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시작과 처음(4)

"너희 둘을 평생 저주하겠어. 잊지 않아, 절대로."
이 말은 빙설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빙설만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공간도 힘도, 1차적 마석도 2차적 마석도 전부 다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분명 말하고 있었습니다.

'너희 때문에 창조도 우리도 억울하게 죽는 것이다.' 라고.


마침내 빙설과 힘, 공간도 모두 마석이 되어 인간들의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유난히 많은 양의 마력을 품고있던 세 개의 마석들은 잘 쪼개어지지 않았고 다른 마석에 비해서 큰 크기를 가진 채 인간들의 몸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다른 마석들은 모두 땅으로 떨어져 산산히 부서졌습니다. 손톱보다도 더 작게 쪼개어지는 것도 있는가하면 주먹만한 크기로 나뉘는 마석들도 있었지만 아무렴 그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네 짓이지?
이드리스."
어둠은 뒤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곳에는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모를 이드리스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입가에 걸린 작은 미소는 그녀가 모든 광경을 보았다는 증거이기도 했습니다.

빛의 몸이 바람 앞의 촛불보다도 더 가볍게 떨렸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떠냐고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고 돌아온 대답은 간단하고도 무거워서 그녀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한 순간의 실수로 모두가 아파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 실망스럽다.'


"피하세요!"
"..로지?"
빛의 머릿속에서 로지의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위급상황일 시 쓰라고 걸어준, 단 한 번 밖에는 사용할 수 없는 마법. 그 마법을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가 위험하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이드리스는 빛의 중얼거리듯 부르는 로지의 이름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로지?
...아직 안 죽었던가? 목숨 하나는 질기군."
그녀는 빛을 바라보며 비소를 띄고 말했습니다. 들으라는 듯이 일부러 크게 말하는 이드리스의 눈동자에는 맞은편에 선 빛의 분노가 담겼습니다.


"로지를 공격한 게 이드리스 너의 소행이냐?"
어둠이 이드리스를 향해 한 발짝 앞으로 걸어가며 물었습니다.

빛은 그 옆에 서서 로지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러댔지만 그 마법은 빛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마법이 아니었습니다. 로지는 그저 빛의 귀에 계속해서 말을 할 뿐이었습니다. '가지 마십시오, 곧 드래곤들이 전부 몰려올 겁니다.'


"물론입니다, 신이시여."
이드리스는 붉은 눈알의 반짝임을 뽐내며 빛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번에도 둘을 비꼬는 것과 같은 몸짓.
그녀의 눈 속 붉은 빛은 인간들의 마을에 생겨났던 불과도 같았습니다. 모두를 불구덩이로 끌고 가는 것만 같은 차가운 붉은 빛은 피와도 같았습니다.


그 붉은 색을 보고 나서야 어둠은 중얼거리듯 말했습니다.
"인간계와 마계의 일도 네 짓이구나."
"이제 아셨답니까?"
어둠이 입을 열자마자 이드리스는 어둠에게로 고개를 빠르게 돌리고 물었습니다.

빛은 속으로 말했습니다.
'이드리스 너의 그 눈은, 다른 이의 생명을 짓밟고 앗아서 얻은 피였구나. 그것도 모른 채 너의 눈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은 입에서 뱅뱅 맴돌기만 할 뿐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창조가 만든 마석은 창조의 마력이 그 근원이니, 당연히 창조가 죽으면 그 마석들도 함께 죽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창조를 어떻게 죽이냐인데..."

이드리스의 입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나왔습니다. 영원히 그치지 않을 것만 같은 그 웃음과 함께 그녀는 빛과 어둠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운 좋게도 멍청한 신께서 해치워주셨으니!"


"........"
빛의 눈에서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습니다. 이드리스의 한 마디가 그녀의 가슴과 강하게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지만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라는 생각 또한 동시에 들었습니다.


"드디어 오랜시간 살아온 신의 태양이 질 시간이로군."
이드리스의 뒤로 수많은 드래곤들이 줄지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얼핏 보아도 대부분의 드래곤, 빛의 드래곤인 로지만이 보이지 않았고 그 이외의 드래곤은 거의 다 있는 듯 했습니다.

"그 빈자리에는 새로운 태양이 들어가야지."
모두가 현재의 신 대신에 이드리스가 신의 자리를 꿰차겠다는 계획에 찬성했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드리스는 가볍게 손짓을 하며 드래곤들을 태초신에게로 보냈습니다. 이미 이드리스의 꾀에 넘어간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의지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래곤들은 모두 이드리스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빛과 어둠을 향해 무섭게 달겨들며, 그 부드럽던 날개를 이용해 신들을 넘어뜨리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뽐내던 그 입에서는 뜨거운 불길을 내뿜었습니다.


아아. 배신 당하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너무도 아픈 느낌이라고 빛과 어둠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용들이 자신들을 공격할 때도 그것들의 공격을 막기만 할 뿐 반격할 생각은 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신들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 가를 생각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창조도 믿지 못하여 모든 마석들을 죽여버린 상황 속에서, 어쩌면 우리보다 훨씬 나은 신은 이드리스가 맞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이 불현듯 계속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눈물이 또 다시 흘러내리려던 상황 속에서 빛이 어둠에게 말했습니다.
"울지 마. 슬퍼하면 안 돼, 그럼 저 교활한 이드리스에게 지는 거야."

빛은 어둠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말했습니다.

"죽자. 다 같이 봉인시키는 거야."
"하지만 넌 죽는 걸 두려워했잖아. 괜찮겠어?"

빛은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억지로 집어삼키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 상황을 곱씹는 것보단 나아.
사용하자, 「 콜로나」를."
"하지만 그건 패널티가 너무 커. 자칫 잘못하면 우리만 죽고 이드리스는 살 수도 있다는 거 알잖아."
"....우리한테 남은 선택지가 이것밖에 없는 것도 알잖아."

"하지만,"
"한 번만 부탁을 들어줘. 부탁할게, 블로우."

어둠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빛에게 잠시 망설이다가 겨우 입을 떼고 말했습니다.
"알겠어."
그리고는 드래곤들이 몰려올 때 만들어둔 방어막 안에서 어둠은 걸어나왔습니다.

"이제 죽을 준비가 다 된건가? 그 잘난 방어막 안에서 나오는 걸 보니."
"죽을 때가 다 된 건 너야 이드리스."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아닌 것 같은데."
이드리스는 어둠의 말을 듣고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어둠 또한 그녀의 말을 듣고 헛웃음을 한 번 내뱉었습니다.

"잠시 후에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군."


어둠이 말을 끝내자마자 빛은 눈을 감았습니다. 두 손을 앞으로 살짝 내민 채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중얼거리며 외우는 빛의 근처로 더 강하게 반짝이는 빛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빛에 잠시 당황한 용들은 빛에게 가까이 다가가려하지 않았지만 이드리스의 강한 눈빛에 하는 수 없이 슬금슬금 앞으로 걸어나갔습니다.
빛에 가까워질 수록 빛이 중얼거리는 말은 그들에게 더 잘들렸습니다. 다른 용들은 빛이 뭐라고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한 가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아, 이 공격은 그저 가벼운 게 아니구나.'
'우리 모두를 죽일 수 있을 정도의 공격이야.'


"......."
'원래 저렇게 많은 어둠을 가지고 있었던가?'
이드리스는 멀리 서서 자신의 앞에 있는 어둠을 바라보았습니다. 아까 전만 해도 그의 근처에 저렇게 많은 양의 마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닌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착각이겠거니, 하던 와중 빛에게서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드래곤의 머리가


퍼엉-!!


폭죽처럼 터져버렸습니다.




"....뭐, 뭐야?! 저런 공격은 듣도보도 못했는데!"
'드래곤을 한 번에 죽이는 힘이라니. 저런 게 있다면,
내 계획이 전부...!'


"구름 사이로 비치는 달빛은 그대를 비추고,
바람은 그대를 스쳐지나가며,
태양은 그대를 보듬어주리니."
이드리스의 당황한 눈빛을 알아차렸는지 빛의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동시에 어둠의 근처에서는 더 많은 마력이 흘러넘쳤습니다. 점점 커지는 그녀의 목소리는 결국, 마지막 주문을 외울 때에는 이드리스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



".......!!!!!"

빛과 어둠이 함께 외친 그 말은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만틈 강력했습니다. 겨우 말 몇 마디가 어떻게 그런 힘을 낼 수 있는지가 의문일 정도로, 이드리스를 제외한 다른 드래곤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빛에 타들어감과 동시에 차가운 어둠에 식어가며, 흔적도 남지 않는 재가 되어 바람을 타고 그곳을 벗어났습니다.



이드리스는 겨우겨우 살아남았습니다. 점점 커지는 어둠의 마력에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자마자 그녀는 근처에 있는 아무 드래곤을 자신의 방패로 삼아 그 뒤로 숨어버렸고, 그렇게 비열하게 그녀가 살아남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은 들 이미 그녀의 꿈은 산산조각난 뒤였습니다.


"이제 죽은 드래곤들은 재가 되어 이 땅에 봉인될 거야. 봉인을 풀 수 있는 것은 주문을 외우는 것 뿐이고, 주문을 알고 있는 것은 빛 뿐이지."

어둠은 손에 든 마력으로 만든 무기를 이드리스에게 겨누고 말했습니다.

"네가 졌어 이드리스. 순순히 포기한다면.."
"하하하, 웃기시는 군요. 내가 이 정도로 포기할 거라면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을것을."
"......."
어둠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비웃음을 잃지 않던 이드리스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냥 해 블로우.
저건 구제불능이야."
빛이 어둠의 뒷통수에 대고 소리치는 말을 듣고 나서야 어둠은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도, 살리고 싶었는데. 가능하다면 모두와 함께 살아가고 싶었는데.'
마지막까지 미련이 남았지만 빛의 말대로 이드리스에게서는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


"끝까지 교활하구나 이드리스-!!!!"
어둠의 칼부림이 방금 전 폭발에 상처를 입은 이드리스의 옷깃을 잡아뜯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드리스는 그 뒤로 날아올라 그의 공격을 피한 뒤였습니다.

"꾀가 많은것이거늘.."
"신의 말투를 따라하지 마라!"
".....!"
어둠의 빠른 손짓이 이드리스의 목끝을 스쳤습니다.

'언제부터 어둠이 이렇게 빨랐지...?'

이드리스의 머릿속이 의문으로 가득 찰 즈음에,


서걱-.


그녀의 두 팔이 어둠의 무기에 의해 잘려나갔습니다.



"어...?"
잘려나간 두 팔을 멍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이드리스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나가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는, 어둠의 힘이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진 이유가 바로 빛의 서포트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참 뒤늦게도 알아차린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분명 너에게 기회를 주었다."
"기회? 신의 자리를 꿰찰 기회는 주지도 않아놓고서는."
"우린 신의 자리를 탐내지 않았어. 네가 달라고 했다면 순순히 내줄 생각이었다고!"

"웃기지 마!!"
빛의 목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이드리스는 악을 내질렀습니다. 손이 없어져버린 이드리스는 머리로라도 일어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습니다.


"애초이 당신들이 만든 건 창조가 다였어, 그 이후로 모든 마석들과 인간, 마물들은 창조가 만들어냈지. 우리 드래곤들은 당신들 손에서 태어나지도 않았고..!
그런데 왜 우리가 당신들의 경호를 맡는 한낱 부하에 지나야하지? 모든 것은 만든 것도 아니면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마냥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자기들은 그 자리가 탐났던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지?!"

우린 당신들의 부하가 아니었다고.


"너희가 하겠다고 했잖아, 우리를 지키는 업무는 너희가 하겠다고 했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잖아. 당신들을 따르지 않으면 우린 굶어죽을지도 몰랐어. 마력 부족으로."
"그건...!"
어둠은 이드리스에게 반론을 제기했지만, 되돌아오는 그녀의 말은 어둠이 들어도 맞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그녀의 말은 틀린 것 없이, 모두 맞았습니다.

그들은 신의 자리를 바라지 않았지만 또 그들이 명령받는 것은 원치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창조해낸 것은 「창조 」이지만 그것을 만들어낸 것은 자신이라며 모든 명예를 그들에게로 돌리려 했습니다. 자신과 같이 태어난 용들은 애초에 낮은 지능을 가지고 있었으니, 자신들보다 더 낮은 존재라며 무의식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한참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던 그들 사이에서, 어둠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습니다.
"이드리스. 너를 봉인하겠다."


"......."
고개를 푹 숙인 이드리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신을 농락하여 마석들을 소멸시키는 등 너의 죄는 씻을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러니 너의 봉인은, 「 영원한 잠」으로 하겠다. 절대로 깨어날 수 없는 영원이다."
어둠이 손짓을 작게 하자 이드리스의 몸을 구속하는 마력이 생겨났습니다. 이미 몸을 가누지 못하는 이드리스에게는 필요없어 보였지만 봉인을 위한 절차였기에 그녀는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어?"
한 걸음 다가와 구속당한 이드리스를 올려다보는 빛은, 나지막히 물었습니다.
이드리스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더니 한 번 비웃음을 내뱉으며 말했습니다.



"킥. 남겨봤자 그것을 전해들을 사람이 없으니 소용없겠지만 뭐 굳이 말하자면,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4
이번 화 신고 2019-07-14 10:48 | 조회 : 1,754 목록
작가의 말
화사한 잿빛얼굴

난 9시 반에는 일어날 줄 알았지 10시에 일어날 줄은 몰랐어욥...앞으로 다시 열심히 활동할 생각입니다. 보고 계신 분 있으시다면 흔적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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