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
“고마워요, 이 은혜를 어찌…….”

양손을 맞대며 가볍게 손뼉을 치는 그녀.

이래 보여도 근력은 꽤나 강한 편이었기에 나무상자 하나를 옮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은혜라니 그렇게까지 오버하실 필요는…….”

겨우 나무상자 하나 들어준 것 가지고 은혜라니. 정보를 얻는 참에 접근 한 것이지만 쓸데없이 과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었다.

“……혹시 실례가 될 수 있습니다만, 이곳에 대해서 조금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약간 흥미가 있어서.”

길을 잃은 아이는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찾으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나는 이제 어른이다. 아니, 애초에 날 구하러 와줄 사람도 없고.

“어머, 혹시 아키르나님과 계약을 맺으시러 오신 건가요?”

계약이라니, 소규모 상단에서 다른 상단과의 계약을 말하는 건가?

“아뇨……아키르나씨를 만나고 싶기는 한데…….”

만약 이 거대한 상단이 내가 알고 있는 아키르나라는 사람의 것이 맞다면, 그는 함부로 만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인물일 게 분명하다.

“으음……아키르나씨를 만나시고 싶다면 며칠은 기다리셔야 할 거에요. 순서가 많이 밀려서…….”

역시나.

“일단은 미리 말을 전해둘게요,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카인입니다.”

내 이름을 말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리고 내게 추가적인 답변을 요구했다.

“혹시 동명이인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자신의 특징 같은 걸 나타낸 그런 별명? 수식어……? 같은 것도 말해주실 수 있나요?”

“아, 그럼…….”

막상 입을 열었지만, 할 말이 없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대충 말하면 안 된다. 내가 ‘나’라는 것을. 당신이 알고 있는 ‘카인’이라는 인간이라는 것을 전달할 수 있는 단어여만 했다.

‘나’라는 존재를, 주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 ‘나’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겁쟁이…….”

“네?”

겁쟁이, 도망자, 비겁자.

버리고 싶은 단어들, 내 이름 앞에 붙던 말들.

지우고 싶어도, 떨쳐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그런 단어들이었다.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것들 이외의 ‘나’를 표현하고 나타낼 수 있는 단어들이 존재 하는가?

언제나 먼저 도망치고.

언제나 먼저 겁에 질리며.

언제나 먼저 숨어버리는 사람.

그게 ‘나’라는. ‘카인’이라는 인간의, 존재의 특징이었다.

“겁쟁이……겁쟁이 카인이라고 전해주세요.”

로엘의 앞에서도, 아키르나씨의 앞에서도. 나는 언제나 도망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도망자. 나 이외의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끝날 때쯤에 다시 나오는 비겁자.

겁쟁이 카인.

인정하기 싫지만, 내뱉기 싫지만.

내게 정말로 어울리는 호칭이었다.



4.
도망자다, 비겁자다, 한심한 인간이다.

용사 로엘의 옆에 붙어 있는 이물질인 내게 사람들이 하나 같이 말 하던 것들이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힘이 세고, 머리도 나쁘지 않은 편이고, 외모도, 성격도 그리 나쁘지 않은. 전형적으로 ‘평범한’인간이라고 내 가치를 판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와 비교를 하는 ‘남’이라는 대상이 로엘이 되어 버린다면. 나는 그저 하나의 이물질에 지나지 않았다.

검술에 재능이 있고, 특수한 존재와 대화하고 힘을 빌릴 수 있는 로엘과 다르게 나는 정말로, 극히 평범한 인간이었다.

전투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언제나 로엘이 처리해 주기를 기다리고, 로엘이 처리하면 그의 옆에 다가가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그의 곁에서 걸었다.

내가 싸우는 것과 로엘이 싸우는 것. 이 두 개를 비교했을 때, 무언가가 더 안전하고 효율성이 존재하지?

당연히 후자다.

로엘은 나보다 전투 경험도 많고 강하니까.

그에 비해서 나는 전투도 못하고 약하니까.

그래서 도망친다, 숨는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

약한 나는 죽기 싫으니까. 고통 받기 싫으니까. 그래서 그런 거다.

죽기 싫다는 이유로. 생물의 본능을 충실히 따랐는데 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데?

겁쟁이? 도망자?

과연 자신의 앞까지 다가온 ‘죽음’을 보고서도, 사람들은 마음 편히 그럼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

없을 거다, 살고 싶을 거다. 그런데.

어째서 맞서 싸우는 거지? 어째서 도망치지 않는 거지?

무엇을 위해? 어떠한 이유 때문에?

자신의 생존 본능을, 욕구를 덮어버릴 만큼의 무언가 인가?

“……한심하잖아 이거.”

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뒤 돌아보면, 기억을 더듬으면 내가 얼마나 한심한지. 쓰레기 같은 인간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한심한 걸 알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도망쳤다.

도망치면, 맞서 싸우지 않으면.

다치지 않으니까, 아프지 않으니까. 그러니까, 아무 문제도 없으니까. 결국은 해결 될 거라는 마음을 가지고 도망친다.

맞서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냐고?

없어, 그것도 전혀.

왜 내가 맞서 싸워야 하지?

어차피 가만히 있으면, 싸우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로엘이 다 알아서 해 주는데. 굳이 도움이 되지 않는 내가 싸울 필요가 있나?

“…….”

뭘 해도 이런 쓰레기 같은 생각은 버릴 수가 없었다. 내가 도망치지 않는 다는 걸,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카, 카인씨?”

문틈 사이로, 그녀가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는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이었는데, 그와 동시에 무척이나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키르나씨가……지금 당장 만나고 싶다고…….”




5.
겁쟁이 카인.

내 이름 앞에 이런 수식어를 처음으로 붙인 것은 아키르나, 그였다.

“열심히 도망 다니시더니, 살아계시네요?”

흑발의 남성.

“……끈질기죠.”

그는 나를 싫어한다.

언제 그의 상단과 함께 다닌 적이 있었는데, 전투가 시작되면 제일 먼저 도망치는 나를 보며 ‘어째서’라며 물었었다.

그 의문에 나는 약하기 때문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전 카인씨가 죽은 줄로만 알았죠, 로엘씨도 그렇게 말했으니까.”

“……로엘 녀석이 뭐라고 그랬는데요?”

이곳에 와서, 처음 눈을 뜨고 나서 듣는 로엘에 대한 말이었다.

“동료가 죽었다. 라고, 그리고 쭉 신전에 처박혀 있습니다.”

“……그거 사실입니까?”

“글쎄요.”

그의 붉은 눈동자가 내 눈을 꿰뚫었다. 저 사람의 눈에 담긴 것은 다름 아닌 ‘혐오’.

……날 혐오한다.

그것은 ‘싫어한다.’와는 전혀 다르다. 인간의 뼛속까지, 그 근본 자체를 싫어하고, 배척하고 싶어 하는 것. 그게 혐오다.

그래서 날 혐오하는 건가?

도망치니까? 겁쟁이니까? 만약 그렇다면.

‘혐오의 대상을 잘못 잡은 걸지도.’

혐오의 대상이 될 일이 없다. 겨우 도망친 거 하나 가지고는.

“도망 잘 치는 겁쟁이 인 건 알았지만, 2년 동안 대체 뭘 하고 다니신 겁니까?”

노골적이다.

이건 뭐, 엄청나게 노골적이지 않나. ‘나는 당신을 싫어합니다.’라고 대놓고 드러내고 있다니.

그것보다, 2년? 지금 2년이라고 했나?

“2년이라니, 로엘이 마왕을 퇴치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요…….”

“한심하군요.”

그는 양손에 낀 장갑을 벗어던졌다. 그의 흰 손이 드러났다.

“제 질문에서조차도 도망가시는 겁니까? 잘못한 건 알아서?”

살기.

소름이 돋아났다. 이 인간, 지금 진심이다.

진심으로, 확 나를 죽여 버릴 작정으로 마구 살기를 내뿜고 있다.

“왜……그러십니까.”

나를 싫어하기는 했지만 같이 이동하던 내내 웃던 사람이었다. 가끔 저질적인 농담도 던지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원래 얌전한 사람이 더 무섭다고 하더니.

그 살기에 짓눌리며, 나는 죽을힘을 다해 목소리를 짜냈다. 언제나 도망치던 겁쟁이의 본성을 최대한 억누르기 위해 노력했다.

안 돼, 아니야. 카인, 넌 겁쟁이가 아니라고. 그러니까 떨지 말자. 할 수 있어. 말 하는 거야.

넌 잘못한 게 없다고. 로엘에게 미안해서, 죄책감을 느껴서. 그를 구하기 위해서 달려들었잖아.

그러니까 괜찮아.

“정말로, 모릅니다. 2년……이라니요.”

모른다, 정말로 모른다.

2년? 무슨 소리냐고.

로엘이 신전에? 이것도 모른다고.

난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당신에게. 진심으로 묻는 거다.

“정말입니까?”

살기가 더욱 짙어진다.

그저 살기 하나만으로 몸이 무거워진다. 아무것도 없는데, 중력이 배가 되어 나를 지면으로 끌어내리는 것만 같았다.

손이 떨린다, 발이 떨린다.

하지만 억누른다. 이제와서 도망치면 뭐가 되냐고, 그렇게 자신을 억누른다.

“정말 입, 니……다.”

정말이야. 아무것도 모르니까. 지금 당신에게 묻는 거야. 그러니까 제발.

“……그렇습니까.”

픽.

연약한, 촛대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꺼지듯이 살기가 순식간에 흩어졌다. 마음을, 정신을, 육체를 짓누르는 중압감이 사라지자 나는 불규칙한 호흡을 가다듬었다.

대체 뭐야 이 사람? 이런 인간이었다고?

그는 자신의 양손에 다시 장갑을 끼웠다.

“뭐, 겁쟁이인 당신이 살기에 눌려서 말하는 게 그거라면, 확실하겠죠.”

젠장.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지금 이 인간, 내 안에 있는 겁쟁이의 본성을 이용한 거다. 내가 말 하는 것이 진실인지 파악하기 위해.

살고 싶으니까, 죽기 싫으니까 몸은 그 살기에 반응해 진실을 말해 버린다. 거짓을 고했다가는 죽어버릴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어디서 뭐하다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마왕은 퇴치 당한지 2년이나 지났어요.”

“2……년?”

2년이라고? 2일도, 2달도 아닌 2년?

믿을 수 없다, 내 사고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체 무슨 소리냐, 2년이 지났다니. 그 흉포한, 악독한 마왕이 사라진지 2년이라니.

2년이라는 기나긴 공백. 그 사이가 채워지지를 않는다. 대체 그 공백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용사 로엘, 그리고 그 떨거지의 활약이 아마도 컸죠.”

그 떨거지라니, 아주 대놓고 까는 구나.

중요한 부분은 그게 아니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살아 있었다. 그리고 지나있는 2년이라는 시간.

머리가 혼란스럽다, 지금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위해, 사고가 가속한다.

첫째, 카인이라는 인간은 자신이 죽었다고 인지했다. 하지만 살아 있었다.

“2년……이라니. 설마 진짜로…….”

둘째, 살아 있는 카인이란 인간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한 시점의 2년 후에 눈을 떴다.

공통점은 둘 다 원인 불명.

“용사……로엘은, 어떻게 된 거죠?”

마왕을 퇴치 한 후에 2년, 그렇다면 로엘은, 용사는 어떻게 된 거지?

“자신 때문에 동료가 죽었다……라며 라이너스 령에 있는 한 신전에 처박혀 있는 중입니다. 솔직히, 당신 같은 인간이 죽었다고 그러는 건 이해가 잘 가지는 않지만요.”

로엘답다. 라고 할 수 있겠다.

“혹시 그쪽으로 갈 수는 없나요?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라이너스 영지면 확실히 잘 아는 곳이다. 아마 지도를 보면 대충 위치를 어림잡을 수 있을 거다. 말을 빌리면 어느 정도는 빨리 도착할 테니, 그리고.

내게는, 카인에게는 의지할 대상이 필요하다. 그런 의지의 대상은 로엘. 그의 상태가 궁금한 것도 있지만.

“흐음…….”

내 말에 그는 옆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서류 더미들을 몇 번 뒤적거리더니, 이내 한 서류를 꺼내들었다.

“마침 거래 건으로 라이너스 영지 쪽에 갈 일이 있었네요……원래라면 한 달 후에 가야 하지만. 뭐, 조금 앞당기죠.”

“……서류 꼬이는 거 아닙니까?”

대규모 상단에서는 일정을 하루만 앞당겨도 모든 서류가 꼬인다. 이미 정해진 것들을 싹 다 다시 정해야 하니, 당연하다.

“상관없습니다. 그 서류들 처리하는 건 아래 직원들이지 제가 아니니까요.”

……당신 아마 좋은 상사는 아닐 거야. 아니, 아닐 게 분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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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8-05 14:57 | 조회 : 45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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