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공주가 꼭 여자라는 법있는가.

어디서나 한 번쯤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드래곤을 죽이면 공주와 결혼을 하게 해준다는 그런 흔한 이야기가 말이다. 사실 나는 그런 거 하나도 믿지는 않지만 이번만큼은 믿어보려고 한다.
Phil(필) 왕국. 모든 자원이 풍부하고 질서가 유지되고 어려운 사람들을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곳. 또 이 세상에서 너무나 아름다운 공주가 산다는 왕국. Phil(필) 왕국 근처에 사나운 드래곤이 내려와 왕국의 주변이 허물어지고 사람들이 못살게 되자 왕은 드래곤을 죽이는 자에게 공주와 결혼을 하게 해준다고 저 먼 왕국에까지 퍼트렸다. 누가 자기 아까운 목숨을 버려가면서 드래곤과 싸우겠냐고 한다면 그건 바로 나다.
“으, 미치겠다. 드래곤은 어디 있는 거냐.”
숲속을 걸은 지 벌써 30분, 드래곤의 꼬리는커녕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슬슬 다리도 아파오고 그냥 포기할까. 부스럭.
“응? 뭔가 있나..?”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귀여운 얼굴을 한 토끼가 보인다. 와, 감탄사를 내뱉고 손을 뻗어 만지려 하자, 큰 소리와 함께 나무들이 쓰러지고 귀여운 토끼의 얼굴을 한 드래곤이 서 있다.
“미친. 저거랑 내가 싸우라고?”
자, 침착하게. 힐끔, 드래곤을 쳐다보다가 작게 흥얼거린다. 반원을 그리고.. 놀러 가보자~. 는 개뿔이다! 삼십육계 줄행랑.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앞만을 보고 달리자 어느새 왕국에 다다랐다. 뒤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그래, 무시하자. 이대로 내가 여길 벗어나면 이 왕국은 쑥대밭이 되는 건가, 음. 어쩔 수 없네. 라고 마음속으로 말하곤 옆구리에 차고 있던 칼을…. 응? 칼이 어디 갔지? 휙, 휙, 주변을 둘러보자 드래곤의 발밑에 깔린 칼이 보인다.
“아나. 나 저거 내 전 재산이었는데.”
망했다. 단단히 망해버리고 말았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드래곤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 드래곤이 조용해지자 조심스럽게 다가가 칼을 가져와 드래곤의 심장을 찌른다. 푹, 찍. 아이고, 소리 좋네.
“음, 뭔가, 나 이러니까 내가 나쁜 놈 같네..”
내 손에 쓰러지고(?) 죽은 드래곤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던 중 왕국의 마을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나를 보고 수근 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아니길 바라며 고개를 돌린다.
“자네가 우리 왕국을 구했어!”
“네, 예?”
갑자기 달려드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잘 움직이지 못하고 연신 칭찬을 듣고 먹을 것을 얻었다. 나로서는 기쁜 일이지만 이것들을 혼자 처리하기에는 좀 많이 무리가 있을 지도 모르겠는데. 뭐, 상관없겠지?
몰려있던 마을사람들이 내 주변에서 멀어지고 하나둘씩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앞을 봤더니 왕국의 기사들이다. 대장같이 생긴 한명이 말을 타고 가까이 온다.
“국왕폐하께서 널 찾는다.”
“엥? 내가 왜.”
“드래곤을 쓰러트렸으니.”
아, 맞아. 나 드래곤 쓰러트렸지. 아마. 일단 대장같이 생긴 놈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준비가 된 마차를 타자 왕국을 향해 간다.
“와, 바깥 풍경 좋네.”
풍경을 계속 구경하다보니 어느 샌가 왕국의 문 앞에 도착을 했다. 국왕이 있는 곳까지는 혼자 가라해서 어쩔 수 없이 기나긴 복도를 따라 걸어간다.
“진짜 넓다.”
기둥을 만져보기도 하고 복도에 뒹굴 거리며 가다가 쿵 하고 어딘가에 머리를 박는다. 아픔에 눈을 찌푸리고 머리를 문지르며 일어나자 황금색의 딱 봐도 고급스러운 문이 보인다. 두어번 노크를 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커다란 의자에 앉은 어디로 보나 왕같이 생긴 할아버지가 있다.
“어서오게. 드래곤을 쓰러트린 우리 공주야!”
“미친. 공주라 부르지 말랬죠!”
“쌀쌀맞게 왜 그러느냐.”
“허. 제가 왜 이러는지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그렇다. 나는 Phil(필) 왕국의 공주. 아니, 이름이 공주라는 것이다. 성별은 남자다. 네버.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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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8-27 21:41 | 조회 : 1,134 목록
작가의 말
nic55742624

공주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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