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눈을 떴을 때, 낯선 천장이 보였다. 온 몸은 어찌나 쑤시는지.. 특히 허리 아래 쪽으로 굉장히 쓰리고 아팠다.

“크윽!”

이제서야 떠오르는 기억들.. 처음으로 느꼈던 그 치욕..!

한꺼번에 몰려오는 치욕과 분노에 거칠게 몸을 일으켰다.

“하.. 하준! 깼어?! 괜찮아?”

그제야 옆에 미샤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루를 꼬박 잠만 잤어..! 괜찮은거지?!”
“..... 여긴 어디..”
“의무실이야. 도통 일어나질 않아서.. 빅토르! 이 아인 이제 괜찮은건가?”
“예, 보스. 하루 안에 너무 많은 무리를.. 하셔서 그런것 같습니다. 원래부터도 워낙 체력이 약하신 분인데다... 또 이런 일은... 처음.. 인듯해서.. 매일 안쪽으로.. 이 약을 꼼꼼히 발라주셔야 합니다..”

안쪽.. 이라면.........!
씨...... 발............! 지금 내 깊숙한 그곳을 말하는거지?!!!!

“응, 알겠어. 또 충고할 것이 있나?”
“.................. 당분간은....... 안하시는 것이.....”
“알겠다. 나도 아픈 하준을 데리고 할 생각은 없으니..”

의사 가운을 입은 빅토르란 남자가 미샤의 뒤쪽에 서서 말을 아끼며 나름 충고해주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그제서야 내가 아직까지 알몸 상태 그대로라는 것을 깨달았다.

“!!!!! 미.. 미샤!!!! 옷 좀....”

이불로 서둘러 가려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아...........
이미 저 빅토르란 사람은 알았겠지.......... 지금 이미 날 변태로 보고있을거야.... 이렇게 관계 당한 흔적과 함께 알몸으로...

“옷은 가지고 오라 했으니 곧 있으면 올거야.”
-끄덕-

다행인 것은 양심은 있었는지 몸은 깨끗이 씻겨진 상태였다.

“하준, 몸이 왜 이렇게 약한거야.. 혹시라도 또 어디가 아프거나, 안 좋은 곳이 있으면 이곳으로 꼭 찾아와.”

이게 다 니 놈 때문이잖아!!!

“빅토르, 이 아이가 찾아오면 뭐든 해줘. 그러고보니 하준을 보는게 처음이겠군. 인사해.”
“하준님, 이곳 의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빅토르 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또 시작이다.... 또 내 앞에 허리를 숙이는 부담스러운 행동..

“아, 뭐..... 네.. 저도........”
“하준!.”

하도 얼굴이 따가워 미샤 쪽을 바라보니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왜.........?....”

그래, 반말하라 이거지...?

“아.. 알겠어... 나도... 잘 부탁해..”

뭔 집 안에 의무실까지 있나 생각을 해보니...
‘아.. 얘네들 마피아들이지.. 총을 쏴대며 서로를 위협하는 그런..’

-똑똑-

“들어와.”

드디어 나를 가려줄 옷이 도착한 것이었다.

“보스, 옷을 가지고 왔습니다.”
“............음......?!! 재... 재민?! 한재민!!!!!!!”
“자, 하준. 나는 약속을 지켰어.”

핼쑥해졌지만 분명 한 때 친구였던 한재민 그 놈이었다. 그 놈이 내 옷을 가지고 온 것이었다.

“하준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독방에서 풀어주고 양심은 있었는지 치료는 해준 모양이었다. 곳곳에 붕대가 감겨있었고 얼굴은 밴드 투성이었다.

서둘러 건내받은 옷을 입고 재민을 향해 외쳤다.

“하.. 개새끼... 밥은?! 밥은 먹은거야?.. 설마 아직도 못 먹은건 아니지?!!”
“쯧. 하준, 내가 그렇게 매정한 사람으로 보이나? 난 그대와의 약속을 지켰다고.”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드는건지 양 팔을 꼰 채 삐딱하게 있는 미샤였다.

“하준님, 걱정하실 일 없습니다. 하해와 같으신 보스께서 너그러이 보살펴 주셔서 이젠 모두 괜찮습니다.”
“흠. 재민, 내게 아부따위는 하지 말지. 하준 때문에 참고는 있지만 아직 화가 풀린 것은 아니니까.”

미샤의 말에 곧장 시원찮은 몸으로 허리를 깊이 숙이는 재민.

“보스.. 다시 한 번 사죄드립니다. 차라리 저를 다시...!”
“됐어. 하준 앞에서 뭐하는 거야. 나도 이제 그 일에 관해서는 잊도록 하지. 그러니 너도 그만하도록 해.”
“.....감사드립니다, 보스.. 하준님께도 너무.. 감사드려요...”

재민은 대체 무엇 때문에 나쁜놈 미샤에게 저렇게나 충성을 하는걸까..

“정말 감사합니다, 하준님..”
“........ 니 놈의 존대는 들을 때마다 오글거리고 불편해..”
“.................”

재민을 보았다. 정말로 그는 내게 감사해하고 있었다.

“쳇... 닌 뭐가 그렇게 고마워?”
“무슨..”
“아냐, 내가 미안하지 뭐.. 어쨌든 나 때문에 그렇게 된거니까.”
“...예에...?”

음..? 이게 아닌가....?
갑자기 싸해지는 분위기..

“하준! 미안하다니! 대체 뭐가?!”
“.. 그야 당연히 나 때문에 이렇게 된거고.. 또..”
“취소해.”
“..응..? 뭘...?”
“사과한거 당장 취소하라고! 너는 내 사람이야. 내 사람은! 그 어느 누구에게도 허릴 숙이지 않아!!”

그는 내게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그는 정말 죄책감이란 것은 없이 사는 사람인걸까..?

“예.. 하준님. 그 말씀은 못 들은걸로 하겠습니다.”
“에에?!”
“어서! 취소해.”
“아.. 뭐.... 취소...”

나는 도대체 이 세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면 사과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이곳에서는 사과하는데도 계급이 존재하는 건지...

“그러고보니 재민.”
“예, 보스.”
“학교도 다시 다녀야 할거아냐?”
“아..”

재민은 내 눈치를 보는건지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학교를 다녀와서 그 이후, 오후 타임을 너가 맡도록 해. 오전은 그대로 세르게이가 할 것이니. 하준을 책임지고 돌보라고. 기회를 다시 주는거야.”
“명에 따르겠습니다.”

뭘 돌봐.....?! 나를.......?.... 씨발........

“저.....”
“음? 하준, 할 말 있나?”
“..............”
“망설이지 말고 말해.”
“학교.. 나도 다니고 싶은데..”

한참동안 대답이 돌아오지를 않아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저... 그니까... 음.... 학교는 다니게 해주면 안될까.......? 새 학기도 시작됐고...”
“하준, 언제부터 그렇게 말이 짧아졌지?”
“...............”

반말하는 것에 대해 별 신경 안 쓰는 듯 했지만 지금은 꽤나 신경이 날카로워진 모양이었다.

“필요없어.”
“.....?.......”
“학교 같은거 하준은 다닐 필요 없다고.”
“...... 대체 왜........?! 나 도망 안가요.....! 아니, 못 가요. 당신 무서워서.......! 심지어 그것도 재민이 감시하면 되는거고...”
“안돼.”
“아니... 재민은 되는데 난 왜 안돼요?!!”
“재민과 그대가 같은줄 아나?!”

네.. 맞네요... 납치당해온 주제에... 당신의 부하와 비교를 했네요..
.....

딱히 학교를 다니고 싶은건 아니었다. 납치당해 이곳으로 온 이후, 단 한 번도 학교 생각이 난 적은 없었으니까..
그런데 어쩐지 재민이 학교를 간다니까 나 역시 가고 싶어졌다. 이 집에서 완전한 탈출은 못해도 적어도 학교 가는 것으로 잠시동안 바람 쐬는 겸.. 그렇게 나가고 싶었던 것이었다.

“미샤.. 제발... 나... 꼭 대학 졸업 해야해요.. 졸업해서 돈도 많이 벌고.. 집도 사서 안정되게 정착해 살고 싶어요... 내가 어렸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 미샤도 알잖아요... 내겐 그게 꿈이었는데...”
“돈은 이미 내게 많아. 집도 여기 이렇게 있고.”
“...........”
“이곳에서 나에게 정착하도록 해.그러면 되잖아. 내가 그대의 꿈 실현시켜주지.”
“......... 그게... 아닌데........”
“그대는 더이상 돈 때문에 힘든 일은 하지않아도 돼. 죽을 때까지 이곳에서 풍족하게 부족함없이 그렇게 살면 되는거야. 이 정도면 오히려 그대에겐 행운 아닌가? 대체 뭐가 문제인거야.”
“............”
“그만해. 학교 이야긴 더이상 꺼내지마.”
“...... 알겠어요..... 미안해요.......”

재민은 날 어떻게 보고있을까...
나 너무 바보같겠지....? 이 남자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바로 꼬리 내리는... 병신으로 보이겠지...?

“.... 그래, 착하지.”

미샤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재민, 율리아에게 당장 하준의 방으로 식사를 준비하라고 일러.“
“알겠습니다.”
“아, 하루 내내 잠만 잤으니 거칠지 않은 부드러운 음식들로 내오라해.”
“예, 보스.”

재민이 나가고도 그는 여전히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 아까는 화가나서 그랬어. 난 하준이 내게 반말로 하는것이 더 좋아. 그러니 내게 반말로 하도록 해.”
“....... -끄덕-”
“몸이 많이 안좋으니까 내가 돌아올 때까지 너무 돌아다니지 말고. 일주일 정도 푹 쉬도록 해.”
“어디.. 가...?..”
“미국. 원래 어제 출발했어야 하는데 하준이 너무 아픈 바람에....”
“아..”

그러니까......
일주일 정도 그를 안보고 살아도 된다는 거지............?!
그가 떠나면....... 난 자유....... 가 되는거고... 일주일.... 아무일 없이 평온하게 보낼 수 있다는 얘기......
........
이거 만세 부를 일인데........ 아주 잠깐이지만....... 파티할 만한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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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7-25 19:29 | 조회 : 3,703 목록
작가의 말
귤떡콩떡

한 번 쯤은 소설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ㅎ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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