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Intro.











[드라고니아 남쪽 오버랩터 거주 지역]





한적한 분위기의 마을. 얼기설기 동물의 가죽을 꿰어 만든 천막들이 드문드문 떨어져있고, 그 집집마다 하얀 연기가 작은 아기 구름처럼 흘러나오는 곳. 발목 언저리까지 자란 풀밭과 그 속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목소리. 그 건너 논과 밭에서 거름통을 지고 일하다 옆집 할머니가 들고 나온 새참을 보고 환한 미소를 짓는 어른들.

눈을 감고 그녀는 생각한다. 이보다 더 평화로운 곳이 대륙 어디에 있겠느냐고...

그래. 이런 것을 보고 평화라고 하는 것이다. ‘크라이슬러 제국’이니 뭐니 하는 것의 억지스러운 안정보다도 이런 작은 소소함이 평화라고 불려야할 것이었다.


‘물론 그게 제 마음대로 될 리는 없겠지만요. 당신께서 직접 의지를 내렸고, 그 의지가 바람의 수호자 이바스노톤의 가슴에도 자리 잡고 있으니...’


여자의 얼굴에 일순간 쓴웃음이 맴돌다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마음을 비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시인이자 기록가이자 대륙의 서기 그 자체이다. 아니, 대륙의 역사이다. 과거와 미래의 흐름과 그 운명을 알 수는 있어도 그것을 거슬러 원하는 이를 이루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지금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건 적어도 지금 부르게 될 노래가 아니니까 말이죠...”


푸른빛의 용사가 억압을 탄압하기 위한 기록을 구하러 자신에게 왔을 때, 그 때의 자신이 그에게 불러줄 노래.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언제나 자신이 기억하는 일은 그대로 이루어졌으니까.

한숨을 깊게 내쉬고 난 후 여자는 옆에 내려놓았던 하프를 튕기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바람이 불지 않았건만, 풀잎은 제 몸을 흔들었고, 물이 흐르지 않았건만, 그녀가 앉아있는 나무줄기에선 빠르고 역동적인 수액의 흐름소리가 귓가로 스며들었다. 그 모습들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녀의 얼굴에 차차 미소가 번져갈 때쯤이었다.


“초아! 이거 뭐야? 이거 나 줄 거야?”


“코... 코돈! 그거 이리 줘! 그거 엘레인 님 드릴 꽃목걸이란 말이야!”


“치사해! 나는 이런 거 왜 안 만들어 주냐! 이 도라지야!”


“도... 도라지 아냐! 산삼이라고! 이 바보 쥐야!”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리에 여자는 손가락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금빛의 눈동자가 찬란한 정오의 햇살을 받고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엘레인 님. 저거 멈춰주시면 안될까요?”


“초아는 코돈이 자기 좋아하는 줄도 모르고...”


어느새 그녀의 앞까지 다가와, 그 나이 또래들은 절대로 낼 수 없을 법한 자조 섞인 한숨을 픽 뱉어내는 꼬마들. 분명 저기에서 서로의 마음도 모른 채 사랑싸움이나 하고 있는 동급생들을 보기에 배알이 꼴려 그런 것임에 분명했다. 배알이 꼴린다는 게 무슨 표현일지 알기나 할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 아이들을 향해 웃어 보이며 여자는 두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코돈도 초아가 자기를 좋아하고 있다는 건 까맣게 모르고 있을 걸?”


“어휴. 저 답답이들을 어찌해야 좋을꼬...”


검은 머리칼을 가진 꼬마아이가 한숨을 찍 내뱉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치 어른들이 아이들의 풋풋한 사랑놀이에 피식 웃고는 하는 행동 마냥 말이다.
그런 아이를 보고 여자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 아이가 20살이 될 때쯤... 그러니까 정말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나이의 어른이 되었을 때는 고개를 저을만한 아이들의 사랑놀이 따위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이 아이들은 아마 리케이 대륙의 역사상 가장 큰 혼란을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대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전란의 혼돈을...

애써 미소를 유지하면서 여자는 아이들에게 양손을 내밀었다.


“뭐야? 잡으라고?”


“같이 가시는 거예요?”


투덜거리는 이 아이의 이름은 칼. 올망졸망한 눈을 뜬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이름은 도라. 이 아이들은 훗날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알고 있을까? 어떤 위치에서 친구들을, 서로를 재회하게 될지 알고 있을까?


“도라지가 쥐를 넝쿨로 묶기 전에 빨리 가봐야 하지 않겠니?”


“다시 말하지만, 초아는 산삼 오버랩터고, 코돈은 기니피그 오버랩터라고요... 방금 말은 둘 모두에게 실례에요...”


“음... 애칭이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몰라. 가는 길에 노래나 불러줘. 전에 불러준다고 해놓고 두 달 동안이나 여기 안 왔었잖아.”


칼이 툴툴거리면서도 그녀의 손을 꽉 잡고 말했다. 겉으로는 아무 말도 안하면서 속으로는 엄청나게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끄아아아아아! 살려줘! 기니피그 살려!”


“시끄러워! 쥐 주제에!”


“도라지가 기니피그 잡는다! 아이구!”


저 멀리에서는 이미 식물 뿌리들이 넘실대고 있었고, 간간히 새끼 돼지가 ‘꾹꾹’거리는 애처로운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온 근 1000여년의 세월동안 아이들에 대해서 느낀 것은 저렇게 친구들끼리 싸우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 아이들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정도라는 것을 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말이다.


“그럼 칼 말대로 가면서 노래를 불러줄까? 어떻게 생각하니 도라?”


“좋아요! 엘레인 님이 불러주시는 노래는 정말 듣기 좋아요!”


“어차피 불러줄 생각이잖아. 빨리 불러줘.”


아이들의 채근에 여자의 입이 호선을 그렸고, 이윽고 열렸다. 다시 풀잎이 살랑거리고, 나무들은 기쁨에 젖어 더 활짝 잎을 뽐낸다. 감미로운 하프 소리. 그리고...











검으로 세계를 가른 이와, 대륙을 빚은 거인.
호탕한 노익장의 웃음에, 거미는 실을 잦네.



어두운 하늘의 눈물 삼아, 별빛이 내린 자리.
칠흑의 장막이 걷어지고, 아침이 밝아오네.



꿈결에 흐르는 강물소리, 그 너머 앉은 소녀.
소녀의 노래가 퍼져나가 이 단잠 깨우리라.


-리케이 8대 대예언 1수 Genesis








...이야기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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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5-12-10 00:49 | 조회 : 1,77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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