술집에 와선 나무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그와 대면중이다.
그 테이블 위에는 모험의 서가 올려져있었다.
그는 왕자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고 스르륵 모험의 서를 훑어보고 있는 중이다.
'저게 그렇게 마음에 든건가..'
왕자는 마음같아서는 자신을 도와준 그에게 그 모험의 서를 선뜻 건내주고 싶었지만, 저 모험의 서가 없다면 왕자의 용사모험기는 그야말로 파란만장할 정도로 삐딱선을 타서 엉뚱한 일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일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왕자의 길잡이 이기도 한 모험의 서는 꼭 필요불가결했다.


"다읽었어?"


왕자는 술을 들이키면서 물었다.
참고로 이 술은 그가 사주는것이다.


"..."


열중하는듯 아무 대답을 하지 않던 그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책의 커버를 덮었다.


"음..뭐... 그쪽이 용사..라고 했던가?"
"응응 맞아 용사"


처음엔 분명 안믿는것 같았지만 진품인 모험의 서를 보니 생각이 달라졌나보다.


"... 용사.. 너의 이름은 뭐지?"
"응? 알아서 뭐하게?"
"음,그게..그... 아니! 먼저 이름부터 밝혀라"
"원래 이럴땐 이름을 물어본 쪽이 먼저 이름을 알려주지 않나?"
"..그것도 맞군, "


그는 심호흡을 하더니, 벽에 세워두었던 활대를 잡고서 말했다.


" '시시'라고 한다. 보다시피 궁수지."
"진짜 잘 쏘던데!"


왕자는 가감없이 칭찬을 건냈다.
그, 시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는 그래, 그래서 그쪽 이름은? 하고 되물어왔기에 왕자는 말했다.


"난 레오 레옹포... "


...어음..
내 이름이 뭐였더라...
하도 길다보니 성안에서밖에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그 성을 떠나고 보니, 정말로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져서 조금 잊어버렸다.
대충 그나마 잘 기억하고 있던 이름의 첫글자만 말했다.


"음, 레오라고 해!"
"레오용사인가..?"


시시는 그렇게 말하곤 왜 이렇게 덜떨어진 인간이 용사로 선택된 거지..하고 중얼거렸다.
왕자는 볼을 부풀린 상태로 시시를 바라보았다.


"그..얼굴은 뭐지? 불만이 많아보이는데"
"아, 뭔가 익숙한 느낌이라서.."


왕자는 두볼에 빵빵하게 넣었던 공기를 푸우 하고 빼내었다.
그 앞에서 시시는 진짜 못마땅한다는 듯이 바라봤다. 시시의 시선은 지금막 술을 홀짝이며 마시는 왕자에게로 향했고...
정말 못마땅하지만, 진짜 믿기힘들지만...
시시는 후우 하고 한숨을 쉬곤 결심했다는 듯이
소리높혀 말했다.


"날 동료로 넣어주지 않겠어?"
"푸우우우우우ㅡ"


미처 예상하지 못한 왕자는 입에 머금었던 술을 푸우 하고, 사형수를 처형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목을 향해 칼을 내리치기전, 칼에다가 입으로 물같은걸 뿌리는것 처럼, 왕자또한 그런 기분에 사로잡혀 고개를 돌린다는 상식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결과, 왕자가 뿜은 술을 정통으로 맞은 시시는 앞머리에서 부터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잠시 정적.
시시는 일어섰다.
혼자 일어섰다면 문제 없었겠지만...
그 옆에 세워두었던 활까지 잡고서 일어섰다.


































【어찌저찌 궁수인 시시가 동료로 들어왔다!】
【파티의 공격력이 100%상승된다.】


어...내가 좀더 편해진건 좋은데...
공격력이 100% 올랐다는건, 난 아예 공격력이 있다고 치지도 않았다는건가..?
용사는 피가 머리에 쏠렸어도 생각에 빠질수도 있는거구나, 하고 감탄하면서도 자신의 무력감이 낱낱이 들어나는 기분이 들어서 울적해졌다.


"음..저기"
"왜? 마지막으로 할말이라도 있냐"
"이것좀 풀어주면 좋을것도 같은데~..!"


피가 머리에 쏠린다.
그런 상태에서 흔들거린다.
약간좀 멀미가 나는것도 같지만, 그럭저럭 있을만 한것 같다.


"욱.."


아니. 취소야 취소!! 그러니까 날 샌드백처럼 때리지 마!


왕자는 시시에게 술을 뿜은 대가로 톡톡히 벌을 받고있는 중이다.
대롱이처럼 거꾸로 매달려서 샌드백이 된다는..
시시는 듣기론 용사를 꽤 동경하고 있었다는데..
나 이래뵈도.. 용사인디...
취급이 너무한거 아냐!?!
하고 온몸으로 눈물을 삼키며 레오는 그날 매달린채 잠에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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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1-09 05:24 | 조회 : 803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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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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