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바람과 물과 빛



길고 긴 점심시간이 시작됐다. 2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생긴 나는 급식소에서 30분 정도 밥을 먹고 지금은 도서관 창가자리에 있다. 책들이 모여 내는, 종이 특유의 냄새를 맡으며 창가를 내려다보았다. 커다란 도서관은 5층 높이에 각 층마다 빽빽이 책을 꽂고 서 있다. 그리고 그 너머로 강을 건너면 유채꽃 밭이 있다.

문득 나는 이곳에 온 목적을 상기하며 A반으로 빌릴 수 있는 30여권의 책을 반납하고 도서관을 나간다. 그리고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분위기.

그 속에서 10분쯤 걷자 숲이 나왔다. 숲을 따라 걸어가며 잠시 눈을 감았다. 이곳에서 쉴 만한곳은 여기뿐이니.

이곳은 ‘올리스 아카데미’이다. 언젠가부터 여기 살고 있었던 나는 이곳의 지리를 속속들히 알고 있다. 정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경계’를 지나 길을 따라가면 기숙사 건물이 대로를 중심으로 양쪽을 매우며 시야를 채운다. 그리고 훈련소와 결투장이 양옆으로 서있는 광장 한가운데에 분수가 있다. 광장을 벗어나 바로 보이는 것은 거대한 학교건물, 그 옆으론 잔잔한 호수와 급식소가 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조금 전 들린 도서관이 위치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아카데미의 중심

잠시 생각을 멈췄다. 솔직히 말하자면, 도서관 뒤 강 너머는 유채꽃 밭과 정원-온실이라고 하던가?-이 있기도 하지만 정원을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는 빌어먹을 귀족들이 살고 있어서이다. 거만한 꼴볼견들.
귀족들이라-확실히 이곳의 신분제도는 넘사벽이다. 일반학생은 개인 기숙사 방에서 생활하지만 강 너머 귀족 거주지에서 사는 그들은 개인의 집이나 저택에서 거주하고 많은 차별대우를 받는다. 학교인 이곳에서 교복과 반이 다르고, 심지어 밥도 다른 공간에서 먹는다.
‘어린이 정부’에서의 수장 조건 또한 귀족.

피곤함에 숲 속에 그냥 누워버렸다. 차가움이 느껴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맑은 물소리...

그들이 이러한 많은 차별대우를 받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귀족들은 모두 마법사들의 혼혈이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이 마법을 다룰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엄청난 차별을 받는다니. 여기 이곳에 나와 같은 자들만 있는 이유, 그리고 귀족들에겐 훨씬 커다란 세계가 있는 이유까지도 설명할 수 있을까.

혼혈 귀족들의 힘은 그들의 조상인 순혈 마법사들에게서 시작된다. 현제 순혈 마법사들은 모두 죽었지만, 마법사들의 힘은 일부 남아 자손들에게 전해지고 나머지는 대기, 땅, 숲등에 스며들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반인의 위에 서게 되었고, 전달받은 마법력을 기초로 해 주변의 마법력을 끌어와 구현할 수 있다. 어짜피 이제 1/2의 사람은 극소수고, 1/4, 1/8 정도만 되도 커다란 대접을 받는다.

그렇지만 귀족 모두가 가진 힘보다 강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나타났다. (여기서 시연은 입꼬리가 올라가는걸 막을 수 없었다.) 힘을 끌어와 사용하는 것이 아닌, 오직 체내의 힘만을 사용하는 자들, 올리스들.

나 또한 그렇다.

흠짓.

누군가가 날 불렀다.

“시연아? 여기서 자면 등도 배기고 추울텐데. 그만 일어나.”

괜찮은데 말이지. 날 부른건 가온이었다.
빛과, 식물의 아이.

“아..어.. 미안. 좀 일찍 와있었는데 피곤해서.”

짧게 변명을 했다. 원래 우린 여기서 만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로 날쌘 바람이 들이닥쳤다.

“율!”
“왜~피곤하다며.”

나는 화나서 외쳤지만 율이는 딴청을 피웠다. 제길.

그렇게 투닥거리며 다시 학교건물을 향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미 점심시간은 얼마 안 남았고 율이는 숙제를 안했다 한다. 그렇게 투닥거리며, 그 와중에 바람과 물이 뒤섞였다는건 그저 사소한 일일 뿐이니까. 가온이는 이정도는 싸움도 아니라는 듯 먼저 지나갔다.

바람과 물과 빛.
이것이 우리가 가진 올리스를 지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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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08-28 20:12 | 조회 : 1,744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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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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