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들은 너무 잘 그리시는데... 저는 좀 그렇긴 하네요. 더구나 만화도 내팽겨치고(?)그리는 거라 죄책감도 좀 듭니다.
어쨋든 이렇게 무채색에 비율도 다 부숴버리고 포즈도 완전 초보자나 그릴 법한 정좌 포즈를 했음에도 이렇게 올리는 건, 그나마 숨은 뜻이 있어서입니다.
쉿. 잠깐만요. 먼저 생각을 해 보시죠. 과연 이 사람은, 난잡하고 어두운 배경의 이 그림 속에 무엇을 넣어 놓았을까. 뭘 말하고 싶은 걸까.
여러분들은 아마 학교에서, 또 많은 자격증들에서, 그리고 그림을 그리거나 즐기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해석들을 많이 해 보셨을 거예요. 하지만 여러분들은 이렇게 대놓고 "난 이 그림을 그냥 즐기라고 만든 게 아닌데? 해석해. 그게 네가 해야 할 일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 쉽게 접해보지 못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왜 우리는 항상 내면만을 보는가. 사람을 볼 때는 내면보다는 외면을 그토록 중시하면서 왜 그림과 글 속에는 항상 내면적으로 품고 있는 것만을 보는가 말이죠. 우리는 왜 그러한 속뜻만을 배우는 걸까요? 작가가 그 안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빗대서 해서? 그럼 작가는 항상 그렇게 어려운 말들만 하는 사람일까요? 글도, 그림도, 항상 그렇게 어려운 속뜻만을 찾아가야 할까요? 아니예요. 작가라고 불릴 만큼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은 문장을 아름답고, 간결하게 쓰면서도 원하는 것들을 모두 비유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죠. 화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사실 저는 그림에는 그다지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그림이 화려하면서도 화사하고 실물을 잘 표현하면서도 뜻까지 표현할 수 있죠. 그렇기에 저는 "작품을 즐길 때는 먼저 외형을 즐기고, 그 다음에야 속뜻을 찾아라"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사람을 볼 때 그러하듯. 무조건적인 속질만을 보지 말고 즐겨보는 거죠. 물론 이건 저처럼 그림으로의 표현력이 많이 부족한 사람으로서는 패널티가 되겠지만요.
자, 여기까지 읽으시면서, 생각이 좀 되셧나요? 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진짜 남자는 '우리가 보는 사람의 모습'. 거울 속의 남자는 '남자의 내면'을 뜻하고 있습니다.
먼저 주인공을 남자로 설정한 이유부터 설명드리자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런 걸 배우죠. "시적 감성을 잘 드러내기 위해 여성 화자를 내세움"이라는 걸요. 성차별...요새 트위터를 많이 하다 보니까 이런 것까지 성차별로 들어오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성 고정관념이죠. 이걸 이용해서 우리는 더 필요한 점을 부각할 수 있고요. 마찬가지로 저는 '남자'가 가지고 있는 '굳건함'을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아래를 보시죠.
맨 먼저 남자는 정장을 입고 있죠. 하지만 거울 속의 남자는, 대충 그린 것 같을 정도로 후줄근한 옷을 입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보이는 남자는 어쩌면 딱딱하게 보일 정도로 정도를 지키고, 말끔하며, 단정합니다. 그렇지만 남자가 보는-그러니까 남자 자신은, 놀라울 정도로 헐렁하며 제대로 갖춰 입지도 않았습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얼굴형과 몸의 비율도, 정장 입은 남자는 뾰족하고 배가 덜 나온 반면에, 거울 속의 남자는 배도나오고 비율도 엉망이며... 손을 쥐고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손을 쥐는 이유는 뭔가를 잡고 싶어서, 가지고 싶어서라고 하죠. 이 모든 것들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남자의 '열등감'입니다. 이것은 표정에서 드러나오는 우울감이나 절망감에서 드러나는데, 바로 아래에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아시겠지만 남자의 표정은 극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물론 이상한 분장을 하긴 했지만 우리가 보는 남자는 싱긋 미소짓고 있는 반면에, 거울 속의 남자는 죽을 상을 하고서는 눈물까지 고여 있습니다. 모종의 이유로,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이죠. 그것이 열등감인지는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열등감은, 그저 남자의 몸 속에 붙어 있는, 남자의 일부일 뿐이지, 남자가 고통받는 이유는 아니니까요.
남자는 눈물 분장을 하고, 검은 칠로 입꼬리를 내렸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이 남자가, 모종의 이유로 우울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지만 남자는 표면적으로 웃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자가 진짜 우울한지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그러나 남자는 세상 누구보다 고통스럽습니다. 자신의 열등감은 자신을 더 왜곡해서 보여줍니다. 거울 속의 남자는 그래서 그 누구보다 고통스럽습니다. 이를 악물고, 눈물을 흘리며, 손을 꼭 쥐면서 참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보이기 위한 미소를 짓기 위해서요.
그리고 그걸 부각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채색을 하지 않았고, 두 세계가 경계가 나눠져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검은 페인트칠을 하지 않고 일부러 두 세계 간에 검은 색과 흰색으로 나누어진 배경을 줘 봤습니다.
클리셰를 파괴할 만한 것은 아무래도, 울고 있는 분장이겠죠. 일반적으로 이러한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우는 얼굴에 웃는 분장을 하고, 눈물만 저런 점으로 표현하니까요.
어떤가요? 그다지 어려운 그림은 아니었는데, 설명하자니 장황해졌네요. 제가 설명병이 있어서, 잘난 척한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는데 말이죠.ㅎㅎ
여러분들이 그래도, 제 그림에서 막 미학적인 걸로 즐거움을 얻기는 좀 힘들 거라고 판단하고, 그러한 제 실력의 한계를 최대한 커버할 수 있는 부분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방편을 나름대로 생각해 봤었습니다. 즐겨주셨다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