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손가락에 (월하 : 달빛 아래)

"형...이건 좀...어색한데..."

얀이 교복치마 끝을 만지작거리며 문을 열고 나왔다. 낯선 교복에 불편한 듯 자꾸만 얼굴이 붉어졌다.

"흐읍...아니야, 예뻐!"

그런 얀을 보고 원우가 흐읍, 하고 숨을 멈췄다가 겨우 쉬었다. 젠장, 너무 예쁘다.

"우리 얀이 예쁜 거 봐..."
"아으, 부끄러워..."


-


사귄지 1년째, 여전히 파릇파릇한 두 사람은 오늘 1주년을 맞아 서로의 판타지를 실현시켜주기로 했다. 서로가 써낸 코스튬을 입어주는 것.

얀은 커플티라고 썼다가, 약했나 싶어 정장 풀세트를 써냈다.

원우는 얀의 소원을 보고서는 다음날 데이트 때 정장 풀 착용은 물론이고, 내렸던 앞머리를 까고 썬글라스까지 준비해 입고갔다.

원우가 차를 끌고나와 얀의 출판사 앞에서 기다렸다. 얀은 출판사에서 최종 원고를 확인한 뒤, 나오다가 헉 했다.

"혀..형?"
"얼른 타!"

얀은 자꾸봐도 신기한지 한번 보고, 두번 봤다.
잘생긴 얼굴 닳을 것도 아닌데, 슬쩍슬쩍 훔쳐보는 얀이 귀여워 원우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그대로 키스했다.


-


그리고 오늘은 얀이 원우의 소원을 들어줄 차례였다.

원우는 이날을 위해 후보군 몇 개를 두고 머리 빠져라 고민했다.

예를 들자면, 메이드복이라던가 간호사복이라던가 정장치마라던가...

원우는 결국 전부 써내서 얀이 선택하게 했다.
얀은 다 싫다고 울상짓다가, 결국 제일 무난한 교복을 선택했다.

교복 바지일 줄 알았건만, 원우가 기다렸다는 듯이 꺼낸건 교복 치마였다. 얀이 이런 말은 없었다면서 무효를 외쳤지만, 원우는 능글맞게 웃으며,

"나는 누나밖에 없어서..."

라고 답했다.

씩씩거리던 얀은 원우가 뜻을 굽히지 않자, 그럼 밖에 나가지 않는 조건으로 교복치마를 입게 되었다.


-


아으으...대체 이거 누가 먼저 시작했지?!!! 낯뜨거운 치마에 얀의 얼굴이 새빨개진다.

"우리 얀이 너무 예뻐...누가 훔쳐가면 어떡해?"
"놀리지 마..."

부끄러워 자꾸만 손을 가리자, 원우가 픽-하고 웃었다.

이리와.

원우의 손짓에 얀이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원우에게 다가갔다. 원우가 그대로 얀의 허리를 감싸안고, 입을 맞춰왔다. 얀이 흐읍-하며 숨을 멈추자, 다시 입을 떼고는 숨쉬어. 하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치마를 입은 얀의 다리 밑으로 원우의 손가락이 슬금슬금 들어왔다. 얀이 간지럽다며 키스를 떼어내자, 더 집요하게 원우가 얀의 입술을 찾았다.

"아, 형!!"
"원래 이런 분위기에는 침대지, 그치?"



---


"저...하건씨...!"
"무슨 일이예요?"
"저 좀 도와주세요!!"


이제 만난지 2년정도 됐나, 손가락으로 달력을 짚어가며 세던 원우가 충격을 받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주일 뒤가 원우와 얀의 2주년이었다.


미쳤어, 원우는 혼자 중얼거리며 다급하게 하건 찾아갔다.


"으음...2주년 기념 선물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지 뭐예요..."

아휴, 원우의 한숨이 커졌다.


"역시, 반지죠."
"반지요?"
"애인 사이즈는 알아요?"
"으음...아니요..."

몰래 해주려면 조용히 사이즈를 재야하는데, 방법이 없었다.


"애인 손가락이 굵은 편이예요?"
"통통한 편이예요. 완전 귀여워요."


그 손으로 자신의 페니스를 어루만질 때면 더, 속으로 그 말을 삼켰다.


"사이즈 알아내서 쥬얼리샵 가면 돼요."
"저 혼자요?"
"그럼 누구랑 가려고요?"
"하건 씨이...같이 가요..."
"죄송하지만 바빠요."
"고기!!"
"무슨 고기요?"
"당연히 돼지고기죠"


꺼져요, 하건 씨가 나를 밀어내려 하기에 급하게 붙잡았다.


"소고기!! 투플로!!"
"아잇, 원우 씨. 뭘 친구끼리. 소고기면 돼요."


으으, 얄미워...하건 씨는 친해질수록 점점 얄미워졌다. 우으, 그치만! 2주년을 위해서!


-

"히익, 관장님...! 안녕하세요..."

다음 날 아침, 바삐 출근하는 원우와 졸린 눈 비비며 같이 나온 얀은 도서관 관장님과 마주쳤다.

"삼촌!"
"오, 역시 너 맞네. 멀리서 보고 긴가민가 했지. 둘이 아는 사이냐?"
"헤헤, 네."
"안..안녕하세요..."

삼촌과 조카였어....? 아니 그것보다, 그럼 금지구역 열쇠를 가진건 삼촌 빽인건가...?

혼자 깊은 상심에 빠진 원우와 달리 얀은 해맑게 웃으며 삼촌과 대화했다.

"잘가요, 삼촌!"
"다음에 집에 놀러와."
"네!"


뭡니까, 삼촌 입니까...

입을 삐죽거리며 원우가 심술부렸다.

"뭐야ㅋㅋㅋ 그거 설마 질투하는 거야?"
"아닙니다."
"아 정말...."

얀이 주변을 둘러보다, 발꿈치를 들고 원우의 볼에 뽀뽀했다.

"화 풀어요, 달링"


뭐, 물론 그 뒤로 한참동안 화장실에서 야시시한 소리가 흘러나왔다는 건...비밀이다.



-

"어서오세요."
"커플링 맞추려고 하는데요. 8호 하나, 9호 하나요."
"어떤 스타일로...?"
"심플한거요. 글자 박힌 거나 작은 보석만 박혀있는 걸로."

하건이 익숙하다는 듯 주문하자 반지 한 판이 나왔다. 하건이 날카로운 눈으로 두세개 골라내자, 원우가 옆에서 감탄의 눈빛을 보냈다.

"이거 그나마 나은 것 같네요."
"으음, 저는 가운데 거요!"

파란색 보석이 작게 박혀있고, 옆에는 필기체로 달링이라 적혀있는 반지.

"나름 안목이 있긴 하네요."
"칭찬으로 들을게요."


원우가 작은 상자를 손에 소중하다는 듯 꼭 쥐고는 가게를 나왔다.


"오늘 감사했어요, 하건씨!"
"소고기는 다음에 사고, 꽃은 샀어요?"
"꽃이요?"
"이왕이면 장미나, 안개꽃 같이 꽃말 예쁜 걸로 사세요."
"걱정말아요"

자신만만한 원우가 괜스레 불안해지는 건 느낌탓일거야, 분명히.


-

"케이크도 샀고, 꽃도 샀고, 반지도 샀고. 음, 이 정도면 되겠지?"

2주년의 밤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얼른 얀의 반응이 보고싶어, 도서관 일을 열심히 끝냈다.

"얀아!!!"

박차고 들어간 집에 얀은 없었다. 칫, 또 출판사 간건가....


꽃병을 준비해 꽃을 꽂고, 케이트를 세팅해놓고 기다렸다.


어느새 시계는 저녁8시에 다다랐다.


"왜...이렇게 안올까..."

시무룩한 얼굴로 시계만 바라보던 원우는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를 듣자 반색하며 현관문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다녀왔...어?"
"얀아!"

당연히 아무도 없을 줄 알았던 자신의 집에 원우가 와있자, 얀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형이 여긴..."
"우리 2주년! 파티!!"


아....그거, 내일인데...


난감한 표정을 하던 얀은 그냥 웃었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하루쯤이야.


"와아, 이거 다 형이 한거야?"


꽃에 케이크에... 예쁘게 장식된 식탁을 바라보다가, 푸흐-하고 웃었다.


"응응!"


칭찬해달라는 강아지 같은 모습에, 웃음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뭐야, 왜 웃어. 마음에 안들어?"
"아니- 완전 마음에 들어!


그날 밤, 얀의 집에서 조촐하게 시작된 파티는 야릇한 소리와 함께 끝이 났다.


-

다음날-

"얀아."
"우응..."
"손 봐"

얀이 졸린 눈을 비비다, 손가락에 끼워진 이상한 물체에 눈을 크게 떴다.


"이..이건.."
"커플링. 이제 진짜 아무데도 못가는 거야. 내가 찜했어."
"그게 뭐야-"

얀의 눈에 살짝 눈물이 맺혔다. 원우가 그걸 알아채고, 얀을 끌어안았다.

"사랑해, 얀"
"나도, 나도...형"

푸르른 하늘이 맑게 비치고,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던...어느 날의 오전.

서로의 손을 맞잡고 다시 새근거리는 둘의 손에는 자그마한 반지가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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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2-11 18:29 | 조회 : 1,718 목록
작가의 말
뀨루욱

이걸로 해피엔딩인 완결이 되었네요. 월하님 수고 많으셨고 사랑해요. 읽어주신 독자님들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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