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저택 곳곳이 고통에 찬 비명소리로 뒤덮였다. 남작 후로 저택을 빠져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정원의 나무 하나가 불에 타 넘어지자 아론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뒷걸음질을 쳤다.

'아, 안에 사람이 있을텐데, 이대로라면... 아, 이미 다... 죽은... 걸까...? 그, 그래도, 도망가면 들킬지도, ...남작은 불에 타버렸어. 나를 묶고있던 족쇄는 풀린건가...? 그럼, 그럼 도망을...'

겁에 찬 눈으로 저택을 바라보던 아론은 어느새 축축해진 눈가를 팔로 문지르고, 뒤로 돌아 뛰었다. 반대편의 숲을 뛰면서도 탄내가 흘러들어왔지만, 아론은 코를 움켜쥐고 입으로 숨을 쉬며 뛰었다. 맨발로 정신없이 뛰다 나뭇가지를 밟아 발바닥에서 뜨끈한 느낌이 들었지만, 돌뿌리에 걸려 앞으로 넘어지기도 했지만, 아론은 다시 일어나 뛰었다. 그때였다.

"잠깐, 아이야!"

누군가의 저를 불러세우려는 목소리에 아론은 멈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하아, 하아, 누, 누구세요...?"

입으로 거친 숨을 뱉던 아론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후드를 깊게 눌러써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 남자는 아마 웃고있었을 것이다. 어깨를 들썩이며 큰소리로 웃는 것이 아닌, 한쪽 입술만 끌어올려 조소를 짓듯이. 남자는 아론의 어깨에 양손을 올리고 말했다.

"꼴이 말이 아니구나, 아이야. 나를 따라가지 않으련? 따스한 잠자리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맛깔스런 식사, 거기다 털을 잔뜩 넣어 부풀린 옷들을 주마."

아론의 눈이 흔들렸다. 후드를 벗은 남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덥수부룩 머리칼과 긴 수염이 지저분할 수도 있었지만, 그 남자, 노인에게는 굉장히 어울렸다.

"정말... 인가요? 제게 정말 잠자리와 식사와 옷을, 주실건가요?"

희망을 가득 안고 물어보는 아론에 노인은 인자하게 미소를 짓더니 답했다.

"물론이란다, 아이야. 자, 이리오련."

노인이 뻗은 손을 잠시 바라본 아론은 행복한 듯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 손에 제 손을 겹쳤다. 마치 할아버지와 손자처럼, 노인과 아론은 다정히 손을 잡고서 숲을 빠져나왔다. 아론은 처음 느끼는 따스한 온정에 가장 행복한 미소를 띄었다. 노인은 그런 아론의 얼굴을 보더니 마찬가지로 웃어주었다. 그 모습은 노인의 시커멓게 불타오르는 속내와는 정반대로, 자상한 느낌을 자아냈다.

세상은 총 3개로 나뉘어져 있다. 아즈란 대륙, 리로딘 대륙, 라오프 대륙, 이 중에서도 아즈란 대륙은 독보적인, 그리고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다. 각 대륙마다 존재하는 오랜 역사의 제국, 그란터스, 시아모도린, 칸. 그 중에서도 아즈란 대륙의 실세인 그란터스 제국이 강력한 마법사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따로 떨어진 세 대륙의 바다 정 중앙에 위치한 세계수, 그리고 그 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아즈란 대륙에는 마력이 가득했고, 제국과 세 왕국에서는 마이터스라는, 선천적으로 마나를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이 종종 있었다. 마나를 주기적으로 주입해 일시적으로 마법을 썼던 수도 그리프에 위치한 마탑의 마법사들은 마나와 마법을 연구해 더욱 강력한 힘을 만들어내기 위해 수십년간 연구를 거듭했고, 그러기 위해선 실험체가 되어줄 수많은 마이터스들이 필요했다.

"어디로 가는건가요?" 아론의 물음에 노인, 알프스는 인자한 미소를 잃지 않으며 말했다.

"나는 마법사란다. 우리는 지금 제국의 수도인 그리프로 가는 중이지. 그곳에 있는 마탑이 나의 집이란다. 그리고 이제부턴 너의 집 또한 그곳이 될 것이란다, 아이야."

알프스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아론은 곧 밀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알프스는 아론이 잠든 것을 확인하더니 소매에서 자그마한 크리스탈을 꺼내들었다.

"마이터스를 확보했다네. 마나량이 어마어마한 것을 보니, 이번에는 정말로 성공작이 나올걸세."

그러자 크리스탈은 잠시 반짝이더니 젊은 남자의 목소리를 전했다.

-오, 그렇습니까? 역시 마탑의 주인이신 알프스 님께서 직접 가시니 금방 해결이 되는군요. 아, 실험체 986번이 전기 실험 도중 미쳐버리는 탓에 폐기 처리했습니다.-

알프스는 눈썹을 살짝 올리더니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눈을 감고있다가 말했다.

"그러한가. 도착할 즈음이면 993번까지 폐기되어있겠구먼. 994번과 995번은?"

크리스탈은 한 번 더 반짝였고, 마찬가지로 아까와 같은 목소리를 전했다.

-994번은 체내온도가 이미 99도에 달했고, 995번은 -27도에 달했습니다. 둘 다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지금은 중지중입니다. 아, 그럼 996번부터는 어떤 실험을...?-

알프스는 끄덕이며 말했다.

"으음. 996번부터 1002번까지 모두 전기로, 994번과 995번의 실험도 멈추지말고 속도를 올려 진행하게. 갈피아가 데려올 1003번과 여기있는 1004번을 끝으로, 실험을 성공시킬 것이니 말이야."

-예, 분부대로.-

그리고 크리스탈은 빛을 잃고 다시 본래의 평범한 보석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든 아론의 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몇십년 만의 실험을 끝내자꾸나, 아이야. 껄껄..."

알프스는 그렇게 웃으며 제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의 얼굴에 가득한 주름은 그의 미소를 더욱 음흉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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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11-04 23:02 | 조회 : 674 목록
작가의 말
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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