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 타다닥.
작은 불씨가 나무를 태우는 소리. 로엘과 함께 다녔을 당시에 매우 자주 듣던 익숙한 소리였다.
원래 이 상태에서 눈을 뜨면, 로엘이 뭐든 집어넣어서 먹을 걸 만들고 있을 텐데.
“일어나, 안 먹으면 몸에 안 좋으니까. 일어나 카인.”
어라, 왜인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진한 묵색의 배경을 도화지 삼아 마구잡이로 뿌려져 반짝이는 별들, 그리고 푸른 머리카락의 한 사람.
“……로엘?”
푸른 머리카락에, 그만큼이나 푸른 눈동자. 내 기억 속에 있는 인물, 로엘과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일치하는 게 아니라 그냥 로엘인가?
“피곤한 건 알겠지만 일단은…….”
잠깐만 로엘, 너 지금 신전에 처박혀 있다고…….
“한 것도 없는데 그 형씨가 피곤하기는 뭘!”
와하하하하.
여러 명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뭐지? 대체 누가.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본다.
항상 나와 로엘만 있었던 노숙 자리에 다른 이들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걷는 것도 의외로 피곤한 일이죠. 예전에 비브라 산맥을 도보로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죽을뻔했죠 아마?”
이 목소리도 익숙하다. 흑발의 그, 아키르나의 목소리.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아키르나씨?”
“어라? 제 이름을 알려드렸었던가요?”
그리 말하며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따뜻한, 여러 재료가 섞여 들어간 수프였다.
“뭐, 일단은 드세요. 배고프면 더 힘드니까요.”
“아, 예.”
수프를 받아들었다. 이 사람이, 원래 내게 이렇게 친절했던가?
호의적이다, 여기에 있는 아키르나라는 인간은. 나를 바라보고 있는 아키르나는.
“로엘님도 드시죠.”
“태워다 주시는 것도 감사한데 이렇게까지 해 주실 필요는.”
아아, 이해 됐다.
산적에서 아키르나의 상단을, 지금이 아닌 매우 작았던 그의 상단을 산적의 습격에서 구해주고 난 뒤의 밤. 그날이었다.
“한 사람 더 먹는다고 아무 문제없으니까 드세요.”
그 말에 조금 거칠어 보이게 생긴 남성이 소리쳤다.
“어이! 그럼 난 더 못 먹는데?”
“이거나 쳐드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행동에 모두가 웃었다.
와하하하하.
내가 왜 여기에 있지? 과거로 돌아와? 아니면 개꿈?
‘꿈…….’
아, 꿈이다.
아마도 그때의, 산적에게서 그들을 구해냈을 때의 기억을 억지로 떠올려 내서 이런 꿈을 꾸는 거다.
“아하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동조했다. 꿈, 허상. 진짜가 아닌 것. 하지만 진짜면 좋을 듯한 꿈.
여기에는 로엘이 있다. 멀쩡한 로엘이, 그리고 나를 적대하지 않은 아키르나가. 나를 싫어하기 전의 사람들. 또 겁쟁이가 되기 전의 카인.
아직, 도망치지 않은 카인은 이 꿈속에 있었다.
‘이 꿈은.’
깨지 않았으면, 아니. 차라리 이쪽이 현실이었다면 좋을 텐데.
“카인 피곤하면 먼저 잘래?”
상냥하게 물어오는 그 말이, 대체 얼마만인 걸까. 넌 아직도 변한 게 없는 걸까 로엘.
현실이기를 바라는 꿈, 아직 비극이, 그 일이 일어나기 전이니까.
“미안, 로엘.”
꿈이니까, 현실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말한다. 로엘에게.
“카인?”
로엘은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응, 그렇겠지. 네 눈에는 내가 잘못한 게 없어 보이지만, 갑자기 사과를 해서 당황스럽겠지만.
“미안해……정말로, 미안……하니까.”
미안해, 도망쳐서. 미안해, 널 돕지 않아서.
그때, 로엘을 버리고서 도망치기 싫었다. 라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그때는 로엘이고 뭐고 도망 쳐야한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만약 같은 상황이 다시 내게 다가온다면, 나는 주저 없이 같은 선택을 할 거다. 다른 이가 해결 해 줄 것이라고, 동료가 피를 흘리고 있더라도 괜찮을 거라고. 그러니까 도망쳐도 된다고.
죄책감?
당연히 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공포는, 겁은 그걸 뛰어넘고, 짓누른다.
“카, 카인? 갑자기 왜…….”
그래도, 쌓이고 쌓인다.
억누를 수 없을 정도로 쌓여버린 죄책감은 나를 흔들어 놓았다. 그 결과가, 로엘을 구하기 위해 달려든 것.
그때 그 행동으로 로엘이 마왕을 잡은 건지, 아니면 로엘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는데 내가 달려 든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난 만족한다, 그때 그 행동에.
“미안……해.”
이때의 로엘은 모른다. 이때의 아키르나도, 상단의 단원들도 모른다. 내가 겁쟁이라는 걸, 도망쳤다는 걸. 아직 도망치지 않았으니까.
이들과 함께 향한 마을, 그 마을은 습격 받았었다. 사람의 생을 태우는 불길이 치솟고, 끔찍한 비명들이 난무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곳에서 나는 도망쳤다.
로엘을, 아키르나를. 그들을 버리고.
고립되었었다.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채로, 어떻게든 난관을 극복하려는 로엘이었지만 내 눈에는 아무 소용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도망쳤다.
나는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그를 도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누군가를 불러 오거나, 아니면 주변에 있는 무언가로 그를 돕거나.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도망쳤다. 내 목숨 하나 건지기 위해서.
그래서 미안해 로엘.
그게 첫 번째. 내 첫 번째의 도망이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서, 다른 이들의 앞에서 나는 항상 로엘을 버리고 도망쳤다.
전투가 끝나면 언제나 그에게 다시 다가가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말을 건네는 도망자. 겁쟁이, 비겁자.
그게 나였다, 카인이었다.
타닥, 타다닥.
불꽃이 타오른다. 익숙한 소리, 하지만 익숙한 사람은 없을 거다.
“…….”
눈을 떴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늘에서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인다. 옆에서는 모닥불이 타오르고 따뜻한 수프에서는 김이 피어올랐다.
“푹 자시더군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익숙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흑발의 그, 아키르나.
아키르나가 있다, 밤하늘의 별들이 있다, 따뜻한 수프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찾는 이는 없다.
“얼마나 남았죠?”
“하루입니다.”
아침에는 사흘이라고 말했다. 허나 지금은 하루가 남았다고.
내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아니고 삼일 내내 잠을 잤을 리는 없다. 그렇다는 건.
‘떠보지 않겠다는 건가.’
마음을 바꾼 건가? 갑자기?
“아키르나씨.”
“네.”
“예전 일이 떠오르네요.”
그는 기억하고 있을까. 나를 싫어하기 전의 자신의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의 전 모습을.
“……그때는 몰랐죠. 당신이 이런 쓰레기 인줄은.”
기억하고 있구나. 그것도 확실하게. 아마 잊을 수 없을 거다. 그렇게 충격적이었을 테니까.
“그러게요……지금은, 지금은 쓰레기네요.”
과연 그럴까, 내가 쓰레기라는 게.
솔직히 모르겠다. 내가 잘못을 한 것인지 아닌지. 살고 싶다는 욕구를 잘 따랐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야 하는지, 동료를 구했어야 했다고 말해야 하는지.
당연한 ‘행동이었다.’와 ‘아니다.’라는 두 의견이 머릿속에서 충돌했다. 젠장, 대체 어쩌면 좋지? 뭐가 맞는 거지?
‘후자겠지.’
알고 있잖아, 내가 잘못한 걸. 그래서 사죄했었잖아. 로엘에게, 그들에게. 나에게.
결론만 추출한다. 내가 잘못했다는 결론, 하지만.
‘……언제 바뀔지 몰라.’
언제든 자기 합리화를 시키고, 다른 핑계를 대며 도망칠 게 분명하다. 도망이라는 것은 카인이라는 인간의 근본, 본질.
도망치지 않는다?
아마 불가능할 것 같다. 이미 겁쟁이 인데다가, 수도 없이 도망을 쳐왔으니 몸이 익숙해져 있을 거다.
바뀌지 못하는 건가. 평생 겁쟁이라는, 비겁자라는 말들을 앞에 달고 살아야 하는 건가.
“……왜 도망치시는 겁니까?”
저번에 내게 던졌었던 질문, 그 질문을 재차한 다는 것은. 더 정확한 대답을 바라는 거겠지.
도망, 왜 도망치냐. 동료를 버릴 정도로 도망을 쳐야 하는가.
질문에 답할 수 있나? 아니, ‘지금은’질문에 답하지 못할 것 같다.
“지금은……지금의 저는 대답을 해드리지 못할 겁니다.”
겁 많고 비겁하지만, 지금의 나는 극히 정상이다. 아직 어떠한 위협도, 공포도 느끼지 않았기에 누구와 다른 것 없는 정상인이었다.
“도망칠 때면, 무서워 질 때면 제 머릿속은 스스로 자기합리화의 결과물을 던집니다……그리고, 그걸 위안 삼아서 도망칩니다. 왜 도망치는 지는……도망 칠 때의 저에게 물으세요.”
“이해할 수 없군요.”
“저도 이해 못 합니다.”
나에 대해서, 그러니까 카인이 아닌 자기 자신. 자기 자신에 대해 완벽하고 이해하고 숙지하고 있는 사람이 존재 하나?
없다, 나조차도 나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
“여! 툭 치면 부러질 것만 같은 형씨!”
누군가가 나를 향해 소리친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왜인지 모르게 들어본 목소리이다. 그것도 최근에.
“펜터씨, 시끄럽습니다.”
연갈색 머리에 조금 험악해 보이게 생긴 남자. 외모와는 다르게 꽤나 호탕한 사람인지 그는 아키르나의 말에 웃었다.
“하하하하하, 내가 원래 좀 이래서 말이야. 그래서, 고용주가 싫어하시는 그쪽 형씨는 좀 어때?”
본적이 있는 사람이다. 예전에, 그의 상단의 마차를 얻어 탔을 때 보였던 사람. 그러니까, 꿈속에서 아키르나가 중지를 들어 올려 보였던 사람.
“별 문제는 없습니다만.”
“아하하하, 그럼 됐어. 피곤하면 도망도 못 치니까!”
그 말에 소름이 돋아났다. 입안이 바짝 말라버렸다.
그때 아키르나의 마차에 있던 사람이라면. 내가 그때 그들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걸 아는 사람이다. 아마 버리고 간 사람들의 사이에 있었을 거다.
분명 내가 도망친 걸 아는데, 쓰레기라는 걸 아는데도 이 사람은 내게 이렇게 다가와 얼굴 한 번 안 찌푸리고 말을 건넨다고?
그 얌전하던 아키르나도 내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냈다. 감정이라는 것이 숨길 수는 있어도 완전히 떼어내지는 못하는 거다. 그런데 내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고?
“도망…….”
“엉?”
“도망 친 걸 알고 계실 텐데…….”
그 말에 잠시 그의 표정이 굳어진다. 역시, 맞다. 그는 그때, 그 상단에. 그 상황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내가 도망쳤을 때, 그걸 보고 있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에이.”
허나 굳었던 것도 잠시, 그는 그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굳은 얼굴을 풀었다.
“그때 그 도망 말 하는 건가? 형씨도 참, 오래전 일을 뭘 그리 신경을 써.”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 하는 그. 대체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기에 이런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걸까.
“그 일은 신경 쓸 만한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동료를 버리고…….”
그 말에 아키르나, 그가 말했다. 그래, 이게 원래의, 당연한 반응이다.
펜터, 그는 아키르나의 등을 강하게 두드렸다. 아니, 두드리기 보다는 강타했다고 봐야겠다. 순간적으로 숨이 막힌 아키르나가 마른기침을 내 뱉었으니까.
“우리 용병들은 돈 밝히고, 여자 밝히고 위험한 일일 거 같으면 튀는 족속들이걸랑. 몸이 곧 재산이니까. 몸뚱아리 없으면 일을 못해요.”
“그게 쿨럭, 대체 무슨……쿨럭.”
“근데, 그런 족속들이어도 동료는 버리지 않아.”
“그렇다면 결국에는!”
“하지만.”
하지만.
그 한 단어가 아키르나의 말을 저지했다. 그의 표정에 골고루 분포 되어 있던 웃음기는 싹 가신지 오래였다.
“신입 녀석들은 동료고 뭐고 다 버리고 도망쳐. 그게 왜인지 아나?”
모른다. 난 용병이 아니니까, 그쪽이랑 관련된 일을 해 본 것도 아니니까. 그래서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죽기 싫은 거지, 자기 목숨이 우선이니까. 그런데 말이야, 이게 나쁜 건가?”
나랑 같다. 나도 내 목숨이 먼저고, 동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니, 애초에 로엘을 동료라고 인식하고 있었나? 그것부터가 의문이었다.
“살고 싶으니까 도망쳤어. 도망치지 않고 동료부터 챙기는 놈들은 나 같이 용병일 꽤나 해본 놈들이야. 베테랑이란 소리지.”
엄청 굴렀단 이야기지 뭐.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 같은 놈들한테는 배짱이 있거든. 죽지 않고 동료를 챙길 수 있는 배짱이. 그놈들한테는 없는 거고.”
배짱이라면. 용기를 말 하는 건가.
누군가를 지킬 용기, 구할 용기, 같이 도망칠 수 있을 그런 용기.
“뭐, 그렇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대놓고 도망치지는 않지만. 아하하하하!”
……대체 뭐가 결론인 거지? 내가 나쁜 거라고 말 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당연한 행동을 한 것이라고 말 하고 싶어 하는지.
“형씨한테는 그 배짱이 없는 거지 없는 거야. 아, 배짱 같은 거 없어도 세상 사는데 문제는 없으니까 걱정마슈!”
그 말과 함께 호탕하게 웃는다.
“……그냥 저기로 꺼지세요 펜터씨.”
꿈에서 봤던 것과 똑같이, 그는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 보였다.
“예에 예에, 용병은 이만 갑니다요!”
느릿하게 다른 마차 쪽으로 걸어가는 펜터. 그는, 나를 원망하고 있는 게 아니었나?
“내일이면 도착입니다.”
도착이라. 내일이면 라이너스 영지에. 용사가, 영웅이. 로엘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무슨 말을 건네야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