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난감하네.

퍽-




답답한 파격음이 귀를 찔렀다. 또 다시 그 노예였다.




"흐..흐윽.."



덜덜 떨면서 다음 폭력을 기다리는 그가 누군가와 닮아서, 또다시 지끈지끈 머리가 아팠다.



"빈혈인건가.."


멍하니 머리만 꾹꾹 누르고 있었는데 휴식시간이 끝났다. 이곳은 노예교습소, 모든노예들이 교육받는 곳이다. 수업시간과 휴식시간이 번갈아 가며 학교처럼 수업받는다.

학교와 다른 점은, 굳이 폭력을 써가며 수업한다는 것. 일반노예라도 얼굴은 안 때렸다. 일부러 그러는 것이다. 너의 위치를 알라는 듯이.



"어이 1022-4"

"예"

"대답은 재깍재깍하는군, 큭. 저새끼 안 때리려고?"

"찡찡거리는 소리 듣기싫어서요. 방장과 달리 전 신입이라서 입장파악 잘해야 하거든요"



입장파악 한다는 사람치고는 꽤나 똑똑하게 말한다.


"크하핫, 좋군. 방에 들어가라"


방장은 호탕하게 웃으며 노예 1022-4를 방에 보냈다. 그런 노예를 아니곱게 보는 측근들이 많았다.



노예는 곧 후회했다. 먼 훗날일줄만 알았건만, 그 방자한 입놀림에 대해 후회했다.



-



"후우, 힘들군"

심적으로 많이 지친 그에게 침대에 쓰러질 시간조차 없었다.


진청색 로브의 모자가 그의 머리에 씌워지고 이내 그의 얼굴은 로브로 완전히 가려졌다. 훤칠한 키에 로브까지 쓴 그는 음울한 분위기보다는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아, 다녀왔나보군. 여기야, 바로 출발하지"

"벌써 갑니까?"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




어깨를 한번 으쓱, 한 그녀는 지체없이 흑색말에 올라탔다. 한숨을 크게 내쉰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에 올라탔다. 그의 말은 회색빛이 도는 말이었다.


"그럼 잘 다녀오십시오"

"하루만에 끝내고 올테니 목욕물을 부탁하지"


기분좋은 일이 있었던 것인지, 생긋 웃으면서 농담을 건네는 그녀가 낯설었다.


"기분 좋은 일, 있었던 모양입니다"

"반대. 저 사람들 마음에 안들어"

"왜요?"



차마 이유를 말할 수 없었던 사샤는 고개를 돌렸다.



"로브 안 불편하나?"

"아뇨, 딱히"



조금 쌀쌀한 날씨 탓에 로브가 꽤나 안락하게 느껴졌다. 그보다는.


"저 사람들 왜 마음에 안들어요?"

"끄응, 후우. 엘프라서 그렇다. 용병은 인간의 본성이 가장 잘 나타나기 때문이지"

"하긴. 약육강식이 제일 많이 나타나니까요"

"이제 잠자코 가지. 이제부터는 꽤나 달려야하니까"

"먼저 출발하시죠. 뒤따라 가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사샤가 속도를 냈다.



"흐익, 너..너무 빠릅니다!!!"

"알아서, 따라오도록"



사샤, 진짜...! 사엘은 이를 으득 갈며 사샤는 뒤쫓았다.




-




"여기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저녁무렵. 사샤는 평온한 얼굴로 신전을 가르켰다. 물론 사엘은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허억..허억... 여기까지 오는데 한번도 안쉬는게 어딨습니까?"

"달린건 말이지, 네가 아니잖아?"

"아무래도 잘못 생각한거 같다고요"

"투덜대지마라. 투정 들을 생각따윈 없으니"

"네네, 어련하시겠습니까. 얼른 가시죠"



딱딱한 사샤의 말에 사엘은 그저 힘들다는 듯, 건성으로 대답했다.



"용병길드에서 온 사샤입니다"

"일행 사엘 입니다"

"의뢰한지 이틀밖에 안됐는데 일찍 오셨네요?"

"시각을 다투는 일이라하여.."

"신입인가봅니다. 용병들은 신전 의뢰 잘 안맡거든요. 차일피일 미루기 십상이지요"

"얼추 비슷한 얘기를 듣긴 했습니다만.."

"일단 여기로 드시죠. 마침 저녁때이니, 씻고 나오시면 저녁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의뢰 얘기는 먹으면서 하도록 하죠"





뭐야, 급한 일이라더니..? 사엘의 눈초리에 의구심이 담겼다. 귀찮아하는 태도며, 언짢은 기색을 미루어보아 일부러 용병길드에 의뢰한것인가? 숲에 간 자를 죽이려고?




그러고보니 이상하긴 하다. 이 세계에는 마법사 길드도 있고, 마탑도 있고, 신전이니 황궁과도 연결이 될터인데, 어째서 용병길드에 의뢰를?



"* 미필적 고의라고 하던가, 이걸?"

"뭐라고 했어?"

"음, 아무것도 아니예요"

"아, 그래. 먼저 씻는다"

"네, 그러세요"




생각을 이어나갔다. 만약 진짜로 죽이려고 했다면, 왜 그런걸까.



"아무래도, 지금상황에서는 찾지 어렵겠지"



난감하네, 하고 말하는 사엘의 얼굴은 전혀 난감해보이지 않았다.


"네, 그러니까... 두 사람이서 놀러나갔다가 길을 잃은 모양이라고요?"

"저희는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만."

"스테이크 맛있네요"

"사엘, 집중 좀 하지"

"사샤가 잘 해주고 있잖아요. 아, 저 궁금한거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요?"

"무엇이든지요."

"왜 하필 용병길드인가요? 뭐, 우리야 의로 받아서 좋다만."




가벼워 보이는 질문이지만 속에 든 의미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묵직한 기분에 답답하기 까지 할만큼, 목을 죄어 오는 질문이었다.



이 멍청해보이는, 얼굴을 못 봤으니 이런 말은 그렇지만, 용병은 어디까지 눈치챈것인가. 로레인 신부는 바짝 긴장했다. 여기서 대답을 잘해야 해.




"사실, 이런 말은 뭐하지만.. 황궁은 절차가 까다로워 허가받는데 오랜시간 걸립니다. 마탑이나 마법사길드는 돈이 많이 들고요."


"용병길드랑 황궁시간이랑 비슷할것 같은데 말이죠. 그들도 의뢰 받길 싫어했으니까요."

"인명과 관련된 일이니 사정을 고려해주지 않을까 생각했을 뿐입니다"

"언제까지 기다릴 생각이셨죠?"



입이 쩍쩍 가라지는 기분이다. 와인으로 목을 축이고는 담담히 대답했다. 사흘, 정도요. 라고,


"사흘이라. 신관들이 살아날 수 있을까요?"

"힐러들이니, 괜찮을거 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종된 이들의 이름은요?"



묘해진 분위기를 눈치챈 사샤가 말을 가로챘다.



"매튜 드 리엔. 이제 막 열여덟 살 된 성인입니다. 그의 친구 클라우드 디 로엔. 눈치채셨듯이 여자로, 매튜와 동갑입니다"

"생김새는요?"

"보자마자 아실겁니다. 이름대로 생긴 애들이라"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아침 일찍 출발 하도록 할까요?"

"그렇게 하시죠. 신전의 뒷문을 찾으시면 빠른 길로 가실수 있습니다"

"뒷문은 어디에?"

"지하에 있습니다. 내일 안내해드리도록 하죠"

"먼저 들어가도록 하죠."

"사엘"

"괜찮아요, 사샤. 저 조금 피곤해서요"


사엘의 표정이 어둡다는 것을 눈치챈것인지, 사샤가 나즈막이 사엘을 불렀다. 사엘은 고개를 저으며 사샤에게 대답해주었다.






사엘의 방-

"더러운 인간.."

사엘이 중얼거렸다. 고의로 저런 모습을 보이는게 아버지와 닮았다.


"이곳이나 저곳이나...."




다운아, 이 곳도 지구랑 비슷한 것 같아. 내가 한심해지는 기분이야. 강해지면 널 찾을거라 생각했는데, 저딴 인간이나 만나고 있어.




자연스럽게 이어진 다운이 생각에 가슴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니가 없는 곳이, 낯설어..."



니가 없는 이 곳이, 너무 두려워.




니가 없는 이 곳이, 너무 무서워.






"널 찾고 싶어. 나는 니가 필요해...다운아"






똑,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렀다.





눈치 채지 못한 만큼 느릿하게.


천천히 스며들던 너처럼.

*미필적 고의 :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어떤 범죄결과의 발생가능성을 인식(예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의 발생을 인용(認容)한 심리상태.즉, 일부러 죽이려고 위기의 상황을 여러 번 겪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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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8-10 21:17 | 조회 : 1,575 목록
작가의 말
월하 :달빛 아래

으에엥, 너무 보고싶었어요ㅠㅠ 왕창 올릴거야 히잉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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