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각

은천은 손을 쥔다. 눈을 가리는 헬멧. 이것이 바로 가상현실과의 접촉점이다. 이 헬멧을 쓰면, 그의 부모님이 만들었던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10여 년간 은천을 뒤로하고 열심히 만들어낸 게임. 은천은 이 게임의 발매만 기다렸고, 이 게임이 나오자마자 구매를 했다. 그리고 사정으로 인한 한 달의 공백을 뒤로하고 게임을 시작한다. 귀속을 진동시키는 소리와 서서히 감기는 눈을 다시 뜨니 풀로 뒤덮여있으며 황금색의 밀밭이 나의 눈을 자극시킨다. 거대한 산과 사람과 괴물이 싸워가는 모습. 이게 바로 가상현실, 리베르타스이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비각”

예로부터 좋아했던 순우리말의 비각. 이게 은천의 이름이 된다.

-당신은 이제 게임에 접속하겠습니다. 자유를 만끽해주십시오. 그러면 즐거운 여행을.

이 말을 마친 기계합성음은 나를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시켰다. 이곳이 바로 리베르타스의 세계. 은천은 주위를 둘러보고 몸을 한번 움직여본다. 현실의 체형과 맞게 설정되었기 때문에 위화감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자그마한 흰색 창에 은천의 능력치가 적혀져있다.

이름: 비각 성별: 남
종족: 인간 칭호: 여행의 시작
레벨: 1 직업: -

힘: 10 민첩성: 10 체력: 10
지력: 10 행운: 10 재주: 10

기본적인 능력치. 특이하게 이 게임은 재주라는 능력치가 있는데 이 재주라는 능력치를 올리면 스킬 숙련도가 더욱 빨리 올라간다는 설이 많다. 비각은 이 능력치 창을 닫고 게임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주는 것도 없는 시작. 단순히 옷만 준 것에도 이유가 있다 생각하는 비각이다. 이 평원에 비각 혼자 덩그러니 놓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크릉..”

늑대가 나타났다. 그 사나운 눈매와 침이 흘러내리는 번들거리는 이빨. 무섭다. 비각을 경계하는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낮게 깔리는 그 소리만이 비각을 위협시킬 뿐이다.

“덤벼!”

비각이 소리를 지른다.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주워 늑대에게 던진다. 늑대는 한발 뒤로 물러선 뒤에 비각에게 달려든다. 사나운 목소리를 내지르며 달려오는 그 속도는 비각이 상상한 속도 이상이다. 어두운 그 눈동자는 비각만을 비추어보고 있으며, 날카로운 이빨을 흉포하게 드러내며 덤벼든다. 비각은 끝이 뾰족한 돌 하나를 주워들고 늑대가 달려들기를 기다린다. 늑대가 바닥을 박차고 비각에게 뛰어든다. 비각은 돌을 잡고 벌려진 늑대의 입속으로 찌른다. 입속에서의 피가 흘러내리며, 늑대는 기침을 연발하며 바닥에 떨어졌다. 아무리 겉이 단단하더라도 속이 무른 것은 사실. 이게 바로 현실적인 점이다.

“크릉..”

늑대는 한층 더 낮게 깔아낸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바닥에 흩뿌려진 붉은 피는 양이 엄청나다. 쉽게 말해 과다출혈로 죽은 것이다. 비각은 늑대를 죽이면서 나타난 지팡이를 주웠다.

-공백의 나무를 획득하셨습니다.

이 지팡이는 나무 두 개가 얽혀 뱅글뱅글 돌아 위를 향하는 모습으로 마치 꽈배기를 연상시킨다. 그리고 장식으로 흰색 보석이 이 나무 사이에서 허공에 떠 있는 모습이 참 신기해 보인다. 이제 비각의 게임이 시작되었다. 좋든 싫든, 비각은 이 게임에 빠져들 것이란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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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1-07 18:35 | 조회 : 1,871 목록
작가의 말
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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