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날 괴롭히던 무리들이 날 괴롭히지 않았다. 뭘까. 어째서인거야. 이번에는 무슨짓을 벌일려고? 나는 창고에서의 사건으로 부터 정확히 하루가 지난 후에 그들이 내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알게되었다. 그들은 날 '강간'하려고 했다. 남자가 어떻게 남자를 강간하는 거지?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들의 행동을 보면 분명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최대한 그들을 피해다녔다. 또 그짓을 하면 어떡하지, 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다시 나를 패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강간'하지 않아서.

그렇게 얻어맞은 나는 언제나처럼 봉투가 터져버린 쓰레기마냥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었다. 아픔이 조금 가실때 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웅크렸다. 누군가의 발걸음소리가 들렸다. 점점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던 그 소리는 내 근처에서 잠시 멈추더니 내 앞으로 왔다. 나는 차마 올려다 보지 못하고 신발만을 바라보았다.


"너, 이름이 뭐야?"
"... 유진.."


목소리를 들었을 때, 길츠만.. 그러니까 알렉스였다. 나는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사실 구석에라도 숨고싶었지만, 여긴 그런게 없었으니까. 내가 고개를 파묻자 그가 내게 말했다.


"너 말이야... 평소에도 그렇게 맞고 다니냐?"


나는 고개를 들지않고 끄덕였다. 갑자기 시야가 변했다. 너무 빠르게. 머리가 너무 아팠다. 그가 내 머리채를 잡아 올렸던 것이었다. 눈이 마주친 그는 너무 무서웠다.


"사람이, 물으면 눈을 마주치고, 대답을 해야지"
"... 미, 미, 미, 미안, 해.. 요..."


나는 눈에서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그에게 빌었다. 그러자 그가 혀를 크게 한번 차고는 내 머리채를 놓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담배를 피웠다. 독한 향에 기침이 나왔다.


"숨막혀?"
"아, 아뇨!"


나는 재빠르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는 너무 무서워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가 내게 다가오는게 보였다. 때리려고 저러는 거지? 왜? 대답을, 거짓말을 해서? 아, 아님 시선을 피해서? 그의 손이 머리에 닿자 나는 크게 움찔했다. 하지만 별다른게 없었다. 그는 그저 내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말 잘듣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기분이 좋았다. 처음들어보는 칭찬이었다.


"... 꼭 고양이 같네."
"...?"


나는 슬며시 그를 올려다 보다 눈을 마주치자 그대로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그가 머리를 만지던 손으로 내 뺨을 만졌다. 아까 맞은 곳이 부어올라 아팠다.


"아...!!"


신음소리를 내자마자 입을 가렸다. 그놈들은 내가 아파서 신음을 내자 내가 아파한다며 때렸기에 어쩌면 그도 그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눈치를 봤다.


"아파?"
"아, 아니.. 아!"
"거짓말, 하면 안되지."
"미, 미, 미안해..."


아프지 않다고 하자 그가 내 뺨을 더 세게 눌렀다. 나는 그에게 용서를 구했다. 그는 거칠게 내 뺨을 쥐고는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나는 뭐 하는거지.. 라는 생각에 멀뚱히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 지자 점점 무서워졌다. 그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창고에서, 나에게 옷을 덮어주었던 여자였다.


"알렉스~"
"세리나."


그가 내 앞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갔다. 곧 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웃는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세리나 - 그녀는 예쁘기도 예쁘지만 착하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그래서 그 때 내게 옷을 덮어준걸까. 정말 착한아이다. 나는 차마 그녀를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반대쪽으로 도망쳤다. 다음날, 나는 또 그들에게 끌려갔다. 이번에는 왜 그러는걸까. 나는 언제나 그들에게 맞는 장소로 끌려나갔다.


"아, 내가 문신을 그릴건데, 어떻게 될 지 궁금해서 말이야."
"아흑..!"
"아프니?"


나는 재빨리 고개를 내저었다. 배꼽 근처에 담뱃불을 지진 자국이 생겼다. 너무 아팠다.


"그래? 그럼 문신좀 하자. 내가 마음에 드는게-"
"야."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양팔을 잡힌 채 떨구고 있던 고개를 들자 그가 세리나와 함께 있었다.


"헉.. 기, 길츠만.."
"맙소사, 너..! 멍이..!"
"아, 세리나. 이, 이건.."
"니들은 닥치고 꺼져."


그의 한마디에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전부 도망갔다. 나는 풀려버린 다리에 주저앉았다. 세리나가 내 곁에 왔다. 그녀는 내 얼굴을 몇번 훑어보더니 내 팔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으나, 내가 차마 일어나지 못하자 그녀는 날 업으려고 했다.


"자, 잠깐..!"
"가만히 있어! 너 완전 다쳤다고!"
"......"


그는 세리나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결국 나는 세리나의 부축을 받아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이끌고 그녀를 따라갔다. 그녀는 치료할 것을 가져오겠다며 나와 그를 둘만 두고 가버렸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시야가 정신이 없었다. 온몸에 힘이 다 빠져버렸다. 아까부터 계속 나던 식은 땀에 창백해진 얼굴로 나는 그대로 쓰러진 것 같았다. 눈을 뜨니 전혀다른 곳이었다. 푹신한 감촉, 따뜻함.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마침 문이 열리고 세리나가 들어왔다.


"일어났어?"
"... 아..."
"여기 우리집이야. 너 지금 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내가 데리고 왔어. 우선 이거 먹어."


그녀는 내게 따뜻한 스프를 내밀었다. 평소에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한 탓에 나는 허겁지겁 그녀가 준 스프를 비웠다.


"맛있어?"
"응.."
"근데 너 참 예쁘게 생겼다."
"어..?"
"아, 기분나쁘다면 미안해. 참, 내 이름은 세리나 일루아야. 그냥 세리나라고 불러."
"... 난 유진..."


그녀에게서 뿜어져나오는 밝은 기운이 내게로 퍼지는 것 같았다. 왠지모르게 마음이 편해졌다. 그녀는 내게 이것저것 많은것을 물어보았고,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내게 스프를 한접시 더 건네주고, 내가 그것도 깨끗이 비우자 이젠 나를 그곳에 눕혔다.


"세리나는.."
"난 괜찮아. 우선 네가 많이 아프니까, 네가 먼저지. 잘자"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푹 잠들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뜨자 그가 내려다 보고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그가 짜증난다는 듯 말했다.


"내가 잡아먹기라도 하냐?"
"......"
".. 아오, 씨발. 세리나!"
"아아, 지금 가!"


그는 욕을 내뱉고는 세리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내게 옷을 던져주었다.


"입고 나와."


새 옷 같은데.. 내가 입어도 되는건가? 지금 입고 있는 옷으로도 괜찮은데. 하지만 입지 않으면 그가 나를 때릴지도 몰라. 나는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고는 밖으로 나갔다. 세리나가 그의 백발같은 머리를 정리해 주고 있었다. 다정한 그녀는 정말 예뻤다. 그녀는 나를 보자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다. 잘 어울려"
"......"
"알렉스가 보는 눈이 있네."


나는 얼굴이 시뻘게져 고개를 들지 못했다. 세리나는 내 곁으로 와 나를 데리고 그와 함께 차에 탔다. 도착한곳은 학교였다. 그와 세리나가 내리고, 나도 뒤를 따라 내리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보는 시선에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고개 들어. 쫄지말고."


그의 목소리였다. 귀찮은 듯 이야기 하길래 나는 용기를 내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리나가 나를 이끌었고, 나는 그들과 함께 들어갔다.

그 다음부터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은 더 이상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내 곁에는 세리나와 그가 같이 있었다. 길츠만네 무리들은 나를 그리 좋게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세리나는 나를 보며 웃어주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를 보면 가슴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감정을 사람들은 흔히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너, 휴대폰은."
".... 어, 없어..."


그의 질문에 나는 잔뜩 기가죽어 대답했다. 아무리 그가 세리나와 연인관계고 나와 함께 다닌다고 해서 그가 두렵지 않는게 아니었다. 거기다가 세리나를 향한 내 마음을 알아차리면 그는 분명히 나를 죽이려 들 것이다. 며칠 뒤, 그는 내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내 번호, 저장되어 있으니까."
"......"
"부르면 재깍재깍 나와. 알겠어?"
".. 응..."


그리고 그가 나를 부른 것은 바로 다음날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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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9-16 23:40 | 조회 : 2,612 목록
작가의 말
류화령

알렉스는 무슨 짓을 할 것인가..!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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