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2)


“으어… 야… 끅, 이제 5차 가자―! 5차!”
“이형아… 이제 그만 돌아가야지.”
“으잉? 뭐야? …5차가 아니야? 그럼 6차 가자!”


계속되는 이형이의 조름에 몇 번이나 한숨을 쉬었는지, 이제는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심정에 그릇되는 행동을 하면 금방이라도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기 일쑤였다.

또 다시 한숨을 쉬며 이형을 부축해 주었다.
이형이를 부축해 주고 있었기에 남는 손이 없어 광장을 지나가는 김에 시계를 찾아보았다. 새벽 1시. 막차가 끊기고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형이를 돌려보내기에도 뒤늦은 시간이었다. 집에는 누나가 있었기에 무작정 데리고 갈 수도 없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형아. 주변에 있는 모텔이라도 갈까?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아, 이형아….”
“모텔…? 아침에 놀러 가려고?”
“뭐?”


모텔에 묵고 가자는 내 말에 이형이의 표정이 급격히 환해졌다. 놀지 못해 안달인 귀신이라도 들러붙은 듯했다.
하지만 이렇게 순순히 받아들이는 이형이는 좀처럼 볼 수 없었기에 급히 이형이를 끌고 주변에 있는 모텔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꺄하하―! 이러지 말아용― 저는 순결하답니다―! 꺅!”
“무, 무슨 소리야―!”


갑작스러운 이형의 놀림에 나는 당황을 감출 수 없었다. 고작 숙박을 위해 모텔에 가는 중이건만, 이 녀석은 자신을 부축해 주고 있는 이 은혜도 모르고 나를 놀리고 있는 것이었다. 부끄러움에 절로 얼굴에 피가 쏠리는 듯했다.


“너느은, 단아하고 단정하게 생긴 애가― 은근 못하는 게 없더라― 으하하―!”
“그렇군.”


이형이의 말과 동시에 등 뒤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왠지 모를 두려움이 앞섰지만, 어디서 우러나는 용기였던 건지, 선뜻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그가 서 있었다.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나의 연인이었던 그였다. 놀라 부축하고 있던 이형이도 잊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전보다 더욱 냉랭해진 그가 보였다.


“오랜만이군. 어디서 뭘 하고 사나 했더니, 이런 녀석이랑 놀고 있었단 말이지.”


어딘가 모르게 날이 선 듯한 말투였다. 거기다가 내 소중한 친구를 ‘이런 녀석’이라고 칭하는 그의 모습에 절로 인상이 쓰였다.
나는 그에 맞서 똑같이 받아쳐주기로 했다.


“그런 식으로 이형이를 치부하지 마. 그래도 당신보다는 더 좋은 사람이야.”
“핫―”


내 말에 그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봤자 나는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잃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너는 꽤 순정을 아끼던 녀석이니, 벌써 모텔에 갈 정도면 꽤나 깊은 사이까지 갔겠어. 인정해 주지. 그런데 말이야―”


말을 이으면서 그가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나는 이형이를 부축하고 있었기에 쉽게 물러설 수 없었다. 더군다나 더 이상 그에게서 물러선다는 건 작게나마 남아 있는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가온 그가 나의 턱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받쳐 들었다. 억센 힘이었다.


“만족이 되긴 하겠어? 저렇게 비실비실한 녀석을 데리고 말이야.”


그의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미는 것이 느껴졌다. 나와 내 소중한 친구를 이렇게 능멸하는 그가 너무나도 미웠다. 마치 일주일 전의 그 날이 떠오르는 것만 같아 불쾌할 뿐이었다.
분해 그를 지그시 노려보자 그가 조소를 지으며 내 남은 손을 낚아챘다.


“술래잡기는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 너도 내가 그리웠을 거 아니야. 그러니까 이렇게 나와 마주보고 가만히 서 있는 거 아니야?”


그의 말에 더 이상 참고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앞에서 두 번 다시는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꾹 참았다. 그러자 그가 인상을 쓰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내 마음이 가는 대로 한다면, 그것이 바로 그가 원하는 것이 된다.
울면서 그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물론 그를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다. 지금도 가끔 그의 따스한 목소리가 환청으로 들려올 정도니 말이다. 가끔은, 정말 가끔은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를 만나기 전의 나를 되찾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내가 이렇게 서서 당신을 마주하고 있는 건, 당신을 향한 최소한의 배려야.”


최대한 눈물을 꾹 삼키고 말했다. 아니, 오히려 말을 하면 할수록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행동에 오히려 머릿속이 싸늘히 식는 듯했다. 알면 알수록 나에게 실망감만을 안겨다 주는 그였다.
이전의 눈물은 모두 실망감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당신이라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니까, 더 이상 오해하지 않아줬으면 해. 그리고 말이야…”


그를 향해 회심의 미소를 날렸다.


“나는 아니더라도 당신만은 시원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당신도 꽤 구질구질한 구석이 있었구나. 재밌는 구경거리였어.”


최대한 밝게 웃어 보이고는 잠든 이형이를 마저 부축해 그곳에서 벗어났다. 더 이상 그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다.
등 뒤로 그의 시선이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자기야―!”


그러고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헤어져 있었던 일주일 동안, 그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던 것이다. 한 치의 반성도 하지 않은 것이다. 울분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형이에게는 미안하지만 흐느낌을 멈출 수 없었다.


“젠장―!”


그러고 열에 뻗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려움과 후회에 발걸음을 급히 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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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5-19 22:25 | 조회 : 7,974 목록
작가의 말
자낳괴

3~4 이내로 끝날 것 같습니다! 후회 파트를 끝내면 에헿님의 신청글을 정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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