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SIDE.료하

료하는 위기의식을 뒤늦게야 깨닫고 언덕을 내려가기로 다짐했을때, 약간이지만, 아니, 약간은 아닌가..?
아무튼 그가 걱정이 되었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가정하기엔 그와 같이 있었던 하루가 길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왠지...''


불길한 기운은 언제나 선택지를 먼저 주고서 닥쳐온다 했던가...
지금 료하에게 건네진 선택지는 둘이다.
그를 도울것인가, 도망갈 것인가.


료하는 언덕아래로 내려가는 발걸음의 속력을 점점 줄여나갔다.
발에 크나큰 추가 달린것 처럼 움직임이 굼뜨게 된다.
녀석은 지금 이순간에도 생명의 위협을 받고있을텐데ㅡ 뭐, 인간이 아닌것 같은 그녀석이 정말로 죽어버릴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고작 그녀석과 만난건 하루밖에 안된다.
그녀석에 대해 자신이 뭘 알고있나...
녀석은 4차원적이고 엉뚱한 구석이 있으며, 세상물정 모르는주제에 다 산것같은 분위기고...
뻔뻔스럽게도 내집에서 국밥을 10그릇이나 먹고, 비싸보이는 돌멩이를 성큼 건네주었다.
그 돌멩이가 정말 가치가 있는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ㅡ 내 국밥을 맛있게 먹어줄땐 그때도 왠지 모르게 낯간지럽고 화나기도 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료하는 점점 제자리에서 멈추게 된다.
뒤를 돌아 언덕위를 바라본다.
보일리가 없을테지만...


료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정면이 보인다.
언덕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발자국으로 뒤덮혀있다.
이 길로 쭉 내려가면 분명 자신은 살수 있을것이다.
살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는건 괜찮을까ㅡ?


료하는 이런 자신을 예전부터 혐오하고있으면서도 버리지 못했다.
이를 바득 간다.
처음, 이 언덕위로 향하고, 총성을 들었을때도 분명 이랬지..
돌아가자 돌아가야해, 하고 이성이 말려도 료하는 그 이성을 물리치면서까지 정의감과 착한 본성으로 인해 올라갈수 밖에 없었던걸...
올라가서 보게 된 광경은 뭐였나?
피범벅인 언덕위에 광경?
같은 옷을 입은 여러명의 사람들?
아니면, 하얀가운의 남자?
그 끝에서 제일 늦게 알아차렸지만 제일 오랫동안 본 광경은 바로ㅡ 그녀석의 모습이였다.
여유만만하고 두려울게 없다는 태도의 그녀석.
그 모습이 너무나 위풍당당해 보이면서도 정말로 두려울게 없다는 듯이 보여서 녀석이 부러웠다.
온통 붉은 색만 가득했던 언덕위에 유일하게 그녀석의 주위에만은 빨강과는 다른 차분한 파랑색으로 덧칠한것 같은 느낌...
나에겐 없는 두려움을 모르는 그 모습에 발이 이끌리게 되었다.


료하는 깨달았다.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것을...
자신이 이 언덕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녀석을 두고 도망가는것은
ㅡ결코 잘못된 선택이라는걸...


료하는 이제서라도 잘못된 선택을 했던 자신을 책망하며 바로잡으러 언덕위를 다시끔 향했다.
그녀석에게 용기를 얻어, 그녀석처럼, 언젠가 그녀석보다 더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 될 수있게...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이름도 듣지못했는데ㅡ"












료하가 언덕위를 빠르게 올라가고 있을때,
어째선지 언덕위에서 봤던 사람들의 옷과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한명 마주치게 되었다.
료하는 그 순간은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붙잡히게 되었고, 언덕위로 끌려가게 되었다.
끌려가는 와중에도 료하는 ''어차피 올라가는 길이였는데''하고 말을 꺼내려다 삼켰다.
그대로 언덕위로 그림자와 같이 올라가게 되었고,
언덕위로 도착하게 되었을때.
료하는 진심으로,
자신이 한 지금의 선택이 잘한것이라고 생각했다.


언덕위에는, 격전의 흔적이 땅파임과, 곳곳에 흩뿌려진 덜마른 피, 사방에 여러명의 같은옷을 입은 사람들이 쓰러져있는 모습, 그리고, 그 중심에서 피철갑을 한채 간신히 서있는 그녀석의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료하가 그림자와 함께 나타났을때,료하가 제일 먼저 본 것은, 그런 언덕위에 모습과 그의 너무나 당황해하는, 그의 얼굴로 도저히 예상하지 못했던 그런 표정을 보았다.
그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오호라~ 당신답지 않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간이 ''아직'' 있었나요?"


하얀가운을 입은 남자가 료하의 곁으로 다가가, 료하를 거칠게 끌어내며 말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간이 아직 있다?''
그말은 즉, 전에도 그에게 있어서 소중했던 사람이 있었던걸까...
그는 하얀가운의 남자의 말을 듣고 분하다는듯, 짜증난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고, 그의 시선이 료하에게로 다시 향했다.
둘은 눈을 마주쳤다.
지금 이순간,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와서 놀란걸까? 방해라고 생각하는걸까,
아,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수풀사이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을때부터 녀석은 내가 여기 있었던걸 알아차린걸지도 모르겠다.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얀가운의 남자가 그림자에게서 총을 빼앗고, 그 바로 곁에 있는 료하에게로 총구를 향했다.
순간 심장이 철렁하는 기분이 들고 온몸에서 땀이 배어져 나온다. 숨이 덜컥 막히고 호흡 곤란이 올 지경이 되었다.
그럼에도, 총구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하얀가운의 남자가 그녀석을 향해 조잘조잘 말할때도, 계속, 바라본다.
눈을 떼지않고, 두려움을 조금씩 없애서
... 천천히ㅡ


이윽고 때라고 느꼈던 순간이 바로, 하얀가운의 남자가 그녀석에게 나를 살리고 싶으면 따라오라고 말했을 때 였다.
그 순간만큼은 녀석과 내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게 느껴졌다.
제안도 뭣도 아닌 협박이라고.
더 기가 차게도 녀석은 이 헛소리같은 협박을 듣고도 평소에 보여준 위풍당당은 어디 갔는지, 내가 잡혀있다는걸로 고민하고 있다. 그녀석이 고민을 하고 있는것이다.


''너한테 난 대체 뭐인거야? 뭣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려는거야?''


료하는 한가지 그 의문에 사로잡혀, 관자놀이에 총구가 들이밀어져있는 그 상황속에서도 그에게 시선을 달리했다.
그런말 듣지마. 나때문에 그런 생각 하지마.
또 내가, 두려워 할일을 만들지마.


료하는 심호흡을 했다.
살짝씩 움칠움칠 떨면서 몸을 풀어주었다.
자신을 꽉 잡고 있는 사람.
이 사람을 보자면, 덩치가 커보이지만 덩치가 큰 만큼 약점이나 빈곳도 나있는 법이지.
료하는 두 손을 꽉쥐고서ㅡ
무게 중심을 앞으로 쏠렸다.
몸을 앞으로 기운채, 힘을 빼고 있으려니, 역시나 료하를 잡고있던 그림자의 자세가 약간 흩트려졌다.
그림자는 힘없이 축쳐진 료하를 당황하며 일으켜세우려 했을때, 료하는 그 순간 몸에 힘을 팍 주어서 그림자에게 오른발을 걸었다. 그림자는 그 순간 당황하며 균형을 유지하지 못했고, 몸이 옆으로 무너져내리려 한다.
료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서 그림자의 옆을 우위한채 그림자의 옷의 목덜미부분과 상체 옷을 꽉 붙잡고는, "으아아아아아아!" 하고 기합을 우렁차게 내며 가볍고도, 둔탁하고, 깔끔하게 엎어치기에 성공했다.
엎어치기는 대상의 몸무게나 덩치에 따라 데미지가 좌우되곤 한다.
마침 그림자의 덩치는 꽤나 컸다고 할 수 있었으니, 그에 상흥하는 데미지를 받았으리라, 그 예로 엎어치기를 당해, 대자로 바닥에 퍽 내쳐진 그림자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그옆에서 중간에 료하가 그림자에게 발을 건 순간부터 지금까지 믿기 힘들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하얀가운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가운의 남자는 료하에게 밖에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스터.. 화이트..?"


료하는 하얀가운의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가 지금은 료하라는 인간에게 겁을 지레먹고서 총을 들고 있어도 쏠 생각은 안하고 총을 잡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내친 충격으로 들린 쿵소리에 고개를 든 그녀석와 눈을 마주친다.


료하는 자신의 마음과는 정반대의 말을 그를 향해 소리쳤다.


"나도 모르겠다..! 야!! 거기, 식귀놈아! 이런거에 고민할 시간에 네 그 인간같지않은 힘으로 구해주면 덧나냐?!"


...사실은 자신이 그를 구해주기 위해, 도와주기위해 선택했는데도 말이다.


료하의 외침을 들은 그는 멍하니 얼탱이가 나간 표정을 지었다.
료하는 그런 그의 표정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자신이 그에게 도움이 되었을까? 같은 생각에 사로 잡힌채 점점 앞으로 나아갔다.


점점 다가간다.
그녀석의 모습이 가까워져간다.
그녀석의 얼굴이 가까이 보인다.


그의 얼굴을 향해 두손을 뻗고는 ''챱''소리를 내며 찰지게도 그녀석의 두뺨을 때렸다.
있는힘껏 때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팠을텐데, 오히려 내쪽이 더 아파지는건 기분탓일까...


"야!!"


그녀석을 향해 소리 쳤다.
녀석은 그런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건지... 뻔해 보일것 만 같았다.
입을 떼어 뭔가를 말하려 해도 목구멍사이에서 나오는건 진동이 없는 단순한 공기바람.
..이럴땐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와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지금.
그와 만나고 지금의 상황이 되기까지 일들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괜시리 왜 지금 이런걸 보여주는걸까?
료하는 두눈을 푹 감는다.
두 손이 떨려온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성이 되돌아 왔기 때문이다.
두손이 떨리는걸, 바로 느낄수 있는 그의 입장에선 료하가 어떻게 보일까... 겁쟁이로 보일까? 아니면 무모한 인간이라고 보일까? 이내 숨을 푸우 하고 내쉬고 다시 두눈을 떠본다.
료하는 그제야 자신이 그에게 할말을 정한듯 했다.
이내 입술을 달짝여, 그 말을 그에게 건네려 할때ㅡ


「피잉」


신기한 총소리가 들렸다.
료하의 몸이 기울여진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옆구리쪽에 통증이 점점 퍼져간다.
아아ㅡ 뭐야, 넌 이런거에 당했던 거구나.


료하는 그렇게 짧게 생각을 마치며 바닥에 몸을 떨어뜨렸다.
료하가 마지막으로 보인 시야에서는 그의 모습이
괴물로 변모해가는 것이였지만, 그에겐 달랐다.
너무나 슬프게 우는듯한, 까치의 모습이 보인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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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11-02 01:03 | 조회 : 881 목록
작가의 말
Nf엔프

다음부턴 대망의 일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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