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루나시아 스쿨 입학

2장-루나시아 스쿨 입학

“사랑스러워? 지금 말 다했냐?”
“아니. 다 안했는데.”

처음 눈웃음 그대로 화사하게 웃는 엘피스였지만 누가 봐도 아름답다 칭할 그 장면에 시란은 헛구역질을 했다. 물론 가볍게 우웩 정도였지만 그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건지 하얀 미간을 주름잡으며 엘피스가 시란에게 다가왔다. 커다란 접시를 손에 들고 다가오는 그가 무서웠던건지 멈칫거리며 뒤로 물러서는 시란의 모습이 딱 주인한테 혼나는 강아지였다.


“이거 먹어봐.”

기껏 분위기 잡고 한다는 말이 손에 들린 음식을 먹으라는 거라니. 뭘 저런거 갖고 쪼나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에게는. 적어도 시란에게 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걸 꼽으라면 엘피스가 손수 만든 음식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그에게만 해당되지 않았고 엘피스의 음식을 한번이라도 먹어본 사람들 모두가 할 선택이었다.

코 앞까지 들이밀어진 음식에서는 침샘을 자극하는 냄새가 났다. 그렇지만 그것에 속아 미각을 잃었던 시종의 수가 한둘이 아니었다.

시란 또한 무수히 많이 그 음식들을 먹어보았으며 맛 볼때마다 새로운 맛의 경지에 눈을 뜨고 하루종일 위장부터 대장까지 완벽하게 비워내는 작업을 했다. 그런 짓을 다시는 하지 않으리 다짐하고 다짐하면서 또다시 그는 자신의 테이머에게 속아 그 끔찍한 것을 입에 넣었다.

“절대 안 먹어. 너나 먹지 왜 자꾸 애먼 사람들을 괴롭혀?”
“괴롭힌다니 말이 심하구나, 시란.”
“이럴 때만 또 공작흉내를 내지.”
“흉내가 아니라 진짜 공작이다. 쯧. 어렸을때부터 너무 오냐오냐 키웠어. 그러니까 인성이 이모양이지.”

어이가 없어진 시란은 입을 벌리고 황당하다는 듯 허 하며 실소만 뱉었다.

“야. 내가 정말 유치해보일까봐 말 안하려고 그랬는데 너 오늘 내가 무슨일을 겪었는지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알면 진작에 돗자리를 깔았겠지.”

역시 말로는 엘피스나 휘스트 둘 모두에게 처참히 밟히는 시란이었다.

시란은 꿈틀거리는 제 이마 혈관을 누르며 말했다.

“아침부터 누굴 죽이려고 작정을 했나 온몸의 수분을 말려버릴것 같은 그 땡볕에서 장장 4시간동안. 그것도 앉아있을 그늘 하나 없이 짜증나는 인간들 사이에 섞여서 거지같은 시선을 받고있는 것 자체만으로 당장 때려치고 싶었는데 말야.

그나마 옆에 있는 휘스트자식은 제 주인 성적 하나 보겠다고 말 한마디 없이 서있기만 하고 말 좀 하나 싶으면 시비나 털고. 응?”

정말 어지간히도 화가 났었나 보다. 엘피스는 고생했는데 조금 기분을 풀어줄까 생각하며 그랬냐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휘스트와 시녀는 엘피스의 반응에 더욱 울컥했는지 이제는 고래고래 소리까지 질러대는 시란이 그렇게 짜증날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있었다.

“거기까지는 좋아. 좋다구. 근데 내가 진짜 못 참겠는건! 시장에서 그 우글대는 인간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고 있을 때. 내 몸을 더듬었던 그 망할 남색가 새끼!!”
“남색가?”

울분을 토하는 그에 정말이냐는 눈으로 휘스트를 쳐다보니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남색가라니. 성 취향을 존중하기는 한다만. 대낮에 그것도 사람 많은 시장에서 대놓고 그런 짓을 한다고?”

평소 여자와 남자를 잘 구별 짓지 않던. 정확히는 무관심하던 엘피스도 그 상황에 대해서는 난해를 표했다.

그 잘생긴 얼굴 때문인지 평소에 이상하게도 남색가들의 관심을 받던 시란이었다. 외모라면 같이 생활하는 휘스트나 엘피스 또한 만만치 않았지만 휘스트는 특유의 냉기를 풀풀 풍기고 있기 때문에 쉽사리 다가가기가 어려운 상대였다.

일명 ‘6무’의 소유자. 무관심, 무표정, 무감정, 무정함, 무심함, 무례함을 모두 갖춘 사내가 바로 휘스트였다.

다음으로, 외모로만 따지자면 남색가들이 좋아할 법한 외모에 가장 근접한 사람은 엘피스였다. 하지만 그는 절대 밖에 돌아다니지 않았고 공작으로써 그 흔한 무도회나 파티장에도 제대로 얼굴을 비친 적이 없었다. 공작이었지만 고위층 귀족들도 그만큼 보기 힘든 사람이 엘피스인데 숫자도 얼마 없는 남색가들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세상에 널려있는 수다쟁이 귀족들도 테르비에스 공작가의 가디언이 칸 급 드래곤 한 마리라는 공공연한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 널려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동성을 선호하는 사람들보다는 많지 않은가.

혹시 방금 이야기에서 문제점을 찾지는 못했는가. 테르비에스 공작가 소유의 가디언은 휘스트 그리고 시란으로 총 둘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샤이아 제국의 티메리스 황제마저 모르고 있는 정보였다. 엘피스가 사교계에 돌아다니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그 때문이었다.

왜인지 아는 사람은 테르비에스 공작가의 사람들과 엘피스가 성을 빌렸던 세란 가문의 가주. 브란델 자작 뿐이었다.

그렇기에 제일 많이 밖을 나돌아다니는 시란이 그 타겟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어떻게 하긴. 묻어버려야지 그런 자식은.”
“...시란. 매번 얘기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건 자제해. 네 뒤처리가 힘든건 아니지만..”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말하는 시란을 보며 엘피스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화난 것도, 슬퍼하는 것도, 두려워 하는 것도 아닌 그저 가라앉은 눈동자였다. 시란은 그런 엘피스의 반응에 머리에 뒷짐을 지고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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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12-20 21:01 | 조회 : 438 목록
작가의 말
nic12326111

드디어 2장입니다^^)사실 세이브 원고가 많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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