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주황머리 짐승은 거두는 거 아니랬어.

"-시오!"

"네, 어머니 부르셨어요?"

"아버지에게 이 우편과 핫초코도 가져다 주렴."

"네!"

그렇다. 나는 배영후에서 짙은 다홍빛을 뿜어내던 그 포털을 들어간 순간 시오 크레데레가 되었다. 갑작스럽게 갓난 아기로 변했을 때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었나? 맞는 말이다. 눈을 감았다 떠보니 10년이라는 아주 긴 시간이 지나있었다. 나는 스페라 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외동이라 부모님에게 아낌없는 사랑도 받고 있는 중이다.

나름 현재의 삶을 만족하며 사는 중이었다.

하지만 '설정'에 따르면 곧, 11번째 생일에 나의 첫 초능력이 발현된다.
슬슬 프롤로그가 끝날 때가 되었나보다.
11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이 마을의 모든 아이들은
광장에 모여서 발현을 기다리는 문화가 있다.
발현이 되는 아이들에게는 푸른 빛이 곁에 나타난다고 하지.
과연 몇 명이나 나올지...

참, R은 내가 이 곳에 오고 나서부터 본 적이 없다.
빌어먹을 주황머리.

똑똑똑.

"아버지, 저예요. 들어가도 되나요?"

"들어오렴."

끼익-

"-어머니께서 전해달라는 우편과 핫초코예요."

"어어- 그래. 항상 고맙구나."

"작업 때문에 많이 바쁘시죠?"

"아무래도 황자의 11번째 생일이 다가오니까...황궁에서 재촉이 오는 구나."

"과연 황자는 초능력이 발현 될까요?"

"황족의 피를 이어받은 자는 무조건 발현이 되지. 틀림없이 될 거야. 아주 강력한 능력을 이어받을테지."

"그렇군요..."

당연히 그럴테지. 왜냐고? 내가 그렇게 설정 해두었으니까.
황족이면 당연히 이름 값을 해야될 거 아니야?

"참, 시오. 너무 걱정 하지 말 거라. 능력이 발현이 안 되어도 괜찮단다.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생각을 비우렴."

"...네! 전 이제 책을 읽으러 가볼게요."

끼익- 탁!

어림도 없지.
사랑하는 아버지, 유감스럽지만 이 아들은 초능력으로 이 세계를 씹어먹을 예정입니다. 어떻게 얻은 삶인데, 기회는 알뜰하게 사용하는 게 예의 아니겠어요?

-
-
-
시간은 흘렀고, 어느새 나의 11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아침이 나를 찾아왔다.
별로 감흥은 없다.
내 관심사는 내게 무슨 능력이 주어질지, 그것 하나 뿐.
발현 될 거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
아, 황자의 능력이 조금 궁금하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아침 일찍 광장으로 향해야된다.
이른 새벽에 일어나니까 기분이 굉장히 더럽다고 해야될지...
전생의 기억이 나서 더욱 더 그렇다.

"시오~준비 다 했니? 슬슬 나가보아야될 시간이구나."

"네! 지금 가요, 어머니."

뭐, 지금은 이게 더 중요하지.

-
-
-
현재 나는 짙은 다홍빛을 뿜어내는 포털 앞에 몇몇의 아이들과 서 있다.
짙은 다홍빛...그래. 잊을 수가 없지. 나를 여기로 떨군 포털도 다홍빛이었지.
이 마을에서 광장으로 가려면 이 포털을 넘어가야된다고 한다.
내 옆의 꼬맹이들은 아마도 포털을 처음 보는 거 같다.
덜덜 떠는 모습들이 안쓰럽네. 어쩔 수 없지. 내가 먼저 들어가줘야지.

"갔다 올게요 어머니, 아버지."

"그래...조심히 다녀오도록."

나는 부모님께 안부 인사를 전하고 포털로 걸어갔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이 느낌, 여전히 익숙하지 않다.

슈욱-!

"-우욱!!"

아, 젠장. 이 느낌. 뱃속을 죄어오는 이 빌어먹을 고통.
그래...R이 나를 써스트(THIRST)에 데려갔을 때의 그 느낌이다.
그때 어떻게 견뎌내었지? 그때...무언가를...마신 거 같았는데.
뭐였지?

앓는 소리를 내며 구토를 하는 내 앞에 누군가가 작은 병을 내밀었다.

"이거?"

보라빛...액체...하하...맞아 저거였어.
고통을 참아내고 저 병을 쥐고 있는 손의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이거 내가 기억하라고 전에 말했던 거 생각 나? 쿡. 오랜만이야 형?"

말문이 막혔다. 내 앞에는 11년 전에 마지막으로 보았던
빌어먹을 얼굴이 있었다.

"...야근이 많았나보다?"

"푸하하! 개처럼 일하긴 했지. 뭐, 이 얘기는 차차 하자고. 일단 그 주스부터 마시는 게 수명에 도움이 될 거 같은데?"

나는 R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가 건네준 액체를 허겁지겁 들이켰다.
오랜만에 맛 보는 술 맛이었다.

"많이 급한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네? (싱긋)"

"...역시 주황머리 짐승은 거두는 거 아니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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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11-23 23:17 | 조회 : 1,507 목록
작가의 말
힐링투데이

5개월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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