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무저갱

⚠ 트리거 요소 주의





"날 사랑해?"



온 몸 여기저기 흥건하게 피를 뒤집어쓴 몰골로 너는 물었다.

떨리는 몸처럼 목소리 마저도 볼품없이 갈라져 떨리고 있었다.

처참한 모습으로 주저 앉아 나를 올려다보고 있음에도 올곧은 눈은 소름 끼치는 이채를 띠며 지독하게 나를 쫓았다.



"그만하고 손에 든 거 내려놔"

"사랑하냐고 묻잖아"

"적당히 하라고 했어"



감정의 어딘가가 고장이라도 난 듯.

너는 아무것도 표현해내지 못하는 얼굴로 나를 고요히 쳐다봤다.

언제부턴가 모든 것을 그렇게만 쳐다보는 너는 도무지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사라진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게 느껴졌다.

너 역시도 그렇게 느꼈는지, 이따금 정말로 죽어버린 듯이 고요해진 후에는, 미친 듯이 자기 자신을 해했다.

마치 현실로 돌아오려는 발악인 양, 고장 난 얼굴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손목을 긋던 너를 처음 마주한 날은 정말 나마저도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정혁아"

"....."



오롯이 나만을 바라보며 나만을 부르는 망가진 너의 모습이 기껍다면 미친걸까.

부름에 대답도 없었지만 애초에 답을 기대한 부름은 아니었는지 그저 조용히 일어나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여전히 매끄럽고 날카로운 윤곽을 따라 너의 피가 끈적하게 떨어지는 유리 조각을 쥔 채로

느릿한 발걸음으로 내 앞에 도달한 너는 내 손을 잡아 들어 올려 자신의 목 언저리에 가져다 대었다.



"너는 날 사랑하잖아, 그렇지?"

"......"

"내가 원하는 건 뭐든 해줄 수 있잖아 그렇지"



네가 내뱉는 말들이 간절하고 위태롭게 들리는 것은 비단 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닐 것이다.



"나를 죽여"

"......."

"네가 가장 사랑하는 나를 죽여, 그리고 평생토록 괴로워 해"

"입 다물어"

"네가.... 네가 괴로웠으면 좋겠어..... 나락에 스스로 뛰어들어 영원히 고통받았으면 좋겠어"



가슴을 후벼파는 말들에도 마음과는 반대로 무심하게 유지되는 표정이 원망스러웠다.

이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어 네 마음 또한 갈가리 찢어 놓을 말을 하려는 내 입이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모든 게 내 탓이라 생각하나?"

"..."



이번에는 네 입이 다물려졌다.



"천만에, 모든 건 네 탓이잖아, 안 그래?"



모두 내 탓이다, 너를 마지막까지 죄책감으로 밀어 넣고 이 지경으로 만든 것 조차도



"스스로를 속이려 하지 마. 알고 있잖아,"



자신을 속이고 너를 절벽으로 몰고 있는 것이 나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자살할 용기도 없어서 이딴걸로 손목이나 긋는 머저리 주제에,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허나 용서를 구할 용기조차 없어서 되돌릴 수 없는 지금까지 상황을 몰고 왔다.



"누가 너같이 역겨운 걸 사랑하겠어 연수야, 안 그래?"



끝까지 너를 비겁하게 사랑한 나는 간신히 입꼬리를 끌어올려 너를 비웃었다.



아무런 동요도 없이 가만히 나를 쳐다보던 너는 내가 말을 마치자 고개를 푹 숙였다.

수십초간의 침묵 끝에 들어올려진 너의 얼굴은 마치 너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해사한 표정으로 옅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너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다시 아름다웠던 그때의 너를 보자 정말로 주저앉을 뻔했다.

감격에 가득 차 멍한 채로 움직이지 못 했다. 해서 테라스로 다가가는 너를, 미처 막지 못했다.

창문이 열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너를 더 이상 눈으로 좇을 수 없었다.



''끝내자''

마지막, 창문을 열기 전 나를 돌아 본 너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충격에 굳어진 발을 힘겹게 한 걸음씩 옮겨 네가 사라진 창 앞에 도달 했다. 이윽고 나는 주저앉아 네가 마지막으로 닿은 창의 난간에서 너의 흔적을 찾는 거 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결국 너와 나의 끝은 파멸이었다.

3
이번 화 신고 2021-01-20 02:10 | 조회 : 4,285 목록
작가의 말
식글

· 첫번째 삽화는 지인분께서 그려주셨습니다. · 04-2편은 추후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