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아, 봄이여(삽화)

승리의 미소를 지은 하얀가운을 입은 남자는.
그림자의 손에 구속되어있는 료하를 거칠게 끌어잡고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오호라~ 당신답지 않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간이 ''아직'' 있었나요?"


시끄럽고 귀에 거슬리는 소리로 당황했던 그의 심지를 더욱 불태우게 했다.
그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분명 료하의 ''냄새''는 직전까지 나지않았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더니 이런상황,..
코가 잘못된건가? 하는 마음에 그는 자신의 팔뚝을 코에다 대고 성능테스트를 하듯이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의 팔뚝에선.. 아니,그의 온몸에서 나는 냄새는 하나로 통일되어있었다.
ㅡ무취
냄새가 아예 나지않았다.
그럴리가 없다. 그는 총알에 많은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고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피냄새는 나야하지 않나..? 지금까지 이런 사실도 눈치채지 못할정도로 자신에게 여유가 없었던건가?


생각에 빠질 겨를도 없이 하얀가운을 입은 남자가 하나의 행동을 취했다.
그림자에게서 총을 건네받고, 그를 향해 겨누는 대신, 그림자에게 구속되어있는 료하의 관자놀이를 향해 정확히 겨눴다.
료하는 그 옆에서 안색이 창백한 채로 자신에게 겨눠진 총구를 똑바로 바라보고있었고, 여기까지 료하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것만 같았다.


"기다려!!걘 나랑 상관없어"
"그럴리가 있나요, 그도 그럴게, 당신 꼬라지를 보시면 정말 티가 나거든요"


하얀가운남자의 시선으로 볼때 그는, 동공이 수축되어있는 상태로 료하에게서 눈을 떼지못했다.
그와 료하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는지 남자에게는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지만 이런 상황에 천재일우같은 기회는 두번 다시 없으리라 직감한 남자는 그의 심기를 거스르더라도 인질이 있음을 강조하며 대담하게 나섰다.
남자는 그에게 인질을 풀어주는 대신 얌전히 따라오라고 제안했다.
말이 제안이지, 그의 입장에서, 아니면 료하의 입장에서 볼땐 제안이나 협상보단 선택지를 강요하는 협박에 더 가까웠다.
그는 잠시 고민했다.


확실히 료하는 낯선이였던 자신을 치료해주고 국밥을 먹여주었다.
은혜를 갚겠다고 그동안 떼지 않고 주욱 품속에 넣어놓고있던 정체불명의 봉지까지도 내어주었다.
분명 정을 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몸은 그와 반대되게 행동했다.
그를 기절시킬때에만 해도, 분명 그보다도 편한 방법은 있었다. 가령 죽인다거나, 목을 달아나게 한다는걸로, 하지만 하지 않았다.
약간의 정이 든걸, 약간의 감정을 품은걸, 약간의 시간을 그와 함께 있었다는걸 부정하기 위해서, 빚을 져서 살려두었다는 식으로 자신에게 변명을 했다.
ㅡ그래도 역시 도움을 받았으니까...
이런식으로 소리소문없이 그의 곁에서, 그 따뜻한 봄내음을 품은 집에서, 달아나려고했다.
그는 자신의 숨이 거칠어진걸 느꼈다.
지금 이순간까지도 료하는 실시간으로 죽음의 구렁텅이로 점점 빠지려 하고 있다.
료하의 발치에 그림자가 흔들렸다.
그건 필히 료하가 겁을 먹고 몸을 움칠 떤다는걸로 생각했다.


지금까지 어떤 다른인간과도 더는 접촉하지 않고, 혼자서, 외롭게 살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잠깐 그것을 잊고 누군가와 함께하니 또다시 함께했던 인간에게 위기가 닥쳐왔다.
자신은 다이너마이트이다.
자신과 오래있을수록 그 다이너마이트에는 불씨가 붙어, 점점 불이 그을리고 그을리고 그을러서,
하나의 지점으로 간다.
그리고 그것이 도착한순간...
''펑''
다이너마이트는 폭발한다.
결과, 자신의 곁에는 아무도 없어지게 된다.
그런것이다.
그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를 반복하다가
두눈을 감고 덜컥 뭔가를 내려놓은듯이 몸에 힘을 뺐다.
그는 결국 체념하기로 했ㅡ


"으아아아아아아!!!"


그가 무언가를 놓기직전, 커다란 기합소리가 바로 가까이서 들렸다.
그다음, 쿵! 하고 대지가 약간 들어앉은 느낌이들면서...
하나의 목소리가 그의귓속을 때렸다.


"나도 모르겠다..! 야!! 거기, 식귀놈아! 이런거에 고민할 시간에 네 그 인간같지않은 힘으로 구해주면 덧나냐?!"


그렇게 소리친건... 인질로 붙잡혔던 료하?
료하는 거친숨을 몰아쉬며 손을 털었다.
그 옆에서 하얀가운의 남자는 기겁하듯 총을 얌전히 들지를 못했고,ㅡ
분명 료하를 구속하고 있었던 그림자는 어느새 료하의 발치 바로 아래에 힘없이 대자로 축 늘어져있었다.
대체.. 대체 뭘한거지?


그는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료하가 보인다.
료하가 다가온다.
점점...


"야!!"
''챱''하고 찰진 소리를 내며 료하는 두손으로 그의 양뺨에 손을 댔고 료하와 그의 얼굴사이는 가까워졌다.
그제야 료하의 얼굴이 자세히 보였다.
자신의 보이고 싶지않은 표정까지도 료하에게 보인다.
그의 뺨이 흔들린다. 아니, 자세히는 두뺨에 손을 대고 있는 료하의 두손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분명 일반인이다. 지금 상황에 익숙치않을것이며, 분명 겁을 먹고있었을 것이다.일반인인 그는 국밥만드는걸 좋아하는듯이 보였고, 자신의 요리실력을 자조하면서도 맛있게 먹으면 기분좋아했다.료하는 그가 가지지못한걸 많이 가지고 있었다. 집과 학교와 친구, 그것은 많이 부러웠으면서도 자신과 료하의 존재를 갈라놓는 선이였다.
그 선을... 료하는 쉽게 넘어왔다.
그가 절대 하지못할거라 생각했던걸 너무나 간단히 해버렸다.

그에게 엎어치기를 당했을때가 생각이 났다. 그땐 그가 약간은 별나고 착하다고 생각했었다.
ㅡ엎어치기라니... 사실은 그것보다 더 대단한걸 할 수 있었잖아.


료하는 인질로 붙잡혀, 총구가 겨눠지는 그런 상황에서도 처음엔 당황하고 무섭고 불안했어도. 고민하고 있는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일을 내고야말았다.
그는 그런 료하가 너무나 눈부시게 보였다.
그가 희망에 찬 눈을 한채 료하를 향해 입을 떼려고 할때ㅡ...


「피잉」


피가 솟구쳤다.
피가 그의 입가로 튀었다.
피의 씁쓸한 맛이... 이미 여러번 맛봤을텐데도 너무나 낯설게 느껴졌다.
정면에 형체가 무너져내린다.
중심을 잃고 쓰러진 형체는 분명... 나에게 약간의 희망을 주었던 사람...
믿기 힘들었다. 믿고싶지않았다.
저기에... 저기에 쓰러져있는게,
다른누구도 아닌.. 나 자신도 아닌, 나에게 도움을 준.. 나에게 다가와준.. 나에게, 봄을 준..
ㅡ료하..라고?


머릿속에서 무엇인가 무너져내린다.
이성이 깜빡이며 점멸해간다.
뭔갈 말하려했지만 떼어지지 않는 입술사이로 까드득 소리가 내며 어금니를 들어냈다.


안구가 흡사 ''괴물''의 것이 된 그가 노려보았다.

2
이번 화 신고 2019-11-01 01:39 | 조회 : 890 목록
작가의 말
Nf엔프

삽화추가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