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대부터였던가 챙겨봤던 이영싫이 끝나고 간만에 생각이 나서 몇 주간 정주행을 했습니다. 시기가 시기인 관계로 하루면 끝낼 정주행을 꽤 끌었습니다.
연재 시에는 몰랐는데 책으로 나왔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한두 화당 하나 꼴로 나오는 사회비판과 풍자 속에서도 전체적인 이야기를 끌어가는 게 상당히 노련했습니다. 하지만 알아차리는 이 하나 없더군요. 개성 있고 당위성을 부여하는 캐릭터의 설정에 덕들이 붙으니 작가의 의도가 댓글에서는 사라져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이걸 덕들의 잘못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표면적 수용 이외에는 전문가의 해석적 수용을 받아들이게 해서 비판적 수용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작금의 교육 제도 때문이지요.하지만 표면적 수용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닌데다, 이런 류의 작품들은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렙터와 혜나는 주인공 나가보다 오히려 더 스토리에 큰 비중이 있습니다.
혜나는 작가님께서 언급하셨듯이 너무 사기캐라 (나가의 존재감이 저히되기 때문인지) 잘 등장하지는 않습니다만, 굳이 물질적인 지원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나가에게 나가의 가족이나 친구들보다 더 자주 진정제가 되어 줍니다. 사사와 오수 그리고 헤이즈는 나가에게 여러 지원을 해 주지만 나가가 악당이 되지 않게 해 주는, 그래서 작품의 내면적 갈등을 해소하는 데 정말 큰 도움을 주는 인물이 바로 혜나입니다.
랩터는 스토리의 표면적 갈등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며, 갈등임과 동시에 해결책이 되기도 하는 인물입니다. 딱히 나가와 큰 갈등이 있거나 큰 조력자가 되는 인물은 아니지만, 세계관이 담고 있는 불합리의 희생자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어찌 보면 이 세계관에서의 진정한 히어로이기도 합니다. 혜나는 주인공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위치에 있지만, 랩터는 중반까지의 이영싫, 즉 백모래와의 갈등이 중심 갈등인 이영싫에서는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죠. 뭐 대충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두 캐릭터를 골랐습니다.
여담 몇 가지 하자면, 랩터는 의외로 현실 여학생들이 자주 하는 앞머리를 하고 있어서 그리기 편했는데 혜나는 점차 남자다워져서 고생했습니다.
저는 하체를 정말 못 그리며, 그쯤 되니 피곤했습니다(치마로 그려놓고 싶었는데)
혜나 옷에 또 《살육의 천사》 주인공인 레이 옷을 입혀놨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전 현재 살천 탈덕 상태고, 혜나의 옷은 이영싫 209회(204. 아무것도 없다) 편에서 혜나가 실제로 입고 있는 옷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