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안돼! 절대 안 돼!

34. 안돼! 절대 안 돼!

집에 있는 하준씨를 데리고 마당으로 나왔다. 하준씨는 자연스럽게 흙이 묻은 내 얼굴을 자신의 손으로 닦아주며 말했다.

"꼴이 왜 그래. 지금 되게 엉망인 거 알아?"

얼굴을 닦아주는 하준씨의 팔을 치우자 갈 곳을 잃은 팔은 어색하게 자신의 목을 긁는다. 아무런 이야기가 오고가지 않아 나 먼저 들어가려고 하자 하준씨가 황급히 입을 연다.

"은우야! 잠시만. 그.. 전에 다친 거 다 나았어."
"그거 참 다행이네요."

그동안 걱정했던 것보다 회복한 하준씨를 보니 마음 한편으로 안심했다. 하준씨는 창가에 기대 우리를 보고 있는 동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여자앤 누구야?"
"여동생이요."
"어쩐지 닮았더라. 성격도.. 얼굴도.."
"그래요? 성격까진 모르겠는데."
"그보다 은우야 나 안 보고 싶었어?"
"뭐, 헤어진 애인을 왜 보고 싶겠어요? 안 보고 싶었죠."
"난 미치도록 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훅 들어오는 하준씨에 심장이 뛰고 시작한다. 하준씨가 내 심장 소리가 들을까 두려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내가 뒷걸음질 치자 하준씨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애써 미소를 띤다.

"...찾아온 진짜 이유가 뭐예요."
"오해 풀려고."
"오해 같은 거 없다고 말했을 텐데."
"아니 있어. 너랑 사귄 이유가 민혁이랑 닮아서.."

하준씨의 죽은 애인 이름이 나와 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찌그렸다. 이 모습을 창문을 통해서 보고 있던 동생이 급하게 집 밖으로 나와 내 팔을 잡는다. 아마 동생 입장에선 우리 둘이 싸우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오빠! 배고프지 않아? 우리 고구마해서 먹을까?"
"...그래. 그러자. 그쪽은 돌아가시고."
"아직 내 말 안 끝.."
"이미 끝난 사인데 서로 나눌 이야기가 있나?"
"에이 오빠, 그러지말고 잘생긴 남자분도 들어오세요. 우리 오빠 요리 끝내주니까 저녁 먹고 가세요."

동생은 내 팔과 하준씨 팔을 잡고 집으로 데리고 간다. 현관에 나와 동생 신발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신발이 있는 건 처음이었다. 신발 중 제일 큰 하준씨 신발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이미 들어왔는데 쫓아내기 힘들다고 판단한 난 거실 한가운데 어색하게 서 있는 하준씨를 지나쳐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을 보며 얼굴에 묻은 흙은 지웠다. 새 수건을 꺼내 얼굴을 닦고 있는 중 또다시 한숨이 나왔다.

"하, 피했는데 다시 만나다니."

- 똑똑

"오빠~ 아직이야? 고구마 다 씻었는데."
"어? 어! 지금 나가!"

밖으로 나가자 아까보단 편하게 소파에 앉아 있는 하준씨와 눈을 마주쳤다. 하준씨는 나와 눈 마주친게 기쁜건지 아이마냥 순수한 웃음을 띄운다.

하준씨의 웃음에 심장이 다시 뛸까, 나는 급히 눈을 딴 곳에 돌리고 저녁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요리에 집중하고 있던 중 하준씨가 나타나 썰고 있는 고구마를 보며 말한다.

"좋은 고구마네."
"...이렇게 불쑥 나타나면."
"두근거려?"
"아뇨. 주먹 날라갑니다."

하준씨는 조용히 내 곁에서 물러나 멀리서 고구마를 썰고 있는 내 모습을 구경한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잘먹겠습니다~!"
"...잘먹겠습니다."

하준씨와 동생 모두 맛있게 먹는 걸 보고있었다. 안 먹고 있는 날 발견한 하준씨는 노릇하게 구워진 고구마전 하나를 집어 내 밥그릇 위에 올려둔다.

"너도 먹어. 요리한 사람이 더 많이 먹어야지."
"...고마워요."

맛있는 저녁을 먹고나자 하준씨는 빈 그릇들을 하나둘씩 치우기 시작해 고무장갑을 낀다. 뭐하냐는 내 말에도 하준씨는 스폰지에 퐁퐁을 묻히며 말한다.

"설거지. 대접해줬으니까 이정도는 내가 해야지."
"손님에게 설거지를 어떻게 시켜요? 당장 벗어요."
"아, 방금 그 말 좀 야했다."
"이하준씨, 장난하지말고.."
"이정도는 하게 허락해줘."
"...빨리 하고 거실로 와요. 과일이라도 깍아줄테까."

고집부리는 하준씨를 뒤로하고 쟁반에 사과 두개와 귤 몇개를 들고 동생 옆에 앉아 사과를 깎고 있었다. 동생은 귤을 먹으며 하준씨와 나의 사이를 물었다.

"아무런 사이도 아냐."
"그럼 나 저 남자 꼬신다? 잘생겼잖아. 딱 내 이상형인데."
"뭐? 안돼! 절대 안 돼! 꼬시기만해봐. 저 남자는..."
"누굴 꼬셔?"

젖은 손을 휴지로 닦으며 내 뒤에 나타난 하준씨 얼굴을 보자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꼬시지말라니. 대체 무슨 말을 할려고 한거야. 강은우. 정신차리자. 그보다 하준씨가 들었을까? 하, 진짜 망했어. 더 물어보기 전에 도망치자.

"은우야?"
"나, 나 먼저 들어가서 쉴게요! 은하, 너! 늦게 자지마!"
"아, 오빠! 내꺼라니 무슨 말..!"

- 쾅!

"은우랑 무슨 일 있었습니까?"
"..딱히.. 아, 과일 드실래요?"
"...네."

한순간에 하준과 은하만 남은 거실에선 은우가 깍아둔 과일을 먹으며 어색하게 TV를 시청한다.

11
이번 화 신고 2019-01-16 16:52 | 조회 : 2,421 목록
작가의 말
하얀 손바닥

방학이 되니까 무기력해지네욬ㅋ 침대 안에서 뒹굴뒹굴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