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실한 노예들이 왔습니다― 계약금도 저렴하고 충성심도 끝내줍니다!”

팀은 도시 광장의 중심부에 위치한 것을 확인하고는 노예들의 pr을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때문인지 장사를 하고 있던 주변 상인들도 이에 질세라 덩달아 목청을 높이기 시작했다.

“허허, 그쪽 노예들은 질 안 좋기로 소문났던데, 우리 아가들 좀 보고 가소, 시키는 거 이외 쓸데없는 짓은 안합니다!”

팀은 경쟁자를 의식하자,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그가 누구던가, 사람 장사라면 이골이 난, 베테랑이 아니던가. 어깨를 으쓱하며 아랫배에 힘을 가득 싣는다.

“하하하! 동네사람들, 저기 노예들은 생각 없이 밥만 축내는, 가축인가 봅니다. 우리 노예들은 빨래며, 설거지, 청소는 기본으로 시작합니다!”

“이양반이 미쳤나, 그게 생각해야 할 수 있는 일이야? 기본이잖아!”

“어쩌라고, 시키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안한다며!”

경쟁이 치열해 지자, 점점 추잡한 싸움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쾌한 휘슬 소리가 귀를 찌른다. 두꺼운 갑옷의 마찰음과 함께 치안경비대가 도착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경비병들의 투박한 손에 저지당하고 만다. ‘아뿔싸,’ 강한 승부욕이 장사를 망치고 말았다는 생각이 팀의 머리를 지배했다.

‘적당히 했어야하는데.’

경쟁상대 앞에만 서면 이상하리만치, 선을 넘어버리고 마는 팀이었다. 문득 금일 장사는 글렀다는 푸념을 남기며 묵고 있는 여관의 마구간으로 노예들을 이동시킨다.

그가 답답한 마음 탓에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술이나 한잔할까. 좀처럼 풀리지 않는 장사 때문인지, 알코올에 의지하고픈 마음이 앞서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리오난이라는 대제국의 수도 하이켄이라는 도시였다. 팀은 이곳에 들어오기 위해 어려운 지갑사정에도 불구하고 마차와 노예들을 모집해 순번표를 받았다. 그리고 하이켄에 도달하기까지 5일이라는 시간을 허비해야만했다.

그래도 그것뿐이라면 차라리 괜찮았다. 문제는 대기하는 5일 동안 발생한 지출금에 있었다. 마차 대여 값, 마부 고용 값, 그리고 노예들의 치장을 위한 화장품값까지……. 더욱이 어제도 허탕, 오늘도 허탕이지 않은가,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속담은 팀의 상황에 어울렸다.

문득.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자니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미 지난 일들인 것을.

그렇게 한참을 걸었을까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에 짜증이 솟구치기 시작할 무렵 특이한 간판의 술집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꽃동네?”

팀은 가게 주인의 작명센스가 상당히 의심스러웠다. 그래도 지나가는 행인들이 팀처럼 흠칫 거리고, 발걸음을 멈추는 것을 보면, 독특한 매력으로는 성공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괴짜 같은 작명센스와는 달리 가게의 이미지는 상당히 상반되었다.

다른 건물들은 주로 1층의 낮은 높이로 넓은 홀을 선호하는데 비해 꽃동네라는 가계는 2층 규모의 대저택과도 같았다. 흡사 귀족의 저택에서 연회를 맞이하는 분위기랄까, 무엇보다 대부분의 건물들은 원목과 벽돌로 이뤄져 건축되는데, 꽃동네는 1층부터 2층까지 어느 하나 빠짐없이 크리스털로 이루어져 있었다. 솔직히 유흥가의 규모라고 하기에는 통이 컸다. 구린내가 난다고 해야 할까 거물들의 뒷골목, 그런 느낌이 들었다.

팀은 헛기침을 뱉어내며 주위를 살핀다. 이윽고 크리스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자, 먹먹한 탄성이 터졌다.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푸른 머리가 푸석하게 그 빛을 잃었다. 입고 있는 옷에서는 덩이진 먼지들이, 물기가 적어 엉기지 못하고 바스러질 듯 가까스로 매달려 있는 모양새였다. 얼굴에는 연기나 안개 빛처럼 투명하거나 선명하지도 않고 희끄무레한 피부가 시체마냥 힘이 없어, 늘어진 피부 같았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거운 피로가 더해지는 것 같았다. 그나마도 그가 입고 있는 옷이 다른 것들에 비하면 값이 꽤 나가는 것이었다.

한참을 서성이던 팀은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였는지 재빠른 손놀림으로 먼지를 털어냈다. 그 모습에는 왠지 모를 짜증이 섞인 듯 보였다. 이윽고 크리스털을 거울삼아 옷매무세를 다잡는다. 그리고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들어선 팀은 홀로 이어져 손님을 맞이하는 여직원과 조우했다. 황당한 표정으로 서있던 직원은 눈을 껌벅이며 팀을 바라본다. 팀도 한동안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직원을 바라본다.

귀족일까? 지금까지 이렇게 귀티가 흐르는 사람은 만나본적이 없었다.

손님을 맞이하는 그녀의 모습에는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묻어났다. 양복과도 같은 유니폼의 어깨 끝에 달려있는 짙은 레이스는 날개달린 천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손님을 반기는 눈웃음에는 거짓 없는 진실함이 느껴졌다. 만개한 미소와 검은 눈동자에는 흑연이 담겨있어 윤택한 광택이 흐르는 것 같았다.

물론, 예쁜 사람들은 얼마든지 만나봤다. 자신이 공수한 노예들만 해도 넋을 놓고 바라볼 만큼 미모가 출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의와 귀티가 몸에 베인 고급스러운(?) 사람들은 만나본적이 없었다. 귀족에 가깝다던 중상층의 상인들도 이런 인상을 주진 못했다.

그래서일까? 팀은 한동안 주변과 직원의 반응을 살피며 입을 열지 못해 망설였다. 그러다가 문득, 조심스레 포문이 트였다.

“저, 술 한 잔 마시고 싶은데.”

팀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를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어깨를 으쓱하며, 예약하지 않은 손님은 입장할 수 없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내뱉었다.

쏟아져 나오는 짜증을 참을 수 없었던 팀은 피곤한 듯 고개를 뒤로 젖힌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천천히 걸어 나간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린 것을 느낀다. 이윽고 자신을 터치한사람이 누군지 확인하며 놀란다.

붙잡아준 사람이 직원일까 싶었다. 그러나 난생 처음 보는 아리따운 여인이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은 것이었다.

팀은 떨리는 입술을 움직인다.

“혹시 저를 아시나요?”

팀이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싱긋 웃을 뿐 별다른 말없이 팀을 바라봤다.

색다른 이미지의 귀족이 등장했다. 그녀는 유니폼을 입은 직원과는 달리 고급스런 드레스와 액세서리로 자신을 치장했고 옅은 화장과 싱그러운 미소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따금 자신의 어깨에 올라온 손을 확인하며 움찔거린다. 알 수 없는 미소로 웃고 있던 그녀가 어깨에 얹은 손을 팔로 옮겼다.

“호호호, 제가 초청한 손님입니다. 신경 쓰지 말고 일 보세요.”

경박하거나 그렇다고 조소가 섞인 웃음이 아니었다. 기품이 느껴지는 웃음소리랄까, 팀은 문득 그녀가 진짜배기 귀족이 아닐까하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있는 힘껏 팀의 팔을 잡아당긴 그녀가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동하는 순간순간에 비춰지는 화려한 불빛들이 정신없이 아른거린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불빛 사이로 부잣집 양반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를 둘러봐도 자신처럼 저급한 옷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그런 환경이 팀을 움츠려들게 만들었다.

그의 반응을 확인한 그녀가 호호호 웃으며 팔짱을 끼웠다.

“신경 쓰지 마세요, 싸구려 겉치레니까.”

말도 안 돼, 라고 생각한 팀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화려한 불빛과 조명들 탓에 이곳의 온도가 올라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한참을 걸었을까, 그녀가 예약해 두었던 방에 이르렀다.

그녀는 부드럽게 문을 열며 먼저 들어가라는 듯 손짓한다. 팀은 한 발짝씩 조심스레 내딛으며 흐르는 땀을 느낀다. 이윽고 도달한 방안에서는 안락함이 느껴졌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실내에 최적화된 온도, 더욱이 푸른빛이 감도는 조명은 피로에 쌓인 팀의 시야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우와- 끝내주네, 그런데 아가씨는 누구?”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그 답지 않게 반말을 내뱉으며 실례를 범한다. 그러나 팀의 무례한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녀가 널찍한 소파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았다.

“당신, 이쪽 사람 아니죠? 얼마나 됐어요?”

“하하하, 이제 1주일? 된 거 같은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팀과는 달리 그녀의 미간은 조금씩 떨려왔다. 이윽고 그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진다.

“참, 죄송합니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리오난제국의 제 1왕녀 프라이펠 페리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뭘 부탁드린다는 걸까,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발생하자 팀의 머리는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저, 저기 사람 잘못 보신 거 아닙니까? 이렇게 높으신 분이 저를 보려고 이런 가게를……. 예약을 했다니요.”

팀이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에서 가장 강대국이라 불려오는 리오난제국의 제 1왕녀가 보잘 것 없는 노예상인과의 만찬을 위해 자리를 마련했다니. 뭔가 웃지 못 할 상황이지 않은가.

페리나는 팀의 반응을 예상한 듯, 게슴츠레 눈을 뜨며 입 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야릇함이 느껴졌다. 이것이 왕녀의 관능미라는 것인가? 그러나 팀의 기대와는 달리 그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문득 그녀가 꼬았던 다리를 교차시키며 가볍게 박수를 친다.

그 소리에 맞춰 기다렸다는 듯 건장한 청년 서넛이 문을 열며 등장했다.

“다, 당신을 뭐야?”

“지금부터 진실게임을 할거에요, 거짓이라 간주되면, 이 친구들이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어 줄 거니까, 기대하셔도 좋아요”

그녀의 조소 섞인 웃음과 고혹이 서린 눈동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담고 있었다. 그런 마력 영향인지, 다시 한 번 그 미소를 보고 싶다는 쓸데없는 욕망이 팀의 마음을 지배해, 허위 사실을 유포 할 것만 같았다.

아, 안 돼! 팀은 순두부처럼 흔들리는 멘탈을 다잡으려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마치, 금단의 사과를 마주한 아담과 이브가 된 기분이랄까

‘그럼 그녀가 뱀인가?’

팀은 어떻게 되도 상관없는 고민에 빠진 채 애타게 기다리는 왕녀를 배려하지 않는다. 이윽고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페리나는 참아온 울분과 분노를 폭발시키고 만다.

“너 이새x 전생에 사람 죽였지?!”

“예……?”

영문을 알 수 없는 그녀의 분노가 팀의 양심을 날카롭게 찢어낸다. 문득, 자신도 모르는 죄책감과 답답함에 마음이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왜, 왜 이러지? 정신을 잃을 것 같은 아찔한 공포감이 느껴졌다 그와 함께 손과 발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떨려온다. 그만큼 그녀의 살기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사실대로 말한다면, 살려줄 수도 있지.”

결국 살려준다는 보장은 없는 거네? 언제 등장했는지 모를 고문용(?) 의자에 묶여버린 팀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팀의 대견한 마음을 모르는지 준비해둔 연장을 꺼내들었다.

‘아 좋은 삶이었다.’

그렇게 공포와도 같은 시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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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10-28 00:07 | 조회 : 2,982 목록
작가의 말
nic55791011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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