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아도니스

⚠️ 트리거 요소 주의



차가운 밤바다의 바람이 볼을 스치고 지나간다.
불쾌한 추위가 온몸을 굳게 만든다.
하지만 입을 멈출 수는 없다.
말을 멈추면 너는 가차 없이 전화를 내려놓을 것이기에
당신의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더욱 벼랑 끝으로 밀어놓더라도, 입을 멈출 수는 없다.
내겐 그런 당신 한 조각이라도 간절하기에

"날 사랑해요? "
"사랑했었지"
"아쉽다 그 때 죽어버렸어야 했는데"
"그런 말 마, 후회되니까"
"날 죽게 만들지 못한게요? "

전화기 사이로 침묵이 오갔다.
침묵 외엔 그 무엇도 왕래하지 않았지만 그는 분명 긍정했으리라.
그의 작은 긍정이 연쇄적으로 잔물결을 일으킨다.
이윽고 큰 파도가 되어 나를 덮치는 것만 같았다.

눈앞에는 새카만 밤바다가 자리했다.
그가 야기한 허상의 파도보다는 따뜻한 파도가
하얀 신발을 적신다.

마지막을 결심했다.
나의 마지막을
그의 마지막을
나와 그의 마지막을

"내가 괴로운 만큼 형도 괴로웠으면 좋겠어"
" ...."
"형이 혐오스러워요"

가시 돋친 말을 다시 한번 내뱉으려다 문득 눈물이 차올랐다.
정말 이것이 마지막이라면, 단 한 번만이라도 나는 당신에게 나의 진심 전하고 싶다.
그의 앞에 서기만 하면 목구멍에서 막혀 절대 입 밖으로 나올 수 없을 것 같던 말들을 두서 없이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나는 형이 전부였어요, 알잖아요
내 모든게 형에게서 비롯되었단 말이에요
나는 이렇게 형을 사랑하는데.. 형은 왜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눈물을 머금고 뱉어낸 진심이었으나 그것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너무나 차가웠다.

하. 하는 짧은 조소와 함께 그가 무어라 말했다.
그러나 나는 들을 수 없었다.
그가 비웃음을 터트림과 동시에 손에서 힘을 뺐기 때문에 들을 수 없었다.

해변 위에 휴대 전화를 힘없이 떨어뜨리며 느리게 신발을 벗었다.

압도적인 바다의 어둠이 그를 마주 본 남자를 천천히 잠식시킨다.
그러나 마침내 갈 길을 정한 그는 걸음을 망설이지 않았다.

날이 밝자 외딴 해변가에 한 남자가 찾아왔다.
그곳에는 그 남자 외에 타인은 없었다.
다만 다 젖어버린 흰 신발과 검은 화면만을 비추는 휴대전화 하나가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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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2-01-25 01:37 | 조회 : 2,12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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